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끝으로 반지 시리즈를 모두 마스터 했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이제는 더 이상 극장 의자에 앉아서 목과 무릎 관절을 혹사시키며 3시간 넘게 앉아있어도 되지 않음에,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은걸 참느냐 가느냐 하고 갈등하지 않아도 됨에. 나는 진심으로 안도한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 영화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판타지물을 영화화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듯 하다. 그러나 나는 과연 다들 칭찬 할 만큼 반지의 제왕이 재미면에 있어서도 만족스러웠는지는 모르겠다. 여러가지 환상적인 장면들을 보는 것의 쏠쏠한 재미는 있지만 영화 내내 난무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우와!' 할 만한 장면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고만고만하며 내용은 이미 증명되었고, 따라서 영화 반지의 제왕이 기대는 것은 스펙터클하고도 어메이징한 화면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그런 장면들이 영화가 끝날때 까지 계속 되므로 어느덧 눈에 익고 자연스러워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나마 2편에서는 눈 덮힌 산이 장관이었는데 3편에서는 그런것도 없었고 군중씬에서 숫자로 압도하려고 독하게 어금니를 깨물었는지 정말 개미떼 처럼 많이도 등장했다.

나는 반지의 제왕을 보는 내내 단 한 인물에게만 집중했다. 꽃미남 레골라스. 남들은 다 창, 칼 들고 험하게 피 튀기며 싸울때 우아하게 화살을 쉭쉭 날려서 상대방을 제압하던 그. 모든 이들의 머리가 안 감은듯 찐득거리거나 그와 헤어스타일이 가장 비슷한 마법사 마저도 잔머리들이 휘날리는데 어떤 험한 전투에서도 완벽한 올빽을 유지했던 그. 모두 얼굴에 검댕이 묻고 옷이 더러워져도 홀로 빛나게 완벽한 얼굴에 먼지하나 없었던 그. 거기다가 날리는 화살은 족족 가장 적진의 가장 중요한 인물 혹은 시설물을 쓰러뜨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1편에서의 레골라스는 사실 그냥 꽃미남에 불과했다. 화면 저 뒤에 서 있어도 그 얼굴 아름다워 죽겠구나 정도의 존재였었으며 등장하는 씬도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그러나 1편에서 레골라스에게 환장했던 여인네들의 염원이 영화사에 가 닿았는지 2편부터 레골라스의 활약은 그의 외모 만큼이나 눈부셨다. 특히 계단 난간을 나무 판대기를 타고(딱 보드 타는 자세) 내려오면서 화살을 쏘던 장면은 압권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진정 레골라스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3편에서도 레골라스는 역시 완벽한 올빽과 과묵함, 약간의 미소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더니만 막판 보너스로 달리는 코끼리 올라타고 그 위에서 적들을 화살로 쓰러트리기 쑈를 보여줬다. 도저히 올라탈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는 중력의 법칙을 비웃듯 가볍게 거대한 코끼리를 올라탄다.(코끼리가 얼마나 거대하냐면 말이 거의 거의 강아지 사이즈로 보일 정도이다.) 거기다 발에 찍찍이라도 붙였는지 경사가 끝내주는 코끼리 엉덩이 쪽에 붙어서는 똑바로 서서 화살을 날린다. 정말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반지의 제왕이 원래 판타지물이기 때문에 마법사도 등장하고 등등 온갖 말도 안되는 장면이 산재하건만 그 가운데서도 레골라스의 코끼리쑈는 단연 말도 안됨의 왕좌를 차지하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었다. 관객들은 레골라스가 코끼리를 올라탈때부터 약간 이상하게 여기다가 그 위에 올라가서 적들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산만한 코끼리조차 넘어뜨리자 거의 포기한듯한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은 일제이 이렇게 말 하고 있었다. '그래 레골라스 니 잘났다'

