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었던 영화는 바로 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 열정과 애정'이었다. 허나 내가 쓴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영화에 실망을 한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1.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1편이 재밌는 경우 2편은 더 재밌어야만 재밌다고 느낀다. 1편 정도로 재밌으면 2편은 재미 없다고 느껴진다.)

2. 나이를 먹어서 (사실 1편이 개봉할때 내 나이는 스물 여섯이었다. 그때는 서른 두살 브리짓 존스의 얘기를 웃으며 볼 수 있었지만 곧 서른을 앞둔 지금은 우스꽝스런 노처녀 얘기를 마냥 웃으며 보긴 힘들다.)

3. 원작이 없어서 (1편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동명의 소설책을 영화로 옮긴 것이었으나 2편의 경우는 원작이 없이 그냥 영화사에서 지들끼리 뚱땅거려서 만들었다.)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브리짓과 마크 다씨(콜렌 퍼스) 그리고 다니엘 클러버 (휴 그렌트)의 삼각 관계는 여전히 이어진다. 하지만 뭔가 김이 빠진것 같다. 1편에서도 마크 다씨는 꽤나 괜찮은 남자였지만 2편의 몰아주기 (여자가 꿈꾸는 완벽한 남자) 는 너무 심했다. 현실에 존재할것 같지 않게 마크 다씨는 너무도 괜찮은 남자이다. 그에 비해 매력적인 바람둥이였던 다니엘 클러버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이건 브리짓이 머리에 총을 맞지 않는 한 (오...무혀기. -안다 병인거-) 마크 다씨가 아닌 다니엘 클러버를 선택할 리가 없다. 누가 봐도 어떤 선택을 할지 당연한 영화에 갈등이 뭐가 있겠는가! 허나 제작진은 갈등없는 브리짓 존스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쌩 어거지를 써 가며 갈등요소를 만들어낸다. 더없이 완벽한 마크 다씨는 가끔 영화의 갈등 요소를 제공하기 위해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면면을 불현듯 보여주고 브리짓 존스의 오바는 재기발랄과 귀여움을 넘어서 끔찍의 수준에 다다른다. 거기다 마크 다씨와 브리짓의 재결합을 위해 등장하는 태국 장면은 어거지의 최고봉이라 일컷기에 손색이 없다.

제작진의 고초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1편은 너무나 흥행을 해 버렸지, 위에서는 전편만큼 못만들면 알지? 분위기지, 원작은 없지, 성공은 해야겠지, 여러모로 골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객들이 '그래 니네 마음 다 알아' 하면서 너그러워 질 수는 없는 법. 저럴꺼면 왜 굳이 돈을 발라가며 해외로케를 했을까 싶은 장면들과 유아들이 보는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마냥 단순하기 그지없는 등장인물의 캐릭터 설정은 안타까움마저 불러 일으킨다. 나름대로 삶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았던 브리짓 존스는 오간데 없고 우리가 마주하는건 살덩어리에 주책바가지 노처녀이다. 멋진 남자친구가 없다면 니네도 얼마 안있어 이렇게 될꺼야 라는 듯이 말이다. 사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노처녀 (이 말을 싫어 하지만 혼기 꽉 찬 처녀는 더 싫으므로 편의상 이걸 쓰겠다.) 들이 보기에 상당히 불편한 영화이다. 이제 생물학적 나이로 막 노처녀 대열에 합류해서 노처녀다운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한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 영화는 노처녀의 삶이란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것이 전부인양 그려놓았다. 거기다 멋진 남자가 생겨도 뚱뚱한 브리짓은 안심을 못하고 그의 주위를 맴도는 날씬한 동료를 끊임없이 질투하고 의심한다. 그러더니만 태국땅에 가서 태국 여자들의 얘기 (남자친구가 때리고 돈뜯고 마약하고)를 듣고 느낀다. '내가 만났던 마크 다씨는 얼마나 완벽한 남자인가!' 하고 말이다. 거기다 그녀는 직장에서 더없이 무능하다. 그녀가 늘 주장하는 프로패셔널은 오간데 없고 오직 그녀의 뚱뚱한 몸매로 우스꽝스러운 장면만을 연출할 뿐이다. 그녀가 리포터로 살아남는 이유는 화면에 거대한 엉덩이를 자주 드리밀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그녀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더라도 말이다. 또한 그녀는 그런 화면이 나가는걸 창피해하지 않는다. 다만 위에서 야단을 칠까봐 걱정을 할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위에서는 코메디보다 더 헉겁할 그 장면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고 브리짓은 안도한다. 나이많고 뚱뚱한 여자 브리짓은 직장에서도 애정문제에 있어서도 주체적인 모습은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다.

