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종말 - 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해나 로진 지음, 배현 외 옮김 / 민음인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석기 시대 이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남자의 역할이였습니다. 남자가 일하는 것이 생존에 더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습니다. 저자 해나 로진은 변화하는 사회상, 여성이 일하고 남성이 가정을 돌보는 것이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여성이 어느정도 남성을 따라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면에서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고 있음을,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 혁명의 결과이기도 하며, 경제적 구조의 변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권력 상층부는 여전히 남자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비롯한 여러 측면의 세력 구도가 변화하는 속도만 두고 보았을 때, 이런 상황은 시대의 마지막 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계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현대 경제는 여자가 주도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기본은 경제 구조의 개편입니다. 과거 남성들이 지배하던 일자리들이 사라진 반면, 거의 같은 숫자의 일자리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새로 생겨난 분야는 지속적으로 여성이 지배하는 분야입니다. 미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미국의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소득의 중앙값을 기록했습니다. 2011년에는 관리직과 전문직의 51.4퍼센트를 여성이 점유했습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미국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미래의 인재들을 예측할 수 있는 대학 졸업률을 보면, 미국에서 석사 학위 취득자의 60퍼센트가 여성이며, OECD 34개 국가에서 여성의 대학 졸업률이 남성보다 높은 국가는 27개국에 달합니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현대의 경제는 여성이 규칙을 만들고 남성이 따라가는 흐름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더이상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위해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여성 스스로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섹스의 값어치를 높게 유지해야 할 동기가 없게 되었고, 일종의 성 혁명이 이루어졌습니다. 2011년에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37개국에서 연구한 결과, 젠더 평등이 성적 규범의 감소로 이어졌음을, 즉 섹스를 많이 하는 나라가 좀 더 페미니스트적인 나라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결국 성 혁명은 여성의 태도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성들은 실험을 하고, 새로운 역할을 맡고,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고, 사회가 부여한 온갖 자유를 누렸습니다. 문제는 성 혁명이 남성을 바꾸는데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남성의 지배적 경제력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낡은 모델은 여전히 남성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남자들은 아빠 주부 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랜 세월 고착된 사회적 압력입니다. 부양자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들은 비정상적이고 미성숙하다는 사회의 꼬리표를 달아야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반려자를 선택하고, 직업을 구하고, 가정을 구축하지 못한 남자들에게 정신적 미성숙 또는 영구적인 청년기에의 갈망이라는 질병에 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남자들은 심지어 호모섹슈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 라이오넬 오브세이는 유사호모섹슈얼이라는 분류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는데, 이는 게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성의 표준에 순응하지 못하는 남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때론 호모포비아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성의 영향력이 강해진 지금, 이에 대한 저항으로 남성우월주의적 메시지를 내며 여성혐오 성향을 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기존의 남성다움 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린 새로운 남자의 정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남성이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여성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이 일하게 되었지만, 육아의 부담은 덜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결혼을 회피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의 존속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현상입니다. 수십 개 국가에서 실시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기혼 남성이 미혼 남성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장수합니다. 기혼 남성들은 심장 질환이나 폐 질환, 암, 고혈압, 당뇨 또는 우울증이 발병할 확률이 더 낮습니다.

해나 로진이 말해주는 여성의 약진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해나 로진은 책의 마지막 장인 8장에서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대표적으로 한국을 거론합니다. 한국은 지금 여성의 진출과 과거의 고정관념의 충돌로 인해 경제적, 문화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하지만 여전히 얌전한 여자이자 전통적 아내로 남아야 한다는 사회의 양면적 메시지 사이에 낀 한국 여성들을 소개하면서, 한국은 현재 이런 사회적 패러다임 전환기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연 수입 4000만원 이상, 서른 살 이상의 전문직 독신 여성을 뜻하는 골드미스의 대두는, 여자들은 이제 성공하기 위해 남자가 필요하지 않기에, 진정으로 인생을 같이 하고 싶은 남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해나 로진은 부정할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가부장제가 이미 죽었음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길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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