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의 인권 - 공익과 인권 04
한인섭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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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해에도 성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치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벌써 15회를 맞이하는 축제지만, 행사 도중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열린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이 나온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양현아, 한채윤, 이석태, 홍춘의, 장복희는 법적 차원에서 성적 소수자들은 어떤 쟁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법이 필요한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비정상적 내지 병리적 성적 지향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편견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거나 병리적인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회가 이성애중심주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셸 푸코도 이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바라봤는데, 푸코의 역사관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근세의 에로스와 구분되는 근대의 특징입니다. 근대에서 섹슈얼리티란 정상과 이상을 정의하고 표준과 일탈을 해부하는 지식이며, 자연적인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닌 문화와 역사의 산물입니다. 섹슈얼리티의 사회에서 성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이성애 커플인 부부의 성애만이 특권화되고, 동성애는 배척됩니다.

부부간 성애가 다른 종류의 성애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던가, 이성 간 성기성교가 정상적인 성애이며 다른 것은 모두 일탈이라고 하는 등의 명제는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성애중심주의는 성인남녀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평생 한 사람과 혼인관계를 가진다는 이른바 정상적 결혼관 내지 가족관을 유일한 규범으로 제시하고 현대국가는 이런 규범을 시민들에게 제시, 강요합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성 결정 방식은 최근의 생물학적 연구에 의하여 오랫동안 사회에 의해 믿어져 온 양성가설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고, 기존의 양성가설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염색체의 구조에 기초하여 한 개인의 성을 정의하는 판단의 불합리성은 스페인 허들 선수인 Maria Patino의 예에 의하여 잘 설명되고 있다. Ms. Patino는 198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Ms. Patino는 남성호르몬 불감증 증후군(AIS) 간성자였다. 그녀가 외부생식기상의 성, 외모, 자기 동일시 등이 명백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색체 구조는 남성의 염색체였다. - pp.108~109

그동안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염색체, 성기의 외관, 기타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고 판단될만한 근거 등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즉 성에 의한 구분인데, 여러 학자들은 젠더에 의한 구분을 사회가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젠더는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사람의 외모, 인격적 속성 및 사회성적 역할로, 젠더와 성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버틀러는 젠더 정체성의 핵심은 수행성에 있다고 말합니다. 젠더란 성염색체, 호르몬, 성기 등과 같은 자연적 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젠더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이며, 이를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적으로 남자다움을 수행하기 때문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적 구분과 엄밀히 구분됩니다.

여기서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그가 생물학적 인간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나의 동료'로 삼을 수 있느냐 여부이다. 나의 동료가 아니라고 했을 때,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그 '나'란 성적 소수자는 물론 아니며, 오히려 모든 '인간종'을 심판하는 아무 결함 없는 (즉, 아무 '소수자성' 없는) 나이다. 그는 유색인도, 장애인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고, 불임증과 선천적 질병이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고, 물론 남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왜 수많은 소수자들 혹은 '소수자성'을 가진 '내가' 완전무결한 '그'의 동료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소수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 p.40

오늘날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성적 구분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섹슈얼리티 변화를 친밀성 개념으로 풀어 나가며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 사회를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임신과 출산의 의미를 과거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사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동성애혐오자들이 동성애 관계가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자연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했었다면, 그러한 판단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기준이 된다면, 불임 이성애 부부도 비정상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입양의 가치를 가치있다고 판단하며,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부부는 오히려 이성애부부보다 더 바람직한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입양으로 인한 사회의 재생산이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사회에서, 동성애부부들은 이성애부부만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블랙 라이크 미》p.404

소수자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도덕적 판단과는 거리가 멉니다. 동성애는 나와 관련만 안되면 상관없다는 방관주의나 낙관주의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수자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것이며, 자기자신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누군가는 소수만이 주장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소수만 즐기는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소수만 좋아하는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성적 소수자는 그것이 단지 성적 지향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며,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을 배제하는 것은 이방인 안에 존재하는 인간공동체를 죽이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자신을 인간공동체로부터 배제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가치는,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정신은 우리는 저들, 소수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고 정의로운 평등을 다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적 지향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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