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에게는 이른바 굴욕 사진이란 게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걸 지못미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지못미의 뜻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란다. 나는 요즘 들어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한때 나의 영웅이었고 내 정신의 일부분이었으며, 팍팍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도록 내버려 두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예능 늦둥이라는 소리를 듣고, 화려했던 과거를 조롱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세상이 변했고, 또 대세를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은 그걸 원했을까? 혹시 밥벌이라는 절박함 앞에 마지못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기는 사람으로 소모되다가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노래를 부른다 해도 아무도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택했다. 우리가 다운로드 받아서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는 대신 홈피에 배경 음악 정도로나 그들의 음악을 소모하는 동안.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잃어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미사리에서 추억의 콘서트를 하거나 아니면 TV에 나와 제 스스로 망가지는 길 뿐이다. 오히려 과거의 영광이 크면 클수록,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지금은 요모양 요꼴 이라는 식의 웃음은 더 커진다. 이제 우리에게 그저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 혹은 음악을 잘 만드는 사람 같은 건 더 이상 필요치 않은지도 모른다.
요즘 잘 나가는 가수들은 가수로 인기가 조금 오르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개그맨 뺨치는 입담을 과시하거나 아니면 TV 드라마에서 연기를 한다. 어쩌면 그들은 노래를 하고 싶어서가 아닌, 단지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TV에만 나올 수 있다면 자신이 무엇으로 소모되던, 어떤 종목으로 어필하건 상관이 없는지도.
허나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재주밖에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음악을 택했고, 아마 가능하다면 평생 음악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보라. 그들 중 누가 처음처럼 음악을 지금까지도 하며 사는지를.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무대도, 또 노래만 부르며 살 수 있는 수입원도 보장되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조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자 이기적인 발상이다.
그랬어야 했다. 우리가 적어도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다면, 그들에게 그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제공했어야 했다. 음반을 사건 콘서트 장에 가건. 그들이 만든 작품을 즐기는 대가를 지불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음악은 다운받으면 그만이었고, 우리는 그들이 새로운 노래를 가지고 나오면 그 음악에 관한 얘기가 아닌.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십에만 더 귀를 기울였었다. 어쩌면 이제 그들은 그런 우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피땀을, 재능을 공짜로만 즐기려는 우리들에게 나는 그들이 여전히 우리를 팬으로 생각하는지 자신할 수 없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형태로 된 것들에게는 대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음악이나 영화 혹은 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그런 대가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들을 직업인의 차원으로만 봐도 일반인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 있어야 먹고 살 텐데, 그건 그냥 그들이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저 그가 TV에 나와 웃겨주기를. 숨겨진 과거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얘기들을 해 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무엇인가. 그들을 음악인 혹은 예술인으로 불러 줄 수 있을까?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사지에 몰려 마지못한 발악인데 우리는 그걸 보며 비웃고 있다. 과거에는 그렇게나 잘난 척 콧대를 세우더니 너도 별 수 없이 물벼락을 맞고 복불복을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단지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과거를 웃음거리로 팔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물론 그런 얘기들도 존재한다. 그들이 안일했다고, 이렇게 불황이 오기 전에 그들 스스로 각성을 해서 조금이라도 준비를 해야 했었다고. 일면 맞는 얘기들이다. 그들 중 분명 자신이 새운 왕국의 찬란함에 눈이 멀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왜 그런 그들을 고소해하는가. 직장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된 사람에게는 아무도 그러지 않으면서 우리는 유독 그들에게만 가혹하다. 그들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한낮 오락거리이다. 그들에게는 청춘을 바친 인생의 한 부분이건 말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음악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결혼 생활이 어떻고, 그때 사귄 여자 친구 중에서 연예인이 몇 명이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혹여 음악 얘기라도 하면 아직도 그때의 꿈을 깨지 못한 바보 취급을 하면서, 그 질김을 비웃는다. 나는 누군가의 꿈을 그리고 한때의 시간들을 이토록이나 철저하게 만인들에게 농락당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소위 얼굴이 팔린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게 당연해져버리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들의 음악에 그렇게나 많은 영향을 받았으면서, 그들의 음악으로 인해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서.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그들이 계속해서 그런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아니 적어도 원하지 않는 곳에 나와서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의 삶을 지탱시킬 힘조차 실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간혹 TV에 나오면 나는 우울해진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내 자신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도 전부 다 아프다.
그런 날이 다시 올까? 그들이 다시 음악으로 우리에게 얘기를 들려주고, 우리가 그 얘기들에 감동하는. 손톱만한 MP3로 다운받지 않은. 그들이 열심히 만든 곡들로 채워진 CD를 모두 사서 듣고. 그래서 그들이 제대로 된 음악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리그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멀티 플레이어 혹은 팔방미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아래 그들이 마치 국영수도 체육도 미술도 다 잘해야 하는 우리의 불쌍한 아이들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적어도 원치 않는 자들에게는 그저 잘 하는 것만이라도 열심히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 이 글은 제가 연재하고 있는 곳에 썼던 원고입니다.
요즘 윤종신이라는 가수가 무척 잘 나가는것 같더라구요. 쇼오락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하는건 물론이고 꽤 인기있는 시트콤 드라마에서도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가 한물 간 가수 컨셉을 취하고 있는 그 시트콤에서 결국 돈 때문에 트로트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그랬습니다. 윤종신이 했던 발라드가 위이며 트로트가 아래라는 얘기가 아니라 돈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얼굴을 숨겨가면서 창피해하면서 하다가 그것이 대박이 나니까 반짝이 옷을 입고 출연을 하는 것으로 나오니까요. 결국 가수 자신도 음악은 돈이고 따라서 돈 되면 창피할 것도 부끄러울것도 (원래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없다고 생각하는게 너무 이상하더라구요. 그럼 여태 그가 발라드를 했던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었을까요? 음악을 사랑한 순간은 없었던것일까요? 교복을 벗고로 시작되던 그 많은 노래들은 전부 그에게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에 소중한 노래였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제 그것들로 더이상 돈벌이가 되질 않으니 예전 영광을 못 잊고 맨날 '나 연예인이야' 하는 철딱서니 없는 인물로 등장해서 과거를 팔아먹는 것이겠지요. 물론 제가 윤종신이라는 가수에게 생활비를 보내줄것도 아니고 그에게 음반을 내어줄 수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과거를 희화시키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했던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