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비가왔다.
우산 같은건
일단 현재 비만 안내리면 절대 들고 다니지 않는지라
당연히 내게는 우산이 없었다.
우산을 사려고 근처 문구센타를 다 뒤졌으나
그 흔해빠진 투명 비닐 우산이 없었다.
막 급하게 사는 우산으로는 그 이상은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그냥 비를 조금 맞고 택시를 탔다.
비가 오기 때문에 집 바로 앞까지 좀 가 달라는 말에
아저씨가 대꾸했다.
'예쁜 얼굴에 비 맞으면 큰일나지. 당연히 앞 까지 가 드려야지'
그때.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 안예쁜데요'
그러자 아저씨.
힐끗 나를 보시더니만
'음...예쁜 얼굴은 아니네.. 뭐 근데 괜찮아' 하셨다.
대체 뭐가 괜찮다는건지.
싱글즈의 피처 에디터인 하연언니가 낼 책 이름은 로망백서이다.
언니가 수정전의 원고를 보내줘서 읽고 있는데
문득 나의 로망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첫째도 예뻐 져 보는 것.
둘째도 예쁘게 한번 태어나 보는 것.
셋째도 예쁜 여자가 되어서 살아보는 것이다.
예쁘다고 딱히 뭘 해 보겠다던가
예쁜 얼굴을 이용해서 뭔가 이루어 보겠다던가 하는건 없지만
그냥 예쁜 사람, 아니 여자가 되어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그럼 적어도 오늘 택시 안에서와 같은 일은 없을테니까.
(아마 내가 입을 다물었거나 저런 말을 했더라도 아저씨가 '아니야 충분히 예뻐' 같은 말을 들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