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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평점 :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요새는 ebook들을 주로 보느라 소설 쪽은 책으로 직접 안 보곤 했었는데 표지도 예쁘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서 좋았고 또 괴이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오나...? 싶어서 더 읽어보고 싶었다. 실제로는 괴이가 아니라 추악한 진실을 덮으려 만들어낸 소문이었지만...
책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 말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삼켜가던 무렵, 혼란이 극에 달한 그 때를 책에서는 '소문의 시대' 라고 말했다. 억울하게 죽은 자는 원귀에 대한 소문을, 영문 모르고 죽는 자는 괴물에 대한 소문을 낳아 그 소문들이 살이 붙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대. 주인공은 그런 소문들과 이야기들에 매혹된 선비이다.
그 이야기들을 쫓느라 등과하여 조정 일을 할 생각조차 없고, 일년에 서너 달은 집을 떠나 소문과 이야기가 떠도는 곳에 머무르기까지 하는 자다. 헌데 여태까지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주인공이 사는 고을에 이미 떠돌고 있었다. 그리하야 고을에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그 곳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잔인한 광경을 잘 보지도 못하는지 못 견디고 구토까지 하는 사람이 참 잘도 그런데를 다니는구나- 싶다.
사건은 이렇다. 사오 년 전부터 고을의 처녀들이 하나씩 죽어가는데... 갈수록 그 수법도 잔인해졌다. 범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우가 그 처녀들을 헤쳤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거기에 더 이상한 일은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감무(고려시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속현 혹은 향, 소, 부곡, 장, 처에 파견되던 하급 지방관)가 자꾸만 죽어나간다는 거다. 귀신이 감무들을 죽인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다보니 주인공이 알고 있는 한 멀쩡히 살아서 고을을 떠난 감무는 한 명 뿐이다.
이 난장판을 더한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호장(고려시대 향직의 우두머리.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에서 기원) 이다. 향리에서 지배자 노릇을 하고 있는 호장가 이니 당연히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감무와 사이가 좋지 않고, 특히 이 고을은 호장의 텃세가 심해 감무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는 곳이다.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새로 감무로 오게 된 금행은 무인 인데다 대쪽같은 사람이라 주인공과 죽이 맞아 친구가 되어 이 난관을 헤쳐 나가게 된다. 이 이상 내용을 덧붙이면 스포일이 될 것 같아서 내용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나머지는 직접 책으로 읽어보면 좀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이 깔끔해서 읽기에 좋은 편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전지적 작가 시점과는 틀린 재미가 있다. 소문과 이야기에 홀린 선비가 주인공이 그 시절의 여러 소문들이 어떤 식으로 형태를 잡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나오면서 그 때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였는지 알 수 있어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아쉽게도 뒤통수를 칠것 같은 반전은 없다. 하지만 차근차근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은 꽤 흥미롭다. 막 급박한 장면이나 두근거리는 그런 것들은 없었지만 하나하나 문장들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무심코 가게되는 그런 책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무언가를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실망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에 부제로 '암행어사의 탄생' 이라 달고 시리즈물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괴이한 소문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더 나와도 좋을 것 같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