제작진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반전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반전이라는게 정말 어이가 없다. 뚱뚱한 브리짓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아름답고 늘씬하며 능력있는 여자는 아예 브리짓의 상대조차 되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대체 마크 다씨처럼 매력적인 남자가 왜 브리짓 같은 여자를 만나는지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건 단지 브리짓이 뚱뚱하고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다. 브리짓은 전혀, 눈꼽만큼도 매력이라고는 없는 여자이다. 저 나이가 되도록 누군가에게 맞아죽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로 하는 짓거리 마다 실수로 가득하다. (물론 마크 다씨 같은 능력있는 남자만 만나면 그녀의 바보같은 짓거리는 문제가 안된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 그리고 잘 사귀는 것은 여자의 인생에 있어 분명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문제라고 말 하는 것과 전부라고 말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열정과 애정이건만 영화 어디에도 열정과 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위해 엄청나게 살을 불리고 완벽에 가까운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는 르네 젤위거의 노력은 가상하나 영화는 영 아니올씨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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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2-1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만순이가 이거 본다고 1편을 억지로 보게 했는데 ㅠ.ㅠ 그리 재미없다니... 실망입니다... 전 1편도 별로였다구요...

플라시보 2004-12-1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1편이 별로였다면 2편은 당연히 더욱 더 별로입니다. 전 1편은 재밌게 봤었거든요.^^

진/우맘 2004-12-1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1편을 안 봐서 그런지, 2편을 재미있게 본 사람도 여기 있는데~^^;

BRINY 2004-12-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도 원작이 있긴 있어요. 브리짓과 친구가 태국까지 날라가서 나라 망신, 여자 망신 다 시키고, 마크 다시가 또 그걸 구해주는 내용이죠?

브리짓이 저랑 동년배란 설정이라서 1편은 재밌게 봤는데, 원작 속편을 읽고나니, 이거 뭐냐? 싶더라구요. 결국 여자 팔자는 남자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달렸다는 얘긴지. 남자들은 똑부러진 여지보다 브리짓같이 덜 떨어진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지. 제 남동생이 브리짓 같은 여자를 사귄다면, 만사 제쳐두고 말릴 겁니다.

플라시보 2004-12-1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흐흐. 개인 차이죠 뭐. 저도 남들이 엄청 재미없다고 욕한 영화 재밌다고 그런적 많았어요.^^



BRINY님. 어머. 원작이 있었군요. (이런 망신스러운..하하) 아무튼 저도 주변 남자중에 브리짓 같은 여자를 사귀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만사 제쳐두고 말릴껍니다.^^

마냐 2004-12-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브리짓이 사랑스럽지 않다는거..역시 그게 문제라니까요.

panda78 2004-12-1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짓 존스의 애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죠. 근데 영화보단 낫지만 책도 1권만 못하더라구요. 저도 기대하면서 보러 갔는데 실망했어요.;;

플라시보 2004-12-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그렇죠. 사랑스럽지 않다는거. 사실 1편에서는 우리의 브리짓양 꽤나 사랑스러웠잖아요. 그 스위티함이 쫙 빠져버린것 같아요.



panda78님. 음...책 제목은 브리짓 존스의 애인이군요. 책도 별로, 영화도 별로...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