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년은 이 영화를 보자는 나를 거의 환자 취급 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한때 엄청 잘난척 하면서 심각한 영화들만 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러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의 서로를 기억하는지라 둘이 영화를 보면 작품성이 영화 귀퉁이에라도 발라져 있는 것을 고르곤 했다. 하지만 요즘 내 기분이 기분인지라 나는 그냥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환자 소리 들어가면서 까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기전과로 감옥에서 수감중인 주영주(김하늘)는 언니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가석방을 받아낸다.(이 과정에서 그녀는 청순가련에 비련까지 갖춰서 사람들을 속인다.) 수감자 재활 프로그램중 목공예를 선택했었던 주영주. 그녀는 한쌍의 목각 원앙을 가방에 넣고 감옥을 나와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언니는 전과자인 동생의 존재조차 결혼할 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눈치이고 더 나아가서 영주가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다. 자존심이 상한 주영주는 그래도 가기로 맘을 먹고 기차를 탄다. 한편 김하늘의 맞은편에 앉게 된 강동원은 애인에게 청혼을 하려고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보며 흐뭇해 한다. 그러다가 소매치기가 반지를 훔쳐가고 주영주는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신경을 끄고 싶었지만 가석방중 혹시나 사고가 나면 자기가 의심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차에서 내려 소매치기의 반지를 다시 훔친다. 이때 기차는 휙 하고 떠나버리고 주영주는 가방을 두고 내린다. 할 수 없이 강동원이 약사로 있다는 용강에 내려가서 가방과 반지를 맞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은 애인에게 가고 없고 주영주는 반지 때문에 졸지에 강동원의 약혼녀라고 속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실 김하늘은 연기력이 그렇게 특출난 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약간 어설픈듯 하면서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화면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제는 그녀 나름의 연기에 물이 올라서 자신의 청순가련함을 비웃기 시작했다. (배우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미지를 비꼬기는 상당히 힘들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 김하늘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물론 과외선생과 사기전과자는 표면적으로 볼때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김하늘의 연기로 인해 이 두 캐릭터는 비슷해져 버렸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을 하여 그 배역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나는 최민식씨가 이 부류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 가지는 그 배역을 자신만의 색으로 다시 재 창조 하는 것이다.(나는 송강호씨가 이 부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하늘은 후자에 가깝다. 어떤 역활이든 김하늘이 맡으면 김하늘만의 색이 뭍어 나온다. 매번 영화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관객들에게는 안전한 배팅이 되는 셈이다.

사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볼때 큰 재미가 없다. 스토리도 단순한 편이고 극의 진행상 관객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훤하게 꿰뚫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적으로 김하늘과 강동원의 연기력에 의지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김하늘과 강동원이라는 배우 둘 다 연기력 만으로 관객을 만족시켜 줄 만한 배우들은 아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기특하긴 하지만, 그래 너 열심히해서 기특하니 내가 이 영화 재미 없어도 입소문 많이 내어 줄께 하는 관객들은 없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동갑내기 과외하기 보다는 한수 아래의 영화이다.)

영화를 극장가서 봐도 안 아까운 영화. 비디오로 봐야 할 영화. TV에서 해 줄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영화. 이 셋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제일 마지막에 해당한다. 좀 잔인하긴 하지만 굳이 비디오를 빌려볼 필요는 없을것 같다. 그러니까 비디오로 보면 대여료가 아깝다는 것이 아니라 TV에서 해 줄때 봐야지 아주 재밌게 웃으며 볼 것 같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애매한데 TV에서 영화를 해주면 무지 재밌고 돈주고 비디오로 빌려보면 그저 그렇다. TV가 공짜라 그런가? 아무튼 이상하다.)

덧붙임 : 나는 궁하게 생긴 얼굴을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를 보다가 보면 좀 궁하게 생긴 강동원과 남상미(노때리아 얼짱이라는, 그러나 왜 얼짱인지 이해하기 힘든...)가 같이 화면에 나오는데 정말 궁함의 극을 보여준다. 아. 화면을 뚫고 날라오는 그 빈궁한 향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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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2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래 영화정보 프로 안보는데요, 이건 극장에서 안보려고 정보프로를 봤어요. 모든 걸 다 알려주더군요^^

세오 2004-02-2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 휘날리고 실미도 2편이 관객 1000만을 부르는 것보다 소소한 제작비의 영화 100편이 평균관객 10만명이상이 드는 현실이 한국이 소프트 강국이되는 길일듯..

작은위로 2004-02-2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음음음...-_- 그녀를 믿지 마세요... 토요일에 CGV에서 알바하는 친구가... 재미있다고 해서...그래...? 잠깐...볼까...? 했는데...안봐야 겠군요...-_- 아마...요 연말부터 연초내내... 쓸만한 영화들만 봐서인지...- 아참 그러고 보니...내사랑 싸가지를 보았드랬지요... 보고는...허허참..참.. 그랬는데... ^^ 두시간뒤 말죽거리를 보고는 우와~~~ 역시...^^ 하면서 김재원과 권상우의 몸을...비교해 가며...후후훗..근데... 그녀를 믿지마세요에선...머가 볼만할란지..-_- 두 주연배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원래부터 끌리지 않는 영화였다는 거죠...
이제 곧 개학...! 극장가서 영화보기 힘든 주경야독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네요...
서글프죠...^^;;;

플라시보 2004-02-2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공짜로 볼 수 있다면 보셔도 괜찮은데..흐흐. 꼭 TV로 봐야한다기 보다 TV에서 공짜로 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도 말죽거리랑 내사랑 싸가지 보면서 김재원과 권상우의 몸을 비교했었는데 재밌네요. 사람이 하는 생각은 다 비슷한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