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계절이 그래서 그런지 유독 따뜻하고 낭만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다. 극장가를 보면 온통 말랑말랑한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들 뿐이다.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남녀가 9년이 지나 다시 만난 이야기 비포 선셋. 아내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고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남편의 이야기 내 머릿속의 지우개.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시점에서 다시 애인이 살아있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일상이 반복되는 이프 온리. 등등 극장가는 이 계절 사랑에 관한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볼 것인가 하고 묻는것 같다. 그래. 앞서 나열한 사랑 타령을 빼면 볼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적어도 웃기기는 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뭐 결과적으로 이 영화 아주 웃겼다.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이 존경스러울 만큼 웃겼다. (동시에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영화의 원제는 13 going on 30 이다. 차라리 이 제목을 달았으면 나았을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쓸데없이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이라는 무지하게 길면서도 영화와 별 상관없는 제목을 달아놓아서 나를 헤깔리게 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13살 생일을 맞은 덜생긴 왕따 제나 그녀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옆에는 늘 그녀만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친구 매트만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싫다. 그래서 그녀는 소원을 빈다. 서른살이 되게 해 달라고. 그러자 다음날 거짓말처럼 제나는 서른살이 되어 있다. 주변의 환경도 모두 변해있다. 잘 나가는 잡지사 부편집장. 거기다 엉덩이가 끝내주는 하키선수 애인. 생일날 자신을 따돌리고 맥주를 마시러 가자며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초를 친 퀸카 루씨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가 되어 있다. 늘씬하고 가슴도 빵빵하고 (그녀는 늘 휴지를 넣어 다녔었다.) 근사한 고급 아파트에 살고. 제나는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완벽한 서른의 자신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조금씩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13살을 상대로 만든 영화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실제로는 13살인 제나가 서른의 몸을 가지고 좌충우돌 하는 것은 너무 뻔해서 잠도 다 달아날 지경. 거기다 마지막에는 결국에는 순수한 13살의 제나가 개판 오분전의 상황을 모두 수습하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림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순수는 정의와 승리랍니다 여러부운' 해 주신다. 이거 대략 어른들 보라고 만든 영화가 맞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거기다 제니퍼 가너는 아무리 봐도 무언가 대단히 매력적인 부분이 쏙 빠진 줄리아 로버츠의 이미테이션 같다. 사람 생긴거 가지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언제 자기 생긴거 생각하고 배우들 생긴걸 따졌는가. 아무튼 제니퍼 가너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겨서 13살의 제나가 꿈꾼 완벽한 서른이 되기에는 좀 모자란다. (그래도 영화사에서는 아역 배우들과 어른 배우들의 닮은꼴을 찾느라 고심한 흔적은 보인다. 누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아도 아. 그 애가 커서 쟤가 된거구나 할 정도이다.)


서른의 삶이 열 세살의 순수로 어떻게 뒤집어 엎을 정도가 된다면 아무도 지금과 같은 서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열 세살의 제나는 매트를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단지 서른의 몸을 가지고 나니 갑자기 매트가 좋아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물론 그녀가 금방 서른이 되었을때는 도움을 청하려고 매트를 찾았지만 매트는 그녀와 고교 졸업 이후 만나지도 않은 사이이므로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매트에게 의지한다. 열 세살때는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새삼스럽게 솟구친것 같지도 않은 매트에게 말이다. 그녀에게 닥친 위기들을 해결하는 방식도 열 세살의 수준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야말로 순수 만만세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귀여운 장면이 있기는 하다. 파티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추는 장면.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으로 나왔던 배우 앤디 서키스가 뒤늦게 합세해서 춤을 추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추억의 스릴러를 춘다고 해서 영화 전체의 엉성함이 용서 되지는 않는다. 골룸이 나와서 문워크를 한다고 해서 봐 줄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전혀 완벽하지 않다. 조금 날씬하고 가슴도 옛날보다 확실히 커지긴 했지만 완벽한 그녀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더구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도 썩 완벽치 못한데 그녀의 감춰진 부분이 드러나면 더더욱 그러하다. 백번 양보해서 그녀가 완벽하다 치고 딱 한가지 없는 것이 뭐였을까? 그건 바로 사랑이다. 잘나가는 여성지 부편집장 자리를 잡고 근사한 맨션도, 남자친구도 있는 그녀이지만 영화는 주장한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결국 그녀는 모든걸 다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어도 사랑하는 매트를 차지해서 다 괜찮아진다. 남자들은 사랑을 하게 되어도 절대로 일을 포기하지 않는 반면. 영화에서 언제나 잘 나가는 여성이 남자를 만나면 일을 포기한다. 마치 '일 따위는 사랑에 비하면 쥐똥같은 존재였어요. 그걸 내가 왜 몰랐을까요. 아하하하하하하' 하는것 같다.

며칠째 일에 시달리느라 죽을것 같은 몸을 이끌고 본 영화가 하필 이 영화라니 하며 한없이 저주스러웠던 영화. 초반기에는 추억의 음악과 패션 덕분에 그럭저럭 즐거웠지만 제나가 서른이 되고 부터는 그 재미마저도 없어서 영화가 꽤나 북적댐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지루하다. 이 영화는 단언컨데 영화관에서 보면 백발백중 후회하고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볼 문제다. (물론 어린 조카와 꼭 영화를 봐야겠는데 볼것이 없다면 비디오로 보는 것 정도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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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0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님의 평이 훨씬 더 재미있네요. 시원시원 합니다.

옛날 정영일선생이 조선일보에 쓰던 평이 생각날 정돕니다.

테잎이나 DVD는 안보시나 보죠?

케이블 영화평까지는 있는데 이건 없어서요.

sweetmagic 2004-11-0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ㅡ 재미있는데요 ? ㅎㅎ 님 영화평이...그리고 저 사진속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 몽땅가지고 싶네요 ㅎㅎ

플라시보 2004-11-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alei님. 후훗. 전 왜 이렇게 거품물고 욕하면 남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는걸까요?^^ 이러니 성질이 점점 더러워 질 수 밖에..하하. (핑계는...) 비디오테잎은 간혹 봅니다. 요즘 시간이 없어서 잘 보지는 못하구요. DVD는 아쉽게도 플레이어가 없어 못 봅니다.



sweetmagic님. 저두요. 저 신발 (비록 내 타입은 아니나) 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스타일은 달리 해서 가짓수만 비슷하면 좋겠네. 하하^^

비로그인 2004-11-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단기술의 결정체를 즐기지 못하다니.....안타깝습니다.

플레이어는 무지 싼데 DVD, 이게 도저히 감당하기 힘드네요.

거기다 주변을 좀 갖추겠다고 (대형TV, 6.1CH 오디오, 스피커...) 나섰더니만

파산이 그리 먼길도 아니더군요.

플라시보 2004-11-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나 하면 제대로 하고 아님 말자 주의기 때문에 파산할까 두려워서 그냥 TV에 비디오를 보는 구시대기술의 절정체만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