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최초의 인류 김영사 모던&클래식
도널드 조핸슨 지음, 진주현 해재,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현생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했습니다. 무수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진화론이 승리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수많은 고인류학자들의 노력,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고인류학자들은 사막과 오지를 넘나들었고, 잃어버린 고리들을 찾았습니다. 어떤 보석보다 값진 이 보물들은 우리의 발 밑에서 수백만 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보물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전문기술을 배운 기술자이면서 청소년과 같은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엄청난 행운아여야 합니다. 저자 도널드 조핸슨은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젊을 적 모습은 해리슨 포드가 열연한 인디아나 존스를 닮았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밝힌 진화경로는 사족보행을 하던 원숭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200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가 탄자니아에서 발견했습니다. 리키와 고고학 탐험을 하던 조핸슨은 모든 고인류학자들의 꿈인 호모 하빌리스 이전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조핸슨은 논문을 제출해 학위를 따야 하는 상황이었고, 재정적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성과가 없다면, 학위를 받을 타이밍도 놓치고 재정적으로도 큰 빚을 지게 되어 인생이 몰락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디오피아에 갔습니다.

경이로운 과학적 업적은 때론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새로운 발견은 우연히 찾아온다“고 말하며 LHC 가동 하루 전만 해도 힉스 보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데 내기로 100달러를 걸었습니다. 비록 스티븐 호킹이 힉스 입자에 대한 내기에선 졌지만, 도널드 조핸슨의 사례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면 승리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정말로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탐사작업을 하던 조핸슨은 그날 뭔가가 일어날 것 같다고 일지에 쓴 뒤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조핸슨은 그녀의 이름을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에서 따왔습니다. 그녀는 최초의 인간, 루시였습니다.

아주 드물게 일련의 뼈들이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루시가 바로 그러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 초기의 호미니드가 두발도행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전의 추측에 대해 루시가 일도양단의 결론을 내려준 것이다. 유인원의 뇌를 가졌으면서도 기능 면에서 골반과 다리뼈는 현생 인류와 거의 동일한 존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는 모든 화석과 마찬가지로 루시 역시 새로운 의문을 몇 가지 제기했다. 만약 뇌의 확대가 시작되기 전에 직립보행을 시작했다면 직립보행을 초래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 p.286

그녀는 그동안 발굴된 인류 화석에 비해 훨씬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과학적인 입증도 간단했습니다. 연대측정법 결과 그녀는 320만년 전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됬습니다. 호모 하빌리스 이전의 존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였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인 루시는 머리는 작은 뇌를 가진 유인원처럼 생겼지만, 신체는 완전한 직립보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직립보행이 뇌가 확대되는 것과 발맞추어 진화했다고 하는 기존의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걷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진 것입니다. 또한 이브 코팡은 루시의 무릎을 연구해 루시가 두발로 보행했을 뿐만 아니라 수상생활도 했다고 말합니다. 아파렌시스 종은 두발보행과 수상생활에 적합한 운동능력을 지닌 최초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던 것입니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했고, 그 중에서 살아남은 종이 바로 현재의 우리입니다. 어째서 호모 사피엔스로의 진화가 다른 호모와의 경쟁 끝에 살아남는 종이 될 수 있었냐는 질문은, 그것이 가장 생존에 적합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두 발로 달리는 것은 네 발로 달리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낮아 속도가 느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달리게 진화했다는 것은, 강자가 생존한다는 적자생존론이 틀렸음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더욱 머리가 커졌고, 완력이 약해졌고, 임신기간이 길었고, 갓난아이 시절에 무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오언 러브조이는 인간이 왜 두 발로 대지에 섰느냐는 흥미진진한 질문에 혹시 섹스Sex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네발보행이 분명히 더 유리하더라도 더 유익한 적응을 위해서라면 네발보행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잘 달릴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동물의 전체적인 생존 전략을 고려하면 그러한 이점은 사라지고 만다. - p.500

루시의 발견 이후에도 고인류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케냔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 아르디피테쿠스, 오로린 투게넨시스가 등장했고,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경우엔 무려 700만 년 전의 화석입니다. 진화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 하는 고인류학자들은 지금도 오지의 현장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습니다. 값진 보물을 찾는 그들은 마치 현대의 해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널드 조핸슨은 그 해적들 가운데서도 행운아였고, 대중들을 휘어잡을만한 문장력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조핸슨이 말해주는 고인류학의 흥미진진한 세계는 독자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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