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을 지나다 - 단편
한혜연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발견한 며칠전. 나는 왜 이제서야 이 책을 발견했을까 싶었다. 올해 7월달에 나온 책인데, 한혜연의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절판된 책들마저 손에 넣고 싶어서 안달인 내가 6개월이나 이 만화책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곧 답을 알아냈다. 나는 출판사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므로 이 작가가 또 단행본을 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질 않았었고 또 이 책에는 어떤 리뷰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모를 수 밖에.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한혜연이라는 글자로 검색을 해 봤었다면 조금 더 일찍 찾아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흔히들 순정만화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본다는 만화들은 모두 똑같았다. 생긴것도 그저 그렇고 능력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여자 주인공들. 하지만 그녀들은 언제나 잘생기고 능력있고 가진것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물론 중간에 예쁘고 가진것도 많고 능력도 주인공보다 월등하지만 (혹은 능력은 없어도 배경이 좋아서 주인공보다 훨씬 그럴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단 하나 주인공보다 못된 여자들의 방해공작이 펼쳐지긴 하지만 그건 지나고 나면 언제나 주인공이 얼마나 착한가를 더욱 더 부각시키기 위한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도 코믹 만화가 아닌 순정만화는 잘 보질 않았다. 그러다가 순정만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것이 바로 '한혜연' 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착한것 빼고는 볼거 하나도 없는 주인공이 그야말로 만화주인공같은 남자를 만나서 갖은 난관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러브러브 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순정만화의 스토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단행본이 아니라 내 여동생이 매달 받아보던 만화잡지에서 였다. 그리고 여동생과 따로 떨어져서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더 이상 만화를 보지 않았다. 굳이 내가 찾아 나설만큼의 애정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녀의 단행본을 하나 둘씩 사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것을 빌려보는 것으로 만족스러웠던 만화라는 매체를 내가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동생과 뗄레야 뗄 수 없었던 만화가 마침내 여동생에게서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단히 만화책을 많이 보는것은 아니다. 아주 이따금씩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놓고 그들의 책을 조금씩 사 보는 정도이다. 그리고 그 몇 안되는 작가들의 가장 위에는 '한혜연'이 있다.

이 책 자오선을 지나다는 4개의 단편이 있다. 여전히 그녀만의 색이 뭍어나는 작품들이다. 내가 제일 재밌었던건 마지막 단편인 '시안의 오후' 였다. 기대했던것 보다 크게 재밌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장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안쓰러운 것은 한때나마 만화를 그린다고 껍적댄 여동생 덕분에 만화가 얼마나 노가다인지를 아는데 그걸 단돈 5천원에 팔아야 한다는 현실이다. 어느 소설책 못지 않게 힘들이고 고생을 했을텐데 요즘의 소설책들의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파니 만화가들이 밥을 굶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정도의 페이지와 퀄리티를 가진 만화책은 한 8천원 정도 받아도 괜찮으련만... 택도 아닌 내용과 단순해빠진 그림만 가득한 카툰집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다. 이런식으로 가다가 나중에는 도닦는 심정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만화가를 할까 싶다. 그렇게 되기 전에 한권이라도 더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즐기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공짜로 즐기면 (대본소에서 빌려보는것 같은) 또 언젠가는 조금 다른 형태의 댓가를 치를것이다. 예전 경기 같았으면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달고 나왔을 이 책이 5천원 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책값이 싼걸로 마음 아프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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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2-2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혜연이란 작가가 이 글을 보면 눈물을 흘릴 것 같아요.

송년선물도 이런 선물이 없을 듯 싶구요.

창작의 기쁨은 이쯤에서 완성되겠지요. 플라시보님

플라시보 2004-12-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흐...뭐 재밌는 만화를 써 주시니 저 정도의 칭송은 받아야지요. 책값이 너무 싼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더라구요. 자꾸 이러다가 보면 만화계 자체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구요. 그럼 자꾸만 일본 만화만 봐야 하잖아요. 재밌어서 일본만화 보는건 괜찮지만 우리 만화 볼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본만화만 봐야 한다면 슬플것 같아요.

마냐 2004-12-3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호박과 마요네즈보다 훨씬 더 땡기는군요...

플라시보 2004-12-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호박과 마요네즈도 그렇고 자오선을 지나다도 그렇고 둘 다 재밌어요^^

픽팍 2005-01-1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지금은 폐간된 잡지 owho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것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네요;;
정말이지 만화계 너무 걱정이 많이 되네요;;;;;
잡지에 한혜연 님 사진이랑 인터뷰도 실려서 읽어 봤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요 ㅋ
암튼 한혜연 님 작품은 다 독특하고 의미있는 것 같아요 ㅋㅋ

플라시보 2005-01-1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그러고 보니 만화 잡지도 많이 폐간이 되었죠? 저도 예전에는 만화잡지 많이 봤었던것 같은데... 요즘은 통 안보게 되더라구요.

비로그인 2006-11-2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잡지 나인이 그립네요//
사려고 하니 품절이네요 한혜연님 팬인데;;;;
만화가 생활적인 일본이 이럴땐 부러워요 잡지의 천국이라던
만화잡지도 연령별로 있다죠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