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기대를 걸었다면 딱 하나. 그저 차승원이 웃겨주길 바란 것이다. 선생 김봉두에서 부터 차승원은 원톱으로도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고. 이번 영화 귀신이 산다의 흥행 여부에 따라 굳히기냐 다소 이른 행보였느냐가 점쳐질 수 있었더랬다. 물론 장서희라는 브라운관 스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92년 이후 첫 등장이며, 사실 TV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주연을 맡았을뿐 늘 조연급이었던 그녀에게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조금 안심을 하게 해 주는 요소는 신라의 달밤과 광복절 특사를 만들었던 김상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미 배우 차승원과는 위에 언급한 두번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으니 둘의 궁합을 의심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차승원도 김상진도 어리버리하게 영화에 끌려가는듯한 인상을 주고 간만에 주연급으로 발돋움한 장서희는 예쁘고 귀여운척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내가 보기에 차승원은 그다지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좀 한다 한다 하니까 자기가 정말 잘 하는줄 아는. 그래서 연기가 지나치게 자신감있고 오바하는 부분도 좀 눈에 거슬리는 그런 배우다. 다만 여태 맡아왔던 캐릭터에서 모델출신의 말끔한 외모를 한번도 써먹지 않고 오히려 키크고 싱겁고 약간은 덜떨어진 인간을 표현해 왔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그에게는 생긴 이미지대로 가는게 가장 편했겠지만 의외성을 보여줌으로 인해 그가 여느 모델출신의 배우들보다는 조금 더 장수할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승원의 연기를 가만히 보다가 보면 너무 자신의 감과 자신만의 계산된 연기에 빠져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은 보이되 그 깊이는 깊지 않다. 그럴것이 너무 한쪽으로만 편중된 연기를 했고 따라서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장기들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 거기에다 여태 보여줬던 꺼벙한 인상을 한층 더 가중시켜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망가진다. 그렇지만 그의 망가짐과 오바액션도 영화가 괜찮을때야 빛을 발하겠지만 수준 미달의 영화에서는 안타까운 몸부림 정도로만 비춰진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뭐가 문제였을까?

어렸을때 부터 남의집살이에 이골이 난 박필기(차승원)는 아버지가 죽기전에 유원으로 '내 집을 사라'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뼈빠지게 노력을 한 결과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멋진 주택을 장만하게 된다. 전망도 좋고 최고급 마감재를 써서 고급스러운 집이지만 주인이 갑자기 이민을 가는 바람에라는 이유로 몹시 수상쩍게 싼 가격에 구입한 생에 최초의 내집. 하지만 역시 싼데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그 집에 귀신이 산다는 것이었다. 이사 첫날부터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던 집. 집에 살고 있던 귀신 연화(장서희)는 차승원을 내보내기 위해 별의별 해괴한 짓을 다 벌인다. 그러다 어느날 차승원은 벼락을 맞게 되고 그 이후로 귀신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필기는 연화를 보게 되고 그때부터 둘의 아웅다웅 동거가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스토리인데 이대로만 나갔으면 괜찮았을 것을 감독은 여기다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차승원이 귀신을 보게 되는데 그 주변에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장항선이 등장하고 그는 무슨 도인이라도 되는마냥 차승원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지시를 한다. 단지 집에 귀신이 산다는 것에서 귀신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 그로인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온갖 귀신들을 다 보게되고 일일이 간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수는 귀신 연화의 캐릭터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귀신 연화를 맡은 장서희는 오로지 이쁘고 귀엽게 보이는것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물론 감독이 여태 봐왔던 머리풀고 으흐흐흐흐 하던 귀신이 아닌 예쁘고 깜찍한 귀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영 와닿지가 않는다. 거기까지는 용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귀신 연화가 지닌 사연으로 넘어가면서 얘기는 갑자기 사랑과 영혼류의 러브스토리로 빠져 버린다. 고스터 바스터즈와 식스센스 그리고 사랑과 영혼의 짬뽕이 바로 본 영화인 것이다.

