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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내가 정말로 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리 혹은 집단이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한 반이 되어버린 아이들. 처음에는 서로 서먹해들 하지만 단 며칠만 지나면 그 속에서 중심과 비 중심 세력들. 혹은 여러개의 무리들이 어김없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건 내게 무척 낯설고 이상한 현상이었다. 마치 둥글게 원을 그리며 빙빙 돌다가 '5명' 혹은 '7명' 이렇게 외쳤을때처럼 아이들은 알아서 스스로 짝을 지었고 그 속에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늘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주변을 멤돌곤 했었다.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는 친구, 학교를 마치면 같이 하교하는 친구, 화장실에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친구가 있는게 너무도 당연했고 그럴만한 친구가 없으면 그애는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가 없어서 따돌림을 받는게 먼저인지 따돌림을 받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게 먼저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런 애들이 늘 존재했었다. 나는 어느쪽이었는가 하면 저런 친구들을 다 가진 쪽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연스럽게 이뤄진게 아니었다. 나는 무리에 속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완전히 진이 다 빠져버릴 만큼 나는 함께 도시락을 먹고 체육복을 갈아입고 매점에 가서 떡볶이를 먹는 친구들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었다. 다른 애들은 그게 노력이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이뤄지는것 같았는데 왜 나만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건지 늘 알 수 없었다. 나는 친구라고 불리우는 내 주변의 여자 아이들에게 단 한번도 그들에 대한 내 진심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무리에 섞이기 위해 하나도 좋아하지도 않는 가수를 함께 좋아하기까지 했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싶은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 취급을 하며 무리에서 떨어뜨려놓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무리에서 떨려나는 것이 두려웠다. 자연스럽게 무리의 중간에 있는 아이들과 달리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야만 그 속에 겨우 발을 붙이고 있을 수 있었던 나에게는 점심시간에 혼자 도시락을 먹거나 소풍을 가서 한 돋자리에서 놀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것 보다 더 큰 공포였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무리를 짓거나 친한척하는 집단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 주류 속에 속하지 못하는 비주류 인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만 방심하면 나 역시 비주류에 속했을 인간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소설에서 사람들과 의사소통에 실패해서 혼자 따돌려지는 사람들의 얘기를 읽을때 마다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나를 닮아있고 내가 조금이라도 무리에 속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더라면 그들의 얘기는 내 얘기가 되었을테니까 말이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의 주인공은 무리에 섞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연히 알게된 올리짱이라는 모델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보며 그 등짝을 발로 차 주고 싶다고 느끼고 중학교때 친했던 여자아이가 다른 멍청한 무리와 어울려 다니면서 자기에게 함께 동참하기를 권해도 외면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혼자를 선택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혼자 있을 용기를 빼앗아간 것은 바로 저런 외로움 때문이었다. 뉴키즈 온더 블럭 따위는 개가 물어가도 상관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하 상가로 몰려가서 꽥꽥거리며 그들의 사진을 사고, 토요일밤이면 친구네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지도 않은 비밀 얘기를 지어서 하는것. 이 모든게 진심으로 토할만큼 싫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그게 바로 그들과 섞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남들과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섞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주인공은 비록 담담하게 견뎌내는 것 같지만 그녀도 결국에는 그런 무리들을 갈구하는 마음을 숨길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가진 가장 엿같은 성질은 바로 무리를 짓고 그 속에 속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들처럼 저절로 무리가 생기는게 아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로 인해 생기는 무리와 집단들. 진심으로 궁금한건 그들에게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악몽같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친구가 많아야 최고이던 시절. 그리고 그 시절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내 모습. 나이가 들어가는걸 아쉬워 하면서도 그 모든게 깨지 못하는 악몽처럼 존재하던 시간들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책의 주인공처럼 왕따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인 상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가끔은 뼈에 사무치게 외롭다(원초적인 외로움이 아닌 또래집단에 섞이지 못해서 생기는 외로움)는걸 느끼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지옥이다. 차라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어서 주인공에게 발로 차이고 싶은 올리짱이란 모델에 대해 오타쿠적 성향을 드러내는 남자아이가 훨씬 낫다. 적어도 그에게는 못하거나 하지 않지만 갈망은 하는 딜레마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람들과 섞이는게 어떤 노력도 필요없이 자연스럽고 그게 기쁨이기까지 한 인간들은 알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들에게 그건 무척이나 부럽고 혐오스럽고 외롭고 발로 차 주고 싶은 일이다. 학기 초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파악한다며 취미나 가정환경 조사와 더불어 친한 친구들을 적어내라고 했다. 몇반의 누구누구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걸 시키는 선생과 그걸 적어내야 하는 상황에 욕이라도 퍼 부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어느새 거기다 누구를 적을까 전전긍긍하고 또 내가 적어내는 아이들이 내 이름도 역시 적어줄까 걱정했었다. 내게 있어 집단이나 무리는 정말로 발로 차 주고 싶지만 그 속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들 앞에서 네 발로 땅을 기면서 개 흉내라도 기꺼이 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아쿠타가와상 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지만 그래도 읽을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들 작가가 젊어서 놀라는 눈치지만 나는 작가가 젊기에 쓸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본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 그런 일 따위는 다 잊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잊지 않고 있다면 한번 보길 바란다.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인게 아니라 나처럼 억지로 섞인 인간이라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서도 어느새 그 고통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걸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