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 레이몬드 카버 소설전집 3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레이몬드 카버의 책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는 리뷰를 쓰려고 앉은 이 순가에도 좀처럼 이러니 저러니하고 말하기가 힘든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읽고 나서 이 작가의 책을 사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지 얼마 안되어서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읽을수록 내가 너무 기대를 심하게 했거나 아니면 요즘 하도 강한 소설을 몇 편 읽어놔서인지 진공청소기처럼 쫙쫙 당기는 맛이 있는 책만 편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조금 심심했다. 간은 맞는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여기다 소금을 조금만 더 혹은 후추를 조금만 더 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음식처럼 말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은 4편의 에세이와 15편의 단편. 그리고 7편의 레이몬드 카버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에대해 말하는 추억담, 해설집, 옮긴이의 말 등등이 있다. 구성으로 봐서는 덜렁 단편만 실려있는 것 보다는 확실히 알차다. 거기다 책값은 7,800원으로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싼 가격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레이몬드 카버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이해는 갈 것 같다. 허나 나에게 당신도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대답을 할 것 같다. 에세이는 퍽이나 내 취향이었지만. 단편들은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제일 처음 단편인 [그들은 당신의 남편이 아니다.]를 읽을때 부터 나는 이 작가가 아주 친절한 타입은 아니겠구나 싶었고. 그 예상은 책을 다 덮고나서 빗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매력적이고 뭔가 그럴듯하고 뭔가 괜찮은데 어쩐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내가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라서 이렇게 말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작가가 친절하지 않은것은 싫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할머니가 손주에게 밥을 씹어서 침과 함께 잘 분해된 그 무언가를 입에 다시 넣어주는 것 같은건 아니라 하더라도. 작가는 읽는 사람을 어느 정도는 배려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책은 일단 공짜가 아니며. 누군가가 책을 냈다는 것은 독자들이 읽어주길 바래서일 것이다. 그게 설사 무료로 배포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읽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게 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예의는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것도 아니고 반드시 재밌어야 하는것도 아닌 아주 미묘한 부분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아까 말한것 처럼 작가가 친절했으면, 그래서 독자로써 나는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잘 쓰여진 작품이라 하더라도 '늬들이 내 뜻을 알기나 하겠니?' '알리는 없지만 일단 읽어는 보시게들' 같은 느낌이 드는 글은 정말로 싫다. 이건 어쩌면 작품의 질을 떠나서 작가의 느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따라서 그걸로 그의 작품까지 밉게 본다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걸 어쩌겠는가. 이미 그래버린걸 말이다. 읽는 내내 불친절하단 느낌이 들었기에, 그리고 그걸 잊을만큼 너무도 혹할만한 이야기가 아닌 다음에야 그건 책을 덮고나서도 길게 남는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느낌은 읽어낼수가 없다. 작가는 몹시도 드라이하게 글을 써서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려 들지를 않는다. 작가의 미움과 분노와 사랑과 증오가 너무 뚝뚝 뭍어나서 전달되는 글도 좀 피곤하지만 이렇게 덮어놓고 드라이한 글을 읽는것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여러가지 단편이 있어서 적어도 지겹지는 않지만. 썩 유쾌한 얘기나 재밌는 얘기는 별로 없었던것 같다. 점수를 주자면 제일 첫번째 단편이 제일 재밌었고 그보다는 에세이가 훨씬 재밌었던 책이다. 다음에 레이몬드 카버의 책을 산다면 에세이집을 사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3-0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버 별로 안좋아해요. 다행이네요 님도 싫어해서^^

플라시보 2005-03-08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흐...님도 별로셨나봐요^^

플레져 2005-03-0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헉... 지금 막, 카버의 새소설 리뷰를 쓰고 왔는데, 저랑 반대의 느낌. (님의 의견에 솔깃~ 그러나...) 요즘 님과 통하는 게 넘 많군요 ^^

플라시보 2005-03-0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방금 가서 저도 님 리뷰 보고 왔습니다.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읽었네요. 참 정혜라는 책. 되게 읽고싶어요^^

마냐 2005-03-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씨 가문 자매들의 리뷰를 읽다보니...많이 궁금해짐다. 대체 어떤 작가인지. 유명세에도 불구,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서리. ...

플라시보 2005-03-0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음...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할것 같구요. 아닌 사람들은 심드렁할것 같습니다. 마냐님은 어느쪽이실른지...^^ (플씨 가문 자매들의 의견도 극단으로 다릅니다.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