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컷 - 신성 불가침의 한국 스포츠에 날리는 한 방
정희준 지음 / 미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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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관중이 한 해에 600만을 돌파하고,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이 배출되는 나라. 세계적으로 봐도 부끄럽지 않은 스포츠 공화국. 저자는 그런 한국 스포츠계의 실상을 바라보며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하지만 '내가 하고 내가 즐기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미디어가 보여주는 스포츠', '외국을 무찌르고 세계를 정복하는 스포츠'에만 열광합니다. 민족주의적이고, 엘리트적인 한국스포츠의 여러 실상을 들추며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한국 스포츠라고.

한국 스포츠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어릴때부터 스포츠에 올인하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고교야구계에서 이름만 말해도 알아주는 학교였습니다. 3년동안 학교를 다니며 교실에서 야구부원을 본 경우는 단 하루 뿐이였습니다. 이런 스포츠 풍토는 선수기량적인 면에서 이익일지 몰라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합니다. 2008년 발표된 국가인권위의 운동선수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고교 학생 선수 78.8퍼센트가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경험했고 63.8퍼센트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을 50대이상 때리는 이 세계는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저 또한 학교에서 가혹하리만큼 기합받는 야구부원을 자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 박지성 

이런 스포츠 환경은 남자선수들보다 여자선수들에게 더 가혹합니다. 여자선수들의 문제는 박명수 전 우리은행 여자농구감독의 성폭행 사건과 같은 일로 간혹 대중들에게 알려집니다. 박감독은 선수들에게 속옷을 빨게 하고 선수가 있는데서 바지를 함부로 갈아입는가 하면, 트레이너 만나러 간다는 구실로 선수들 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 선수들이 알몸으로 있는데 불쑥 나타나고, 선수들에게 뽀뽀하자 그러고, 일대일 면담 한답시고 방문 닫아놓고 감독은 옷을 벗은 상태에서 침대에서 팔베개하고 같이 눕자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다른 성폭행들에 비하면 지극히 양호한 편입니다. 당시 피해자는 프로 선수였고, 여자 스포츠중 여자농구는 그나마 사회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비인기 종목일수록, 후보 선수일수록 강한 성폭행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인권위의 스포츠 인권 관련 간담회에서 나온 보고에 따르면 한 학교의 여자 선수를 모조리 건드리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갓 열 살이 넘은 여자아이들이 밤에 감독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묶고 잤다거나, 모 여고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합숙이나 전지훈련때 감독님을 모실 한명을 정하기로 했는데, 먼저 나서는 이가 없자 결국 주장이 나섰다는 슬픈 보고도 있었습니다.

저도 이쪽이 이렇게 심한 줄 몰랐었는데 성폭력 상담소에 있을때 전화가 왔는데..글쎄 초등학생을 임신을 시켜서..부모가 왔더라구요. - 인권위 여성임원 보고 中 

이런 사태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가끔 언론보도가 됨에도 불구하고 체육계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상당수 기자들은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기사화하고 공론화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사거리를 계속 얻기 위해서는 좋은관계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행위를 하는 경우 처벌이 빈약합니다.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은 징역10월에 집행유예2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는 1차 공판에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6개월형보다 낮은 형량입니다. 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점, 과거 10여 년간 국가대표 여자농구팀의 코치 또는 감독 등으로 농구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점, 합의금으로 5000만 원을 공탁한 점 등을 이유로 밝혔습니다.

자식들을 운동시키기 위해 집을 팔고, 자식은 얻어맞고, 딸은 감독에게 성적으로 당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매달려야 하는 현실은 공부를 등한시하는 한국스포츠의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공부를 포기했기 때문에 다른 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청소년기 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전체적인 빈곤한 환경을 만들게 됩니다. 심지어 선수가 학업을 병행하는 길을 택할 경우 제재를 가하기도 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졌던 장희진 사건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당시 국가 수영대표로 선발된 14세 중학생 장희진은 태릉 선수촌에 입촌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참가하려 했는데 이를 괘씸하게 여긴 대한수영연맹은 그의 국가 대표 자격을 박탈했었습니다. 태릉의 모든 훈련에 참여할테니 기말고사때까지라도 학업을 하고 싶다는 장희진의 요청에 선수촌과 연맹은 제명이라는 보복카드를 내걸었습니다. 여론이 들고 일어나 다행히 올림픽에 출전하긴 했지만, 올림픽 이후 학업을 병행할 수 없는 한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대에서 4년전액 장학금을 받고 경영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며 동시에 수영선수로서 한국신기록을 세웁니다.

태릉 선수촌은 어린 학생의 미래를 염두에 둘 만큼 포용력과 융통성을 가진 곳이 아니다. - 장희진 

학업을 병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선수생활을 마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자선수들은 그나마 몇 안되는 감독, 코치 자리까지 모두 남자들에게 뺏긴 상황입니다. 이들이 선수 생활 은퇴 후 사회에 나가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찾기 힘듭니다. 상당수 선수들에게 은퇴란 사실상 빈곤층으로의 추락을 의미합니다. 그러다보니 감독의 말에, 체육협회의 말에 복종합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야말로 한국스포츠의 비극을 절실히 보여줍니다. 34세의 나이에 은퇴하고 싶어도 먹고 살 방도가 없어 골병 들 때까지 선수로 사는 모습은 어렸을때부터 오직 운동만 하게 하는 환경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운동을 독하게 하고 발버둥쳐도 선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메달의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스포츠를 택한 한국인 다수의 빈곤화를 야기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윔블던을 우승했을 때도, US오픈을 우승했을때도 아니다. UCLA를 졸업하던 날 할머니에게 졸업 가운을 입혀드렸던 순간이다. - 아서 애시 

세계적 대회가 열리면 한국 스포츠의 관심사는 오직 금메달에 집중됩니다. 선수단의 대회 성패도, 인간승리도, 하이라이트 방송도 모두 금메달의 것입니다. 은메달을 딴 외국선수보다 금메달을 딴 한국선수가 더 서럽게 우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수들 생존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금메달은 우리사회의 지나친 집단주의를 상징합니다. 이제 여유를 가지고 스포츠 자체를 즐겨도 될 만한데도, 우리는 스포츠에 국가와 민족과 국력을 주입시키고 승패의 결과만을 따집니다. 이런 관행은 체육계에 다양한 폭력과 부조리를 방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스포츠계는 고립된 섬입니다. 지도자 또한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받기에 어린 학생선수들마저 가둬놓고 훈련시키며, 폭력은 삶의 한 방식입니다. 한번 발을 내딛게 되면 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에라도 보내기 위해 성적에 연연하고 온갖 부조리에 침묵했습니다. 이런 스포츠의 현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는 점점 더 운동부에 자식들을 보내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스포츠는 점점 더 소수만이 택하고, 더 폭력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가? 저자는 스포츠의 저변을 넓히는 것, 생활체육의 길을 제안합니다. 운동하는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교육시키고 운동은 자신의 능력껏 즐기게 하는 것입니다. 운동에 재능이 있다면 공부를 해도 충분히 좋은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의사의 길을 간 미식축구선수인 마이런 롤을 비롯해 많은 사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운동을 접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것은 곧 국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어째서 유럽과 남미가 축구를 잘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이라는 해답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수의 아이들이 스포츠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나라와 다수의 아이들이 즐겁게 스포츠를 접하는 나라. 우리의 미래는 단연코 후자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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