차승원이야 원래 코믹 연기를 어느정도 하기 때문에 조금만 참는다면 그다지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화를 맡은 장서희는 여태 조연만 맡아서 예쁘고 귀엽게 나오지 못한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러 나온것 같다. 아역배우 출신이라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비교적 감은 잘 잡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에서 100보 정도는 뒷걸음질 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인터뷰때마다 조연일랑 주연일때랑 조명이 다르더라 (주인공들이 다 이쁘고 멋지게 나오는건 조명탓도 크다.) 메이컵하는 시간이 다르더라 협찬받는 옷이 다르더라 하면서 노래 노래를 부르더니만 정말 맺힌게 많았나보다. 거기다 어떤 씬에서도 귀엽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정말이지 안타까움을 더할 뿐이었다. 물론 미스코리아 출신의 손태영 (박필기의 애인)에 비하면 연기를 아주 잘 하는 거지만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손태영은 대략 국어책을 줄줄 읽어주신다. 대사처리도 안되는 사람이 어떻게 연기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신통방통할 정도로 그녀는 성의없는 연기를 보인다. 내가 그녀라면. 그래서 연기로 밥먹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어디가서 연기지도라도 받겠구만 그녀는 '난 대신에 미스코리아잖아요. 미스코리아가 이쁘면 됐지 연기까지 잘 해야 할 필요 있나요?' 라는 생각을 가진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차승원 혼자 연기 안되는 여배우와 이쁜척 외에는 관심없는 여배우를 끌고 가느라 고군분투한다. 안그래도 오바성이 짙은 그가 남들의 부족한 면까지 채우려니 더더욱 오바를 하는 수 밖에. 그래서 이 영화에서의 차승원의 연기는 상당히 불편하다. 웃긴 웃겠는데 자연스러운 폭소라기 보다는 노력에 대한 안쓰러움에 짓는 쓴웃음 같다.

소재 자체는 상당히 신선하고 재밌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전체적인 큰 맥락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 중구난방이다. 끝부분으로 가면 감동까지 주려고 한다. 왜 감독들은 한가지 장르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스릴러와 코믹과 로맨스와 감동을 한 영화에 쑤셔박으려고 할까? 정말로 잘 만든 스토리가 아니라면 두어가지 장르의 혼합도 힘든판국에 뭘 믿고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제발 한 우물만 좀 팠으면 좋겠다. 말장난의 조합으로 있지도 않은 새로운 영화장르를 만들어가면서 이것과 저것의 짬뽕을 시도하는 짓은 이제 고만좀 하자. 얘매율은 좋게 출발했던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이 줄어든다는건 결국 영화가 재미없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P.S) 보고나니 마냐님이 감사용을 보라고 할때 그냥 그걸 볼것을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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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9-2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마지막 말씀이 안타깝습니다. 더 말렸어야 하는건데 말임다.
울 옆지기가 김상진표 영화, 꽤나 좋아햇는데, 이번엔 계속 엄청 투덜거리더라구요...

플라시보 2004-09-2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말려도 말 안들은게 저인걸요 뭘^^ (이노무 똥고집을 고쳐야 할텐데. 하하) 님의 부군께서도 저 영화 별로였나보군요. 저도 김상진표 영화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귀신이 산다는 좀 그렇더라구요.^^

sweetrain 2004-09-2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도저도 아닌 잡탕 찌개같더라구요. 차라리 한가지만 넣고 푹 고아 내놓는게 더 낫겠다 싶을 만큼..무슨 영화가 깔끔한 맛이 없어요.

플라시보 2004-09-2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그죠 단비님. 그냥 코메디로만 나갔어도 그럭저럭 반타작은 했을것을...쯪쯪.

마태우스 2004-09-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영화평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저도 <감사용>을 볼 것을 하고 후회를 합니다만, 추석 연휴 때 봐야할 영화 다섯편 중 감사용도, 그리고 이 영화도 들어 있었지요. 님의 영화평을 미리 읽었다면 가뿐하게 리스트에서 이걸 삭제했을텐데 아쉽네요.

플라시보 2004-09-2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 영화 정말이지 극장에서 보기 좀 아까운 영화였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