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마니아 - 20세기 최대의 마케팅 성공작, 생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엘리자베스 로이트 지음, 이가람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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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더 값이 싸고, 질적으로 우수하고, 더 구매하기 편한 제품이 당연히 팔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언제나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고르자면, 바로 이 물 산업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돗물은 연방 정부에서 정한 보건 안전 기준을 여유있게 만족하고,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유명 브랜드의 생수보다 맛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생수에 비해 240배에서 10,000배까지 가격이 저렴합니다. 하지만 이런 수돗물은 생수의 위협적인 성장에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존 폴리염화비닐병에 비해 싸고, 가볍고, 튼튼하고, 색이 밝고 투명하고 내구성이 있고, 재활용까지 가능한 PET의 발명에 힘입어 1990년에서 1997년까지 미국의 생수 매출은 1억 1500만 달러에서 40억 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심지어 국영 물 공급업체마저 생수의 판매전략을 본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리수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수돗물이 생수에 밀리는 현상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저자는 이런 생수의 성공을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마케팅 성공 사례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2005년 5월, ABC의 시사 탐사 프로그램 '20/20'은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생수5종과 수돗물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 결과, 뉴욕 수돗물을 싫어한다고 한 사람중에는 비싼 생수 대신 수돗물이 좋다고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것은 가장 값비싼 생수였다. 2008년 런던의 물맛 실험에서는 수돗물과 20종이 넘는 생수가 등장했는데, 런던의 수돗물이 3위를 차지했다. 2006년 10월 영국 원즈워스의 물맛 실험에서는 참가자 650명 가운데 80퍼센트가 수돗물과 유명 생수의 맛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그중 3분의 2는 생수보다 수돗물 맛이 좋다고 했다. -《생수, 그 치명적 유혹》p.139 

물의 민간 판매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습니다. 일부의 부유층은 사설 수도를 이용했고,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한 수질자원 때문에 발생한 1858년 대악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근대적 하수처리시설은 시민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공중보건에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인 깨끗한 물 공급과 더불어 수돗물에 박테리아를 없애주는 염소를 사용함으로서 공공수도는 하나의 자부심이 되었고, 평균수명 상승에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PET병의 발명,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증가와 생수가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기업들의 대대적인 광고는 1리터짜리 생수병을 건강과 섹시함의 이미지를 살린 패션 악세사리로 변모시킵니다. 덩달아 산업이 발달하면서 물은 점점 더 오염되어 갔고, 산업, 농업, 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화학 약품들은 공공 식수 시설로 하여금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사업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식수가 좋게 발전해도 알아주지 않았고 이는 예산의 압박을 가져와 점점 시설이 노후화되어 생수의 약진에 한몫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수의 발전과 공공수도의 몰락은 커다란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생수회사 네슬레에서 남겨준 물 할당량을 두고 농부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는 일이 발생했고,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외곽에서는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마을의 우물을 이용하도록 해 국제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또한 특정지역의 물을 과도하게 뽑아내기 때문에, 그 지역의 환경이 심각하게 변화하고 동식물의 삶터가 사라집니다. 물 관련 운동가들이 물을 둘러싼 작은 마을과 거대 기업의 싸움을 보고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역 주민들은 별다른 혜택 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생수의 생산방식도 비효율적이여서, 역삼투압 방식을 이용하여 수돗물을 정화하는 공장에서는 최종적으로 판매대에 올라갈 생수 1갤런을 만들기 위해 필터에 따라 3~9갤러의 물을 버리게 됩니다. PET병에 들어가는 석유, 운송에 들어가는 석유는 고유가 시대에 하나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고, PET병의 쓰레기 처리 문제 또한 골칫거리로 남고 있습니다.

수돗물보다 더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는 기업의 주장과, 생수병에 프린팅된 만년설의 이미지와 같은 깨끗함을 기대하는 소비자와는 다르게 정작 생수는 수돗물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전체 생수의 44퍼센트는 수돗물을 이용하여 만들어 음용수나 정화수라는 라벨을 달고 팔렸습니다. 또한 회사는 최초 수원지의 수질을 기준으로 사업 승인을 받게 되는데, 사업을 확장하며 제2, 제3의 시추공에서 나오는 물도 같은 등급을 받기 때문에 안정성에 문제가 제기됩니다. 1998년 천연자원보호위원회에서 실시한 생수검사는 103가지 각기 다른 브랜드의 생수 샘플 1천개를 검사했는데, 그 중 3분의 1에서 비소, 브롬, 대장균성 박테리아 같은 오염원이 검출되었습니다. 공공 수도 시설은 매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수질에 관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생수회사에는 그런 강제적 규정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수질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생수회사들은 이런 정보들을 라벨에 넣지 않기 위해 열심히 로비를 하고, 이 정보들을 감추는 데 수백만 달러를 쓰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다단계 여과 과정과 어디에 생수 공장을 설립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수질이 가장 덜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공장에서 나오는 최종 생산물은 다 똑같습니다. 진흙을 가져다 놔도 '다사니(코카콜라의 생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 p.204 

생수 산업의 약진은 마케팅,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 관계업종의 협조 등 다양한 원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식당에 있어서 생수는 메뉴판에 있는 어떤 아이템보다 마진이 크며, 미국 요식업계는 생수판매로 연간 20~35억 달러의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돗물 체계의 미래는 점점 어둡습니다. 미국 환경보호국은 각 도시에서 상하수도 체계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2020년에는 절반 가량의 도시가 물이 아예 없거나 위태로운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국 토목학회에 따르면, 이 비용은 3,9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에 반해 식수와 하수처리를 위한 연방 재정은 10년동안 계속 감소했으며, 2001년에서 2006년 사이에 배정된 예산은 13억 달러에서 9천만 달러 이하로 줄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물 시장이 가져다주는 미래는 깨끗한 생수를 먹는 계급과 오염된 강물을 먹는 계급으로 구분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미 공공수도 체계가 붕괴한 나라들과 물 민영화로 인한 타격을 받은 나라 등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사막 관개사업을 벌였을 때 주민들은 아랄 해가 말라버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아랄해의 모습은 전세계에서 수원을 찾아 헤매는 생수기업들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 공급은 점점 위협받고 있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이 중대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사회의 중요 이슈가 되었습니다. 만약 시민의 의식변화를 원한다면 PET병과 공병세의 연구는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음료수 용기에 대해 소비자들이 일종의 반환보증금을 내게 하는 방식의 공병세는 공병세를 걷지 않는 주의 평균 재활용 비율은 23퍼센트인 것에 비해 공병세를 걷는 주에서는 음료수 병의 60~90퍼센트가 재활용되는 매우 효과가 높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결과는 법제화하는것이 사람의 행동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의 저자 데버러 L 로우드가 지적하듯이, 법제화는 우리 마음속에 굳어버렸다고 가정하는 편견조차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생수냐 수돗물이냐, 이 선택은 물론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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