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라딘 마이 페이퍼에 처음으로 MOVIE & TV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나서 쓴 영화평이 킬빌1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평을 쓰는데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한편 칭찬 일색이었던 킬빌1과 조금은 다른 소리를 해야할것 같아서 마음이 찝찝하다.

딱 잘라서 얘기해 보자. 나는 만약 내 주변 사람이 '킬빌2 볼만해?' 라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 할것이다. 물론 이것은 킬빌2에 관한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극장을 나설때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반응으로 봐서 내 생각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더라는 부수적인 설명쯤은 붙일 수 있다. 또, 만약에 누군가가 킬빌1도 킬빌2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면 나는 킬빌1을 DVD로 보고 킬빌2는 비디오로 보라고 하겠다. 킬빌1은 DVD로 봐야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킬빌2는 굳이 DVD로 봐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즉 내가 킬빌1에 매료되었던 액션도 피튀김도 없다는 것이다.

킬빌2는 킬빌1을 설명하는 가이드 북 같은 역활을 한다. 원래 빌과 브라이드 (우마서먼)은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애꾸눈을 하고 간호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브라이드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는 왜 애꾸눈이 되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라이드의 결혼식에 왜 빌은 자신의 부하를 풀어서 쑥대밭으로 만들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등장한다. 아. 그리고 1편에서 임신중에 총상을 입고 코마상태에 빠졌던 우마서먼의 딸의 존재도 확인이 된다.

내가 킬빌2에 바랬던 것은 딱 하나이다. 전편보다 더 신나는 액션. 아니 전편만큼만 되어도 나는 심히 만족을 하며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킬빌2에서 제대로 된 액션은 우마서먼과 애꾸눈 여자가 트레일러에서 싸우는 장면 하나 뿐이었다. 전편에서 우마서먼이 루시루와 술집에서 대결하면서 보여줬던 88인과의 싸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킬빌을 보면서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째서 여전사에게 모성애를 접목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절로 생기는 모성애가 아닌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어거지로 씌여지는 듯한 모성애는 모든 육아를 여성에게 떠 맡기려는 음모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여자의 역활은 오직 좋은 엄마, 헌신적인 엄마만으로 한정되어 있고 남자들은 육아에서 벗어나서 사회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한다.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늘 그걸 미안해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사회생활을 하는 아빠가 아이에게 미안해 하는걸 보지 못했다. 똑같은 돈을 벌면서도 여자는 미안해 해야하고 남자는 가장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브라이드는 아주 멋진 여 전사였다가 2편에서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칼이고 뭐고 다 접어두고 좋은 엄마의 역활에 안주하려고 한다. 칼을 들고 싸울지언정, 킬러였을지언정 일단 아이만 하나 낳기만 하면 여성은 여성의 본능이었던 부드러움 다정함 친절함 등을 마치 슈퍼마켓에서 구입해다가 몸속에 집어넣은 듯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기 힘들다.

몰론 모성애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만약 모성애가 없다면 동물의 새끼중에 가장 연약한 인간은 아마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훨씬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더라도 인간에게 있어 모성본능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왜 그게 여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나가서 사냥을 하고 여자가 먹이감을 지키는 선사시대도 아닌 지금은 좀 달라져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여자들도 자기의 역활을 남자 못지않게 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자꾸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해서 '그래 일이고 사회적 지위고 다 때려치우고 내아이 하나 잘 기르는 좋은 엄마가 되자' 하고 여자를 한 인간이 아닌 엄마와 아내에서 그 역활을 한정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종 오마주가 등장해서 쏠쏠한 재미를 주긴 한다. 예를 들면 애꾸눈 여자인 데릴 한나가 입은 의상은 펄프픽션에서 우마 서먼이 입었던 옷과 똑 같으며 메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의 방 번호와 빌의 방 번호는 똑같다. (원화평은 메트릭스와 킬빌에서 모두 무술감독을 맡았다.) 또 우마서먼과 데릴한나가 싸우는 트레일러에는 데릴 한나가 출연했던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가 걸려 있으며 브라이드가 생매장될때 나오는 음악은 황야의 무법자에서 나왔던 음악이며 빌은 브라이드에게 '네추럴 본 킬러'(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썼던 영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전편의 화려한 액션의 계보를 이어주길 기대했던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인것 같다. 액션은 약했으며 지나치게 전편의 설명이 주를 이룬다. 거기다 우마서먼을 죽이려던 킬러와 (동양계같아 보인다.) 우마서먼은 모두 눈물겨운 모성애의 소유자들이다.

칼을 휘둘러서 베고 찌르고 짜르고 했던 전편의 주인공들은 권법으로 혈막기, 눈알뽑기, 뱀에 물리기 등 다소 약한 이유로 죽어가고 1편에도 내가 지적했던 것 처럼 지나치게 이미지만으로 접근했던 일본인의 이미지가 이번에는 중국인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우마서먼의 스승인 쿵푸의 고수 타이메이의 독특하고 우스꽝스런 행위 하나는 관객들이 실소를 금할 수 없을때 까지 반복된다.)전편에서 그렇게나 빌을 죽이기 위해 온갖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던 우마서먼이 막상 빌과의 대결시에는 초간단한 (뭐 배우긴 어려웠다고 나온다.) 권법 하나로 후다닥 빌을 죽인다. 그토록이나 유명한 한조의 검(전편에서 빌의 스승인 일본인이 만들어준 검.) 을 제대로 한번 휘두르지도 않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의 반응이 끝내줬다.

'눈알이라도 안뽑았으면 어쩔 뻔 했어'

괜히 봤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킬빌1을 재밌게 봤던 우리는 영화가 이랬건 저랬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고 말이다. 어쩌면 킬빌1을 봤던 관객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영화가 킬빌2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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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5-1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란 생각 많이 했었는데. 저도.

플라시보 2004-05-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성애야 인간 본능이고 또 가장 필요하긴 하지만 그게 꼭 여성에게만 강요된다는 것이 좀 그렇죠?

연우주 2004-05-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그래서 때로 부인하고 싶어지기도 했었습니다.

마태우스 2004-05-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주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희 서재엔 통 안오시고....
플라시보님/이거 볼 건데요, 보고나서 읽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