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리뷰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 리뷰를 쓰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책들을 좀 뒤적거렸고 예전에 읽은 책의 리뷰를 한편 쓰고 나서야 더이상 미적거리다간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겠다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책이다. 앞 부분에 주인공이 실직자가 되어서 고생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엇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비참하다거나 처량하단 느낌은 들지 않고 단지 시간이 어서 지나주기를 바랬다.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위로 세월이 지나가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내가 나를 충분하게 먹여살리는 때가 올꺼라고 말이다. 그래서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주인공이 비서로 일하게 되는 에핑이라는 노인의 삶에 무게를 두고 옮긴이도 역시 거기에 중점을 두지만 나는 앞 부분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겪으라면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에서 그 부분을 도려내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중요했고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많은 부분이 그때의 결심으로 이뤄진 것이니까 말이다.

주인공인 포그가 고난의 세월(실직과 기아)을 이겨내고 에핑이라는 노인의 비서로 일하게 되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바버라는 남자를 알게되는 과정까지 흥미롭기는 했지만 나는 책의 처음에 나왔던 주인공의 고난의 세월만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는 마치 다른 책 처럼 느껴질 만큼 생소했다. 잭과 콩나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신데렐라 얘기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책의 내용은 포그라는 남자의 인생 얘기이다. 어려서 얘기도 조금 나오지만 어머니와 외삼촌을 잃은 대학시절 부터 에핑이라는 하반신 불구 환자의 비서를 거쳐서(에핑은 죽게된다.) 바버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 역시 죽자 포그는 다시 처음부터 돌아가서 자기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 가장 주가되는 내용은 핏줄이다. 그러나 그 많은 내용들을 처내버리고 본다면 요즘 드라마들 처럼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에 의존한다. 알고보니 아버지고 알고보니 할아버지고 결국 핏줄은 그들이 서로 어떤곳에서 어떤 형태로 살고 있더라도 만나더라는 식의...하지만 폴 오스터는 뛰어난 솜씨로 그 가당찮은 우연들을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고 심지어는 읽는 사람이 그런 괴상한 우연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도록 한다.(물론 거기에는 이 책이 몹시 두껍다는 것도 한 몫 함을 부인할수는 없지만)

마치 전혀 다른 세 개의 이야기를 읽는 것 처럼. 나는 책 속에서 포그를 만나고 에핑을 만나고 마지막으로 바버를 만났다. 그 중간중간 포그의 어머니, 외삼촌 그리고 그의 친구와 애인인 키티 우 도 나오지만 이 책은 남자3대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얘기는 아들에서 할아버지로 출발해서 아버지를 만나고 다시 아들로 귀환한다. 나는 그 끝에서 만난 아들이 그다지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은 부분이 마음에 든다. 만약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다시 비참해지거나 혹은 마음을 다잡고 유일한 사랑인 키티 우와 함께 희망찬 출발을 시도했다면 소설 전체가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이 달의 궁전인 것은 주인공인 포그가 제일 처음 살게 되는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레스토랑의 네온사인이다. 나도 포그와 같은 시절을 보낼때 내 집 창문 너머 보이던 병원 네온사인을 기억한다. 단지 야간진료. 이렇게만 적혀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긴 시간 지켜보는 동안 정 비슷한게 들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달의 궁전을 책의 제목으로 정한것이 정말로 와 닿았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게 오래 보게 되는 무언가는 그 글자가 달의 궁전이건 야간진료이건 그 글자의 실제적인 의미 같은건 중요하지 않다.  저녁7시만 되던 네온사인의 불이 들어오던 야간진료는 내게 있어 포그의 달의 궁전과 마찬가지 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4-04-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슬플 것 같네요... 아닌가요??

두심이 2004-05-1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궁전을 읽고 저또한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부족한.. 그러나 별 다섯주기에는 주저없음을. 정말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