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다른건 다 제쳐두고 다코타 패닝이 어떻게 컸는지가 궁금해서 보게 되었다. 아이엠 샘에서 대 배우 숀팬의 연기에 전혀 가리지도 않았고 그 카리스마에 눌리지도 않았던 다코타 패닝. 그렇다고 해서 미달이과의 톡 까진 애 답지 않은 애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만큼이나 놀라운 발견이었던 다코타 패닝은 다행스럽게도 아주 잘 크고 있었다. (외모로나 연기로나) 아이엠 샘에서 보다 스토리상에서는 분명 중요한 인물인데 출연하는 시간은 많이 줄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 했다. 하지만 다코타 패닝만 보면 만족이야 하면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이 자국 이외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뒷골이 땡겼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맥시코 시티에 사는 한 가족이 아이의 경호원을 고용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그만 납치가 되어버리고 범인은 몸값을 요구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고 몸값을 약속된 장소에 뒀으나 일이 틀어져서 몸값을 받으러간 범인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열받은 범인은 아이를 죽여버린다. 다소 무뚝뚝했지만 아이를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은 경호원은 아이를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뭐 한 남자의 복수극? 그쯤 될 것이다. 보는 내내 레옹을 떠 올렸을 정도로 아이와 경호원의 관계는 각별하다. 이 영화는 백인 여자아이와 그를 지키는 경호원. 즉 영웅을 흑인으로 설정해서 일면 인종편견을 타파하는듯 보인다. 하지만 배경인 멕시코 시티에 사는 맥시코 인간들은 전부 쓰레기로 묘사 해 두었다. 무식하고 가난한것도 모자라서 잔인하고 엉성하기까지 한 그들을 보면 기도차질 않았다. 흑인 영웅은 너무도 손쉽게 아이를 납치한 조직의 수뇌부까지 들어간다. 그나라 경찰들도 어쩌지 못하고 기자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조직이지만 우리의 흑인 영웅이자 미국인에게는 누워서 떡먹기 쯤이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의 엄마는 같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록 알콜중독이긴 하지만 흔쾌히 그를 고용했으니까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한다. 딸아이의 아버지인 맥시코인은 그럭저럭 괜찮은 아빠이지만 막상 문제가 닥치니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자로 나온다.  결국 이 영화는 미국인은 미국인이 지키고 미국인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경호원의 등장으로 이 가족은 맥시코 가족에서 미국인 가족으로 새롭게 재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피부색이 다른건 용서를 했나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피부색이 달라도 미국인일것.

다코타 패닝과 덴젤 워싱턴은 호흡도 잘맞고 연기도 썩 잘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이 영화가 '유괴
나빠요' 영화로 착각할뻔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말하려는게 아니었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코믹스 안이건 실제 세상에서건 반드시 미국인이며 미국인일 수 밖에 더 있겠냐는 영화이다. 자국에서 일어나는 숱한 유괴사건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한수 더 떠서 경찰까지 깊숙하게 개입되어있는 썩어빠진 나라. 그 나라의 한 가운데서 우리의 외롭고 고독한 영웅 덴젤 워싱턴은 복수를 시작한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복수이긴 하지만 복수라고 부르기에도 뭣할 정도로 너무나 쉽다. (그렇게 잘 도와줄것 같으면 지들이 잡지 왜 저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멕시코인 경찰간부와 여기자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 정계와 손을잡고 움직이며, 멕시코인이라면 누구나 그 존재를 알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조직을 미국인 혼자서 간단하게 일망타진한다.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나빴던 것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었다. 멕시코인에게 감사한다는 자막을 보면서 난 진짜 이들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무식한 나머지 자기 가족들 외에는 관심도 없고 유괴같은건 소매치기처럼 쉽게 하는 인간들. 다 썩어빠졌다는걸 알지만 도려낼 용기는 커녕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인간들. 거기다 가난하고 비열한 인간들. 그런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곳으로 묘사해놓고 제일 마지막에 땡큐 멕시코 시티 한마디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는 참 편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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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10-1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면서 뭔가가 불편했었는데, 그걸 이렇게 멋진 글로 표현해 주셨군요
-부리 드림-

플라시보 2004-10-1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별말씀을^^

2004-10-13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흰 바람벽 2004-10-15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 이걸 비싼 돈 주고 봤어요. ㅜㅜ..보고 나서 엄청시리 욕했죠.
하지만 평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써 주시니 제 속이다 후련해지네요. ^^;;
ㅋㅋ 저도 레옹과 비스무레 하다 생각했는데.
것도 마지막 자막 올라가는거 보고 발끈해서 더 욕 나왔잖아요. 흐미~

플라시보 2004-10-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 아깝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에서 뭔가 울컥 하긴 하더라구요. 대체 미국의 자국 우월주의는 어떤걸로도 멈출수가 없는가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특히 자막. 정말 헉겁했습니다. 이것들이 누구 놀리나 싶었고 제가 만약 멕시코인이었다면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것 같아요.

마냐 2004-10-17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플라시보님 감상이 저와 비슷해서 넘 반갑고 고마운거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