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혁명 -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
제임스 샐즈먼 지음, 김정로 외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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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를 틀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변기를 내리면 오물이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도시의 사람들이 그러한데, 서울의 경우 거의 100%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갖춰진 것은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의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언제라도 생활수준이 수십년 전 수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태백지역에서 물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깨끗한 물은 생명의 연장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질적인 문제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깨끗한 물을 국민들에게 언제나 공급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현대 상수도 기술은 대단히 오랜 옛날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BC 312년에 18km의 수로를 건설하여 급수를 개시했고, AD 305년까지 578km에 달하는 수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안압지에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토기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유사한 수도운영체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는 영국으로, 1619년에 관부설에 의한 일반급수가 행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한 수질자원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858년 대악취 사건을 계기로 근대적 하수처리시설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 1873년엔 연속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이 합리적인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를 투자하여 소비자에게 질적으로 안전하고 양적으로 충분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근대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근대사회에서 수많은 병을 물리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은 의사, 병원, 혹은 약의 역할이 아니며, 상하수도 체계야 말로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더러운 물이 주범인 설사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과 내전으로 죽는 사망자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청결한 물의 공급과 하수 체계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 냈습니다. 이는 동시에 물이 안보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배트맨 비긴즈』에서 악당들이 상하수도 시스템을 이용해 고담시를 공격한 것처럼, 도시에 핏줄처럼 퍼져있는 관로들은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급수시설의 안전을 강화하고 감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떠오르는 기술들이 비싸다는 것은 차지하고, 이와 유사한 기술들은 시장 이익이 적으면 상업적으로 개발될 것 같지도 않다. 많은 공공정책 이슈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도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p.226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대표적인 물질이지만, 모든 사람이 비교적 동등하게 얻는 공기와는 다르게 물의 경우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물질입니다. 여전히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싸게 공급한다는 공중보건의 개념은, 그 사회가 얼마나 진보적이며, 얼마나 발달된 곳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19~20세기에 깨끗한 물의 보급은 공공보건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돗물의 안전성이 의심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도시의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배수 시설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수질 체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줄어들었습니다. 종전의 수질 관리 체계를 감독, 규제하고 평가하며, 신기술에 입각해서 표준을 강화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의 미흡함 또한 수돗물의 신뢰에 타격을 입힙니다.

이러한 수돗물 불신 현상에 힘입어 생수산업이 대두했습니다. 생수업계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자극시켰고, 생수를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함으로써 생수시장의 전성기를 마련합니다. 생수 판매량은 197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배씩 증가해 한해에 90억 갤런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수사업은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페트병이 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고, 기존의 공공 수도체계를 흔들고, 생수에 들어가는 물의 질 관리를 기업에 의존해야 하고 그 기준이 수돗물에 비해 낮다는 것입니다. 물 관리에 관한 문제는 생수 뿐만 아니라 물 민영화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 볼리비아 등의 사례는 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전세계적인 고찰을 요구하게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기존 급수체계가 훼손되며 인구 증가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비록 현재는 적절한 급수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안전한 식수를 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들에서는 안전한 식수의 공급을 더 늘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 p.337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물 관리체계는 자랑할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취수원 관리가 미흡해 정수처리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고도정수처리 시설도 한참 도입중에 있습니다. 수돗물의 질은 좋지만 급수설비의 관리는 공공기관이 아닌 건물주들이 따로 하다보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쉽게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현재 매설된 관로의 상당수가 70~8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노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공과정에서 야매로 만들어진 것도 꽤 됩니다. 태백지역의 문제를 조사한 결과 누수원인의 절반은 시공 부주의였습니다. 설계적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누수를 찾는것도 힘듭니다. 관로가 대부분 완성된 시점이다 보니 이젠 증설에서 상하수도 관망관리 분야로 넘어가면서 블록시스템, IT를 이용한 정보화 관리 도입등을 시작하고 있지만 법적인 부분 등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서울시는 유수율이 95%에 달한다며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말하고있고, 지자체에서도 유수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계속 증가만 하는 유수율 통계는 그 통계의 진위성이 의심되는 비현실적인 자료라는것을 말해줍니다. 공무국외출장귀국보고서 환경복지국상수도과 2005.9 자료를 보면 25년동안 꾸준히 관리해온 일본 오사카 시의 경우 유수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때론 하락하는 경우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물공급이 안되서 고통을 겪었던 태백지역의 경우 유수율이 30%도 되지 못했습니다. 물을 100생산하면 70이상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심한곳은 무려 11.7%였습니다. 헤더 로저스가《사라진 내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하수도는 다리, 댐, 도로 등 다른 기간산업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화가 되기 힘듭니다. 상하수도 체계가 적절한 조치를 꾸준히 받지 못한 결과 우리 사회에 큰 폭탄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속 안전한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가, 그런 물의 혜택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할 수 있는가, 기후 변화나 다른 기술로 인한 물의 변화에 사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제임스 샐즈먼은 식수 문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독자들에게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자원으로서의 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루 골드,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우는 만큼 물은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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