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소설은 무척 유쾌하게 시작한다. 꼭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는 것 처럼 재기발랄한 문체와 별 내용도 아닌데 길게 길게 잘도 늘여서 쓰는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조금씩 더 읽어 갈수록 나는 왠지 이 작가가 처음부터 어떤 방향을 잡고 소설을 쓴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키보드를 두들겨 나가기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문체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특징. 거기다 소설의 중간분량쯤에는, 그녀가 기계를 다룰줄 모른다고 첫장에 쓰고서는 중간즈음에 자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기계를 척척 만지는 여자가 신기하기만 했다 뭐 이런식의 실수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실수이지만. 이런 실수는 소설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마치 인기없는 드라마가 작가를 교체한것 처럼 계속해서 달라지는 문체를 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대게 소설책은 사흘안에는 다 읽는 편이지만 이 소설은 무려 8일이나 걸렸다.

그러나 아주 재미없는 소설은 아니다. 얘기 자체는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던게 아닐까 싶다. 딱 10분이면 재밌을 얘기를 1시간 분량으로 늘여버리면 이야기는 탄력을 잃고 여기저기서 헛점을 드러낼 뿐이다. 이 소설이 딱 그짝이다. 시작도 좋았고 소재도 괜찮고 내용또한 그럭저럭 잘만하면 근사한 소설책 한권을 뽑을 뻔 했으나. 작가의 의욕이 너무 지나친건지 아니면 정말 묵직한 소설을 쓰고팠는지 몰라도 늘여도 너무 늘였다. 그리고 늘이는 와중에 작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는지 소설은 자꾸 갈팡질팡한다. 뭔가 굵은 줄기가 있고 거기에 잔가지를 친 느낌이 아니라 이야기들이 그저 얽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일이건 간에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왕좌왕 하게 되는데 소설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날 한 남자가 직장을 떼려 치우고 소설가가 되기로 한다. 그의 생각도 있었지만 임신을 한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소설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남자는 도서관에 가서 소설을 쓰려고 하는데 그러다 우연히 옛날에 알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도 소설을 쓰고 있다. 어찌어찌 하여 그는 그녀의 소설을 아내에게 자신의 소설이라며 보여준다. 아내는 한껏 고무되어 소설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내가 밝힐 수 있는 소설의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소설에는 그의 얘기 외에도 그가 만난 옛 여자의 얘기. 그리고 그 여자가 쓴 소설이 나온다. 소설속의 소설이라는 이중 구조를 택했음에도 중심을 잃고 초심을 잊은 소설은 흔들린다.

책을 읽다가 나는 주인공의 아내가 몹시 거슬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그게 무려 294페이지에서 303페이지에 다란다. 그게 다 아내 혼자의 일방적인 수다인데 그 수다 또한 이 소설과 닮아 중구난방인지라 나는 그의 아내가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여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부분은 너무 지루하고 이상했지만 산 책은 다 읽고 본다는 신념 하나로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독자들에게 꽤 높은 별점을 얻었고 문학동네 8회 수상작이라는 훌륭한 타이틀도 달고 있지만 내게 이 소설은 심하게 별로이다. 가장 큰 불만은 작가가 어떤것을 쓰겠다는 중심을 잡지 않고 그저 써지는대로 쓴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거기다 느닷없는 해피엔딩은 시청률 하락으로 인해 조기종영의 운명을 맞이한 재미없는 드라마같다. 쓰다가 보니 점점 길어질것 같아 그만 자기가 뿌려놓은 모든 스토리를 한꺼번에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길은 이게 최선 이라는듯 그 헤피엔딩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누가 이 책을 읽을만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럴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별점이 높은것이 좀 걸린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고 괜찮았던 소설이 왜 내게는 이렇게나 엉망이었던 것일까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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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02-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이 책이 나왔던 제 고등학교 무렵에 이 책 읽고 싶다고 하니까 재미없다고 고개 저으시던 아는 분의 충고가 생각나는군요. 플라시보님까지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이 소설을 아직도 못 읽었다는 부채감을 그만 접어버릴까 싶기도 하네요.ㅎㅎ

플라시보 2005-02-0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저는 별로였는데요. 다른 분들은 괜찮게 읽으신것 같아요. 별점 두개 주면서 평균 깍아먹는거 같아 어찌나 망설여지던지...(학교에서 시험칠때도 그렇잖아요. 반평균 깍아먹는 인간들 어쩌고 하면서..흐흐.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혹시 모르니까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읽어보세요. 저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편협한 느낌일 뿐이니까요. 어쩌면 제가 저 책에서 좋은 무언가를 발견 못한걸수도 있습니다.^^

nemuko 2005-02-1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오래오래 들고 다니다가 결국 비행기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뒤를 못보고 말았네요. 슬슬 지겨워지던 차라 별로 아깝지도 않았답니다^^ 계속 허접해져서 뒷마무리를 어떻게 할라나 했더니 해피엔딩인가 보네요...

플라시보 2005-02-1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muko님. 저도 처음 시작과 달리 조금씩 지루해져서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