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이 세상을 바꾼다 - 여성화된 남자, 초신인류의 등장
우시쿠보 메구미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새로운 남성들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이들을 가리쳐 초식남이라고 명명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남성들과 달리, 술도 즐기지 않고, 담배도 거의 피우지 않으며, 심지어 결혼적령기에 도달했음에도 연애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품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 새로운 남성들은, 기존의 남성들인 육식남에 비하면 너무나 달랐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들에 대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 초식남들은 소비 시장과 연애 시장에서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바야흐로 초식남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초식남의 등장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품경제로 인해 일본사회는 호황기 시대를 맞았고, 소비지상주의가 도래했습니다. 버블 전성기였던 1989년, 당시 여성들의 유행어는 '자동차로 언제든지 와 주는 남자, 밥을 사 주는 남자, 명품을 사 주는 남자' 였는데, 학력이나 연봉이 많은 남자를 사귀면서 그가 자동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고, 명품을 선물 받는 여자가 괜찮은 여자라는 가치관이 세상에 만연했습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초식남 바로 위의 세대인 단카이 세대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 세대는 어릴때부터 좋은 회사에 들어가 아무 걱정없이 살 거라고 교육받았던 세대였는데, 회사가 줄도산하고 1999년에 정부에서 노동자 파견법을 완전 자유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초식남의 전 세대인 단카이 세대로 하여금 화려한 소비보다는 견실하게 하루를 보내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대로 변화시킵니다. 버블 시대 경험의 유무는 착실함과 물건에 대한 집착, 인기에 대한 욕구, 금전 감각 등에서 남성의 차이를 낳았고 이는 단카이 이후인 초식남들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초식남들은 불황기를 청소년기에서 맞았고, 이전 세대보다 어렸을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향은 초식남들의 가치를 만들었는데, 초식남의 핵심은 생활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초식남들은 버블 세대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체 앤 가바나 혹은 루이비통 등으로 도배하는 행위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초식남들은 1,000엔짜리 셔츠를 입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돈을 투자하는 등, 필요한 곳에만 돈을 씁니다. 초식남들에겐 데이트할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자동차로 에스코트를 해야 한다며 애쓰는 30~40대 남성들이 이해 불능이며 어리석은 존재로 비춰집니다. 철이 들 무렵부터 경기는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고, 버블세대처럼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도, 퇴근 후에 밤문화를 즐기지도 않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짓밟으면서까지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초식남들은 기성세대의 많은 문화를 거부합니다. 기성세대들이 회식을 할 때 맥주로 건배를 하는 것이 당연했던 반면, 초식남들은 맥주 대신 칵테일, 우롱차, 칵테일소주 등 자신이 원하는 술을 고릅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거나 전혀 안 마신다고 응답한 20대가 전체의 40%나 차지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억지로 권하는 술도 거부합니다. 자동차 또한 편리한 것은 인정하지만 유지비나 기름값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유할 필요성을 적게 느끼며,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연비입니다. 초식남들은 물욕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블로그나 파티 등에서 화젯거리가 되는 것들을 먹거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기성세대와 달리 포인트 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할인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합니다. 이러한 초식남들의 소비 문화를 보면 합리성과 효율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대 여성들을 인터뷰하면 저마다 이야기한다.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도 아낄 줄 아는 남자면 되요.", "그게 빚도 지지 않고 안심이 되지 않나?" 데이트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말한다. "얻어먹거나 에스코트 받으면서 괜한 빚을 지는 건 싫어요. 처음부터 더치페이가 맘도 편하고 남녀평등인 거 같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초식남들은 사 주지 않는다. 20대 남성의 60%이상이 여자친구와 더치페이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 2006년, 덴쓰 트렌드 박스 조사 

초식남이 연애와 결혼을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기피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의 평가를 보면 초식남이 기성세대의 남성들에 비해 말도 더 잘 들어주고, 붙임성 있게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남성들과 달리 전업주부를 하는것도 마다하지 않고 집안일도 더 잘 도와주는 등, 결혼적인 부분에서의 평가 또한 높게 받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초식남들이 섹스에 집착하지 않는 섹스리스 현상을 많이 보인다는데 있습니다. 여성과 러브호텔에 가서 같이 비디오게임만 즐기다 온다던지, 남녀가 호텔에 갔는데 잠만 자고 오거나, 같이 동거를 해도 아무 일도 없는 독특한 현상을 보이는 등 많은 20대 남성들이 섹스를 단순한 습관, 의무, 귀찮은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식남들은 결혼적령기가 되었음에도 연애생활, 섹스 혹은 결혼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성 경험의 조기화를 들 수 있습니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첫 경험을 스무살 이전에 하는 경우가 70%, 18세 전에 경험한 경우가 40%에 달합니다. 성 정보를 얻기 쉬운 환경, 어렸을 때부터 자기 방을 가지고 있는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성 경험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초식남들도 10대엔 육식계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10대에 이미 일찍 성을 경험한 터라 막상 결혼적령기에 들어서면 성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던 불황기의 영향을 받고 자란 초식남들은 연애에 관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때문에 결혼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동거를 하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고백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식남 현상은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려 줍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술을 즐기지 않으며, 필요 없는 물건은 갖지 않고, 부모와 친분을 유지하고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기존의 남성스러움이란 가치에 도전하고, 남녀평등을 원합니다. 어떤 의미론 아줌마스러운 초효율주의와 에코 지향, 가족과 고향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 등은 기존의 고도성장기의 잣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입니다. 초식남들의 초합리주의가 직장을 바꾸고 있고, 사회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초식남의 등장과 그 특징은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제 초식남들이 등장해 사회를 바꿀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초식남들은 이미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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