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과잉 사회 - 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평균적으로 여아 100명 당 남아 105명 비율입니다.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나는 이유는 신체적인 요소와 사회적인 요소로 인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기 전에 더 일찍, 더 많이 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성비가 깨졌습니다. 남성이 너무 많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인구와 관련된 사회문제는 저출산, 고령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혼인 연령대에 남성의 수가 여성을 크게 초과하는 일 또한 전 지구적 차원의 인구 문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자연 출생 성비가 유지되었다면 아시아에서만 1억 6,300만 명의 여성이 더 살고 있을 것이라고 산출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결혼을 할 수 없는 남성이 아시아에만 1억 6,300만 명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별 선택의 전통적 기반은 남아 선호 사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 선호 사상을 가졌던 전통사회들이 꼭 성비 불균형의 문제를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인도회사의 기록은 인도의 여아 살해가 영국의 통치 아래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영국의 무거운 세금과 토지 제도의 개편은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딸을 낳는 것은 곧 가족의 토지를 잃는다는 것과 동일시되게 만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승혼 관행과 불공정한 경제 정책이 결합되면서 남아 선호 사상이 대두되었고, 실질적인 형태인 여아 살해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학 기술의 발전, 저렴한 성 감별법을 통해 쉽게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폭발적인 형태로 성비 불균형을 가져왔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될수록 낳지 말 것과 아들을 최대한 낳으라는 두 가지 압력을 모두 받는 세계이기 때문에, 성 감별 낙태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다가옵니다. 성비 불균형이 발생한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중이고 태아 성 감별이 가능할 정도까지 의료 체계가 자리를 잡았으며, 낙태가 만연해 있고, 최근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비 불균형의 이론적 기반은 맬서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맬서스는 인구의 수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지구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론을 펼쳤는데, 이 주장을 받아들인 학계와 대중은 인구감소를 위한 대응책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 방법으로 문화적, 경제적 요인들로 부모들이 아들을 원하며 많은 경우 부부는 단지 아들을 낳으려고 계속 아이를 낳기 때문에, 태아 성 감별을 통한 낙태를 함으로서 다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을 낳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에를리히의《인구 폭탄》같은 저서 등을 통해 대중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별 선택은 잠재적인 어머니의 수를 줄이는 추가적인 장점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성별 선택을 용납할 수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여아 태아를 도태시킴으로써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회의론자는 거대한 인구가 수렁에 빠진 경제 상황과 공존하는 나라들을 쉽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예외 없이 인구규모라는 천부적인 혜택이 독창적인 발명에 대한 보상과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는 정부 정책에 의해 그 밑동이 잘려나간 나라들이다. 인구 증가의 이익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불이익뿐이다. -《발칙한 경제학》p.39 

포드재단, 세계은행, 유엔인구기금, 국제개발처, 국제가족계획연맹 등은 인구규모와 경제성장에 대한 1940년대의 이론을 기반으로 출생률이 낮아지면 국민이 더 부유해진다는 논리를 퍼뜨렸습니다. 휴 무어, 록펠러 3세, 루이스 스트로스, 키신저, 조지 H 부시 등과 같은 유명인사들도 이를 지지하는 인구활동가로 활약했습니다. 인구 활동가들은 낙태를 권리가 아니라 도구로 보았으며, 미국 내에서는 합법화를 지지하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해외에서는 낙태의 효용성을 홍보하는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인구조절운동의 인종차별주의와 우생학 논리는 상류층에 반향을 불러일으켜 빈곤층의 높은 출생률을 우려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서구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불임시술이 시작되었고, 인도에서는 서구의 지원을 받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불임시술과 낙태를 자행했습니다. 출생률을 낮추는 것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인구는 경제성장의 저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빈곤층이 양산되고, 빈곤층이 많으면 공산주의가 확산될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전후 일본이 낙태가 유용한 인구 조절 도구임을 보여주는 미국의 실험장이었다면 한국은 그 도구가 제련된 곳이었습니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고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반공과 연결되는 낮은 출생률은 중요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해외 원조를 받기 위해선 인구 조절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산아제한 정책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을 억지로 끌고가 낙태와 불임수술을 자행했는데, 1977년에 서울의 의사들은 1명 출생 대비 2.75건의 낙태 수술을 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기록된 최고의 낙태율이였습니다. 성공적인 여아 살해에 대한 보답으로 1980년에 세계은행은 한국에 3천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습니다. 학자들은 한국사회가 과거에는 성 감별 낙태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현재 낙태의 천국이 된 데에는 군부독재시절 수십 년간 벌어진 강제적인 인구조절 캠페인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서구에서 낙태 합법화는 보통 낙태 건수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가족계획 정책이 여성의 요구에 대한 배려 없이 수립되고 낙태가 피임을 보완하는 방법이라기보다 속성 인구 조절방법으로 도입된 아시아와 동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합법적 낙태는 더 많은 낙태를 의미했습니다.

인구 증가가 번영을 가져온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가질 때 그것은 언제든지 기뻐해야 할 경사다. 그 아이들이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게 거의 확실한데,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양육을 모두 떠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출산에 대해 기꺼이 보조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칙한 경제학》p.50 

일면적으로 보면, 여성의 수가 적다는 것은 여성의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여성의 수가 적으면 결혼할 때 협상력 등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수가 줄어들면 사회의 나머지 집단에게서 더 귀하게 대우받을 것이라고 착각해 소수집단이 되고 싶어 하는 다수 집단은 없습니다. 성비 불균형은 분명히 여성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성비 불균형 사회에서는 남자는 결혼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에게 과도한 투자를 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성비 불균형이 높은 사회는 문맹률이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낮았습니다. 오늘날 성비가 편향된 사회들은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매매, 신부 매매, 강제 결혼 등 여성에 대한 위협들을 불러옵니다.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는 성비 불균형을 성매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매춘부의 임금이 이렇게 낮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섹스 자체에 대한 수요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매춘이 경쟁에 취약해진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매춘부들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누구일까? 그것은 남자와 기꺼이 무료로 섹스를 하는 '일반' 여성들이다. 다시 말해, 혼전 섹스가 매춘의 대체물이 된 것이다. -《슈퍼 괴짜경제학》p.54 

남자 아이를 선호해서 일어난 이런 문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옵니다. 인구통계학자들은 결혼 가능한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는 가상의 모델에서 남겨질 수밖에 없는 남성들을 잉여 남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낳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들이 홀로 늙어가는 것을 봐야 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가장 망친 사람이 자연재해를 가장 덜 받듯이, 대만과 한국의 부유한 부모들이 결정한 성 선택의 영향을 베트남의 가난한 남성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 남성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젊은 잉여 남성들은 각종 범죄, 살인, 비행 문제를 저지를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경우에 분노한 젊은이들은 애국주의에 기댑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젊은이들의 애국주의는 인터넷 신상털기와 같은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 우리나라는 20여 년 만에 성비 불균형에서 정상적인 출생 성비로 바뀐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학자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상 출생 성비가 된 이유는 1.08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 때문이였습니다. 첫 임신에서 태아의 성별 때문에 낙태가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우리나라에서 성 감별 열풍이 한창일 때도 첫 아이의 성비는 거의 정상 수치인 104였습니다. 즉 남아 선호 사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낮은 출생률로 인해 고령화 문제라는 또 다른 재앙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과 정부의 인구감소 정책이 만들어낸 성비 불균형 사회는 수만 명의 잉여 남성, 외국인 아내들의 유입, 가임 여성 감소로 인한 고령화 문제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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