일개 꽃미남에 불과했던 레골라스. 험학한 것들이 많이 등장하니까 잘 생긴 남자가 하나라도 있어야 판타지에 좀 약한 여성 관객들을 끌어들일 것이란 의도가 너무나도 빤히 보였던 그. 그의 자리는 1편에서는 실로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였다. 그는 마법사의 흰 옷자락이 더럽혀지는 마당에서도 혼자 세탁소에서 옷을 맡겼다가 방금 찾았는지 티끌은 커녕 주름한점 없는 옷을 입고 있었고, 남들 다 얼굴 시커멓게 더러울때 혼자 물티슈라도 가지고 다니는지 분을 바른마냥 뽀샤시한 얼굴을 자랑했으며, 수세미같은 머리나 기름 혹은 땀으로 떡진 그의 동료들의 헤어와 달리 늘 단정한 올빽을 한치 흐트러짐 없이 유지했다. 레골라스는 분명 전용세탁사와 물티슈, 헤어젤을 늘 상비하고 다니는 것이 분명하다.

매트릭스 와 반지의 제왕을 다 봤으니 이제 남은 시리즈는 해리포터이다. 세 개의 시리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단연 매트릭스이며 가장 사랑스런 캐릭터는 해리, 제일 사귀고 싶은 캐릭터는 네오, 제일 갖고 싶은 캐릭터 인형은 스미골. 제일 위대하다 생각되는 캐릭터는 역시 우리의 꽃미남 레골라스다. 레골라스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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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3-12-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골라스, 제가 있던 영화관에서만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레골라스 얼굴만 나오면 엄청난 크기의 '아~~~'란 감탄사가 터져 나오더군요..;; 나중에는 남자들의 반발심에서 어웨인(? 이름을 잘 모르겠음) 이라는 여자가 나올때 일부러 '아~~'란 감탄사를 -_-;;

mannerist 2003-12-26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개의 탑 볼 때가 작년 이맘때, 전역한지 얼마 안되어 곤궁하던 시절이라 서울 모처의 조조 + ttl할인으로 봤어요. 방학 오전 시간대라서 여고생들이 꽤나 많았는데요. 아우... 레골라스 나올때마다 꺄아악하는 소리가 다소 썰렁한 극장을 꽉꽉 메웠더랬죠. 압권은 계단에서 보드 타는 폼으로 미끄러지면서 화살을 먹이던 장면. 농담이 아니라 "꺄아아~~" 자지러지는 소리에 CGV빵빵한 사운드가 묻혀버리더군요. -_-

어디서 본거라 퍼옵니다. 역시. 올빽이 낫네요.







_ 2003-12-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생들이 많았던 시간대였다면 장난 아니였겠군요..;;(역시 올백의 엘프로 분장해서 약간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미하는게 나은 듯.;;)

마냐 2003-12-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장면이 보너스라는데 전적으로 동감. 또한 반지 시리즈가 원작의 위대함에 비해 어땠느니, CG의 절정판이니 하는게 별 의미 없으며, 레골라스 하나의 매력이 엄청났다는데 동감...말도 안되는 완벽한 차림새도 어쨌든 멋있었지만. 캐리비안 해적의 올랜도도 정말 귀여웠답니다. ㅋㅋㅋ

진/우맘 2003-12-3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오윈. 로한의 왕의 조카딸, <난 남자 인간이 아니야!>하면서 나즈굴을 무너뜨린 여전사를 말씀하시는 듯. 전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그 후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요약하지 말고 어찌 잘 먹고 애는 몇을 낳았는지 시시콜콜 구경하고 싶은 묘한 취미가 있지요. 그래서 반지의 제왕을 책으로 읽을 때 무척 행복했습니다. <두 개의 탑>의 그 음울한 모르도르 뻘흙에서 벗어나서 <왕의 귀환>에서는 거의 절반 가까이를 어찌 잘 먹고 잘 살았는지 보여줬거든요.
영화를 먼저 본 친구가 쓸 데 없는 것까지 너무 보여줬다고 투덜거리기에 내심 기대했는데...칫. 사루만이 동네 점쟁이 수준으로 몰락한 모습도 안 보여주고~돌아가는 길에 요정네 들리는 것도 없고~ 그저 샘의 결혼식만...쩝.
그런데, 1편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느끼는 바이지만, 샘 정말로 윤정수 닮지 않았나요? 제가 볼 땐 똑같은데, 그다지 열렬한 동의를 얻어본 적이 없습니다.

진/우맘 2003-12-3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방금 이 글을 쓰고 나니 대망의 알라딘마을이 오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