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대제는 없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교대제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음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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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5 시간.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일년에 평균적으로 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은 근로시간 분야에서 연간 2228 시간인 멕시코를 제치고 OECD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은 1770 시간으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두 달 이상을 더 직장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2285 시간의 노동도 과소측정되었을 수 있습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0 시간을, 여성들은 9 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 5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2600 시간과 2340 시간이나 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20% 가량은, 주 52 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소 연간 2700 시간입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OECD를 탈퇴해야 하는것 아닐까 싶습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저서《자본론》에서 윌리엄 우드라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윌리엄 우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15시간을 일했습니다. 우드와 같은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며 마르크스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노동자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시간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시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뿐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주인, 자본 역시 노동자의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장인들이 제품을 만들어내던 시절과 달리 공장에서 물건들이 단일화되면서, 노동은 시간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화폐화되면서 자본은 노동자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권력은 곧 시간을 통제하는 능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권력자나 부자도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 평등성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의 권력이란 말 그대로 시간을 사유물화하는 것이다. -《폭주 노인》p.87


자본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노동자를 24시간 내내 일을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노동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육체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자본주의는 언제나 시간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자본과 노동의 갈등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지 미니의 말처럼, 더 짧은 주당 노동시간을 향한 진보는, 노동운동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초의 노동운동은 성공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의 노동 체계는 1919년에 이미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1930년경 8시간의 벽을 깨고 하루 6시간 노동을 정착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지만, 8시간의 벽은 매우 높았습니다. 자본이 국제적 노동 연대의 조건을 소멸시키자마자 시간단축을 위한 움직임은 모든 곳에서 추진력을 잃었습니다.

노동시간단축운동은 국제적인 노동계급운동의 부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 연대의 정점에서 등장했다. 전쟁과 같은 초계급적인 동원의 시기에 다양한 이해를 가진 집단들의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배블록의 어쩔 수 없는 수동적 용인 하에서만 획득될 수 있었다. -《현대적 여가의 상태》p.213


자본이 강한 사회에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증가하고, 노동자가 강한 사회에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감소합니다. 대한민국의 근로시간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자본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저임금, 장시간, 주야맞교대노동이라는 억압적 노동체제는 대한민국의 기본 시스템이었지만, 점점 한계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억압적 노동체제의 부작용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약화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 노동자들의 저임금,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야기하는 사회비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곳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매일같이 비판하는 파업보다도 월등히 많습니다. 이에 대해 자본이 내놓은 새로운 답변은 유연노동체제입니다.

간접손실액을 포함한 경제적 손실액 추정치는 지난 10년간 12조 4천억 원에서 매년 증가하며 2012년 19조 2천억 원에 이를 만큼 막대하다. 또 근로 손실일수도 5,400만 일이 넘는 것으로 분석되어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일수인 93만 일의 58배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건강한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실이 '파업보다 심각한' 수준이니 자본에게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 p.79


억압적 노동체제에서 유연노동체제로의 전환은 현재 정부정책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유연노동체제로의 전환은 결코 자본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노동 유연성은 인건비 증가 없이 가동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 뿐더러 노동강도는 더 강화되고, 능력 및 성과급제가 도입되며, 평가제도 등의 구조조정을 노동자들의 저항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이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유연화가 가져오는 결과 또한 사회마다 다릅니다. 노조가 강하고 실업자 보호체계가 튼튼한 유럽의 경우, 노동의 유연화 체제는 노동시간의 감소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약하고 실업자 보호체제가 약한 미국과 같은 곳은, 노동유연화가 동시에 노동시간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유럽의 경우 교대제 노동자들이 표준 노동시간보다 더 적게 근무하는 반면, 한국의 교대제 근무자들은 더 오래 근무합니다. 정부는 노동개혁법안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이득으로 작용할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유연노동체제에는 교대제가 있습니다. 자본에게 교대제는 24시간 중단 없는 생산을 실현하는 매력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교대제는, 절대 좋은게 없습니다. 매일 변경되는 노동시간, 야간근무는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망칩니다. 삶을 잃어버린 노동자는 소비를 통해서만, 먹고, 마시고, 번식하고, 거주하고, 옷을 입는 동물적 기능을 통해서만 기능하는 존재가 되며, 더 이상 인간적 기능에게서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동물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은 동물적인 것이 됩니다. 볼프렌은 장시간에 걸친 노동이 가져오는 자유 상실의 결과는 노출증 등과 같은 병리적 성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대제는 교대제를 부릅니다. 집안에 교대제 노동자가 한 명 있다면, 그 집안 사람들은 모두 교대제의 영향을 받습니다. 교대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노동자들도, 공공 시스템도 점점 교대제가 됩니다. 교대제 노동자들은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의 삶과 격리되어갑니다. 삶에서 남는 것은 노동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노동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우정을 쌓고, 신뢰받음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다움을 얻기 위한 투쟁은, 전 세계적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힘든 길입니다. 공공 서비스들, 소방, 의료, 경찰 등과 같은 노동은 교대제가 불가피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자 하는 자본의 교대제는 분명 줄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노동자의 몸과 삶에 좋은 교대제란 없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어떤 노동 체제를 만들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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