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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빨강 머리 앤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어렸을 때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정말 나도 너무 좋아했던 것이었고 동생과 엄마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봤던 기억이 생생했다. 이후 소설로도 읽었지만 워낙 애니메이션이 기억에 박혀 있어서 읽는 내내 애니메이션과 기억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내 아이가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Anne with an 'E')"을 너무 좋아하면서 보고 있다.
아쉽게도 시즌 3에서 드라마가 끝나서 아이에게 소설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유했지만 글들이 빼곡히 있는 책을 일단 겁을 먹고 도망가 버리기만해서 난감하고 서운했었다. 그래도 한번 읽어봤으면 싶었는데 독특한 책 하나를 알게 됐다. 그 동안 봐온 익숙한 그림체가 아닌 굉장히 개성적인 그림체를 가진 그래픽노블 "빨강 머리 앤". 예전에 봐왔던 애니메이션처럼 예쁘고 귀여운 그림은 아니었다. 특히 눈을 동그랗게만 표현해 놔서 처음엔 어색했는데 보다보니 정감이 가는 그림이다. 특히 주면 풍경과 색감들이 참 예쁘다.
번역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로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맨 처음 한 말이 "왜 아줌마랑 아저씨를 '마릴라'나 ''매슈'라고 불러요?" 였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매슈나 마릴라를 아저씨와 아줌마로 의역해 놓은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세는 그대로 번역해 놨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실제 외국에서는 그렇게 이름으로 부른다고 알려주고 한참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했더랬다.
그것을 제외하면 참 그 길고 긴 내용을 이렇게 야무지게 책 한권에 잘 넣었구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깔끔하다. 물론 책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섬세한 감정의 표현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아이들이 빨강 머리 앤의 내용을 가볍게 읽어보기 좋다. 나처럼 다시 한번 앤의 이야기를 되살려보기에도 참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것은 인물들의 얼굴이라고 하겠다. 조금만 더 예쁘게 그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 아쉽다. 풍경이나 색이 저렇게 예뻐서 더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마릴라는 앤의 극단적인 기질을 뜻대로 다잡지 못했다.
기쁨의 절정에서 "고통의 심연"까지, 아이의 기분은 애번리의 정겨운 바람에 나풀대는 연처럼 쉽사리 치솟고 흔들였다.
마릴라는 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단정하고 얌전한 어린 숙녀로 바꿔 놓겠다는 생각을 슬슬 포기했다.
물론,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실은 영혼과 불꽃과 이슬로 빚어진 앤의 천성을 좋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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