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혁명 5년
프란츠 파농 지음, 홍지화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많은 역사는 흔히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혁명가 등을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발생한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의 변화를 피식민지배자들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혁명과정에 있어서 혁명지도자의 일화나 혁명진행과정을 다루는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혁명, 혁명이 민중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 프란츠 파농은 정신의학자이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에 지원해 각지에서 파시즘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했고,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민족 해방 전선(FLN)의 투사로 활약합니다. FLN는 프랑스 제4공화국의 기반에 타격을 주어 프랑스 식민정권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고, 민족해방전선의 기관지 알 무자히둔에 기고하는 등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 역할도 수행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독립하기 1년 전에 병으로 사망해 알제리 독립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히잡. 아랍 여성들이 쓰는 이 전통의복은 단순한 옷에 불과하지만, 식민정부가 히잡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단순한 의복으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식민 정부는 히잡을 알제리 남성에 의해 무기력하고 가치가 실추되며 더 나아가 인간성을 상실한 대상으로 불행하게 변형된 여성의 대명사로 묘사하며 알제리 남성의 행동은 중세적이고 야만적인 삶과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현대사회의 사회정의엔 부합할 지 몰라도, 그것은 알제리 국민이 스스로 변화해가야 하는 성질의 것입니다. 히잡을 둘러싼 식민주의자의 공격적인 말은 알제리의 문화자산으로서 색이나 형태변화 없이 안정되어 죽은 것 같았던 이 요소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것은 식민지 개발단계에서의 심리적 법칙중 하나인데, 초기에 지배자의 행동과 계획에 의해 민족의 영속성 의지를 자극하는 저항의 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히잡을 벗기고 여성을 문화 파괴의 동조자로 만들려는 침략자의 집요함은 오히려 전통적인 행동양식을 강화했다. - p.51

히잡은 더이상 옷이 아닌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알제리 여성들은 스스로 히잡을 벗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프랑스 식민정부의 주장처럼 여성권리 신장등을 위함이 아닙니다. 남성들만 참여했던 독립전쟁에 여성들도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히잡을 벗음으로서, 식민정부의 눈을 속이고 전투의 보급을 책임집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식민정부는 히잡 착용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알제리 여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알제리 국민으로 하여금 일체감과 국가적 사명감을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투쟁의 요청에 따라 알제리 사회는 새로운 태도, 행동, 출연방식이 생겨납니다.

식민화된 알제리에서 라디오는 정복자의 도구로, 식민지배라는 틀에서 원주민의 어떤 중대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한다. - p.84

알제리에 라디오가 들어올 당시, 그것은 오로지 알제리에 살던 유럽인의 것이였습니다. 알제리에 자리잡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알제'는 파리에 있는 국영 프랑스 라디오로, 그 메아리를 통해 식민사회와 그 가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알제리에 살던 식민주의자들에겐 고향의 향수와 유대감을 주는 반면, 알제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혀 라디오 구매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알제리 사회에 있어서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정의로서의 라디오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회정의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955년 카이로 방송에서 매일 아침 알제리인들의 독립전쟁 종합평가가 방송되자 라디오 구매의 필요성은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자유 알제리 방송이 시작되자 20일도 안되 전국의 라디오 재고가 바닥납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은 당시 라디오보다 더 기술적으로 진보된 배터리 라디오가 팔리게 됩니다. 거의 마법과도 같은 이러한 변화는 라디오를 압제자의 문화적 억압도구에서 압제자의 압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투쟁하는 알제리의 목소리'가 프랑스어를 사용함으로서 사회에서 프랑스어에 대한 정의도 변화합니다. 더이상 알제리인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것은 초라한 동일화나 배신자가 되는것이 아닌, 혁명의 메시지를 의미심장하게 듣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식민시대, 독립전쟁을 거치는 동안 알제리의 가정은 큰 변화를 얻게 됩니다. 아버지가 가르치고 아들이 받는 전통적인 입장은 큰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 관계 또한 변하게 됩니다. 숙명론적이며 가정에 매진할것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중함을 비난하고 거부하는 아들. 아들의 설득속에 아버지의 낡은 확신은 붕괴되며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닳는 관계가 됩니다. 사춘기가 되면 빨리 결혼을 가야 했고 결혼상대를 부모가 정해주던 딸은, 젊은 처녀가 투사로, 여성 동지로 대체되며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히잡을 벗고 화장을 한 처녀는 아무때나 외출을 하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도 부모는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불명예에 대한 오랜 두려움은 민족이 겪은 비극 앞에 굴복합니다. 여성은 결혼상대를 자신이 정하고, 모든 행동을 자신이 결정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여성은 혼자 힘으로 자기 위상을 얻어냅니다. 형제관계, 부부관계 또한 전통적 관계를 벗어버리게 됩니다. 식민주의는 알제리 사람들을 뒤섞으면서 점령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같은 기호 아래 재집결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알제리에서 의료행위의 진실은 식민형태 아래 프랑스의 현존의 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민중이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사, 교사, 엔지니어, 공수부대 요원 등 모두를 한꺼번에 거부한다. - p.154

일반적으로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행동은 신뢰의 행동입니다. 환자는 의사를 신임하고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선한 가치로 취급받는 의학은 알제리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부합니다. 설령 의사가 알제리인일 지라도, 서양의학 전부를 거부합니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프랑스 당국이 약 판매를 금지함으로서 더욱 가중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양의학에 대한 피식민지배자들의 거부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프랑스 당국의 약 판매 금지 덕분입니다. 유통을 막아버림으로서 그 물건은 새로운 가치를 띠게 됩니다. 약을 몰래 구하고, 민족해방전선이 의사들을 파견해 서양의학을 사용함으로서, 침략의 외교관쯤으로 여겨졌던 의사는 알제리라는 몸의 일부가 됩니다.

이러한 알제리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과거 식민지 시절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과연, 일제강점기 시절 한복을 입는것을 금지시켰다면 과연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으며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 것인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의 가정에서는 어떤 대립과 변화가 생겼을까? 일본이 조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철도나 기타 시설이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아마도 그러한 저항과 변화의 코드는 알제리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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