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 믿음에 갇힌 여자들
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뜨인돌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입니다. 이슬람교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이슬람의 원칙에 순종하는 여성들의 모든 옷, 히잡이 아닐까 합니다. 히잡의 생김새는 이슬람교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 제럴딘 브룩스는 본래 이슬람교는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종교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말합니다. "신앙을 가진 여성에게 말하라. 시선을 낮추고 몸가짐을 정숙하게 가지라고. 아름다운 신체기관 중에서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만 치장하고 가슴을 베일로 가리라고."

현재 대부분의 이슬람 여성들이 사용하는 히잡의 형태는 이러한 코란의 가르침에 나오는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이란 표현을 여성의 얼굴과 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우리 사회의 윤리규범에서도 통용될 만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정숙한 여자에게 속이 훤히 보이는 블라우스나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는 수준의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실제 무슬림 여성들이 입고 있는 이슬람 복색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경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차이는 아랍어의 특징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hormah'는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이며 성스러운, 신성불가침의 라는 어원이 있지만 동시에 사악한, 금지된 같은 어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특징 때문에 코란을 정확히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발상이 유연하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꼴리는 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2차 자료인 하디스를 둘러싼 논쟁에서 비롯됩니다. 현재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 사례들은 겉으로는 종교적 이유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코란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란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또한 정숙해야 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코란에 따르면 남성은 배꼽과 무릎 사이를 가려야 하며, 몸을 가리는 천은 살갗이 비치거나 몸에 딱 붙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전역에서 남성들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걸프 만의 남성 젊은이들에게 스키니가 유행이며, 축구선수들은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레슬링 시합은 급소보호대만 걸칩니다. 여성들은 차도르를 입은 채 수영을 해야 하지만 남성들은 배꼽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지 않는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 억압 문화는 공통적으로 그 기반에 남성 중심의 권력체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무슬림국가에서 여성들은 남자 친척들의 명예를 좌우합니다. 아내가 간통을 하거나 딸이 혼전성관계를 하는 경우, 심지어는 의심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가족 전체의 명예를 더럽히는 셈이 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할례를 하거나, 명예살인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오히려 많은 하디스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현재의 이슬람교도들이 행하는 여성의 성적 억압을 혐오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디스엔 막루와 순낫이라는 행동이 있는데, 막루는 별로 권장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순낫은 바람직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닌 행동을 일컫습니다. 대부분의 무슬림 남성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은 순낫이며, 여성할례도 순낫에 해당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할례문화는 종교적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여성 억압 문화 때문에 이슬람교는 금욕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만,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보다 오히려 성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이슬람교는 결혼관계 속에서의 성관계를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아내의 죽은 시체와 성관계를 하는 것 정도가 금지되어 있을 뿐, 거의 모든 형태의 성관계와 체위를 권장합니다. 또한 코란은 기혼 여성들에게 20일마다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 계약결혼과 같은 형태도 이슬람교는 종교적인 틀을 통해 제공합니다. 이슬람교는 성행위를 장려하는 만큼, 간통, 강간 등과 같은 문제에 가혹한 대처를 합니다. 이슬람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을 허용해왔기 때문에 변태적인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초기의 종교적 가르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에릭 홉스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단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종교적 교리가 여성 억압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이름을 외치는 행위들 가운데 초기 종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가 불교의 역사를 논하면서 거론한 바 있습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1935년 이란의 왕인 샤의 아버지가 차도르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샤의 반대파는 반발했고 차도르를 입는 행위는 종교를 떠나 정치적으로 해석되었고, 해방을 의미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아랍인들은 시리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걸쳐 포진한 부패한 종교, 군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슬람교에서 성전, 지하드는 근본적으로 외부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내면을 정화하려는 노력, 즉 자신의 도덕적 실책이나 나약함을 상대로 하는 싸움을 뜻한다. 그러니 무슬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지하드가 아니라 그 진정한 의미가 담긴 지하드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p.181 

저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종교의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란은 결코 여성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대우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 문제는 사회적이며, 권력구조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종교의 문제로 보였던 이 문제들의 해결책이 바로 종교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만난 많은 이슬람 여성 가운데서 가장 행복했던 부부는 바로 초기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했던 부부였습니다. 여성을 대하는 현재 이슬람교의 태도는 모순적입니다. 여성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서도 여성을 성스럽고 강력한 존재로 두려워합니다. 여성의 목소리만으로도 남성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여성이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태도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며,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격언을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에서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은 재밌는 현상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여성 억압이라는 이슬람 문화권의 현실을 단순히 시대에 뒤쳐지는 다른 문화를 가진 미개인들의 태도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 또한 곤란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성별 노동분업의 문화 속에서는 자유주의 속에 내재된 문화 때문에 남성의 지배는 은폐됩니다. 자유주의 문화는 여성 할례, 여성의 조혼, 영아 살해, 일부다처제 등을 비난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애써 무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독단적 신념을 경계하라는 지적은 비단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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