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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시오노 나나미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워낙에 장편이다 보니 나 같은 경우는 읽어볼 엄두를 못 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지우지 못하고 그녀의 다른 책인 전쟁 3부작 시리즈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을 읽어보게 되었었다. 역사에 덧입혀진 그녀만의 상상력은 잘못하면 딱딱하거나 지루하게 생각될 수 있을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는 소설과도 같은 매력적인 장르로 변모시켜 재미를 더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워질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고 있던 나는 [ 로마에서 말하다 ] 라는 책이 신간으로 나왔다는 소리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민을 하다가 얼마 전에 구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받아 들게 된 이 책은 내 기대와는 좀 많은 부분이 빗나가는 책이었다. 내 기대는 그녀의 눈을 통해서 본 영화들에 대한 독특한 생각이나 사상들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그 초점은 시오노 나나미가 아닌 그녀의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사실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했었다.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아들 안토니오와 대화를 하는 내용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주변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는 영화의 시나리오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내용을 읽는데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책 속의 내용들이 그녀와 그녀의 아들 안토니오가 지금까지 개봉된 유명 영화들을 주제로 하여 그들 자신의 의견들을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 영화에 대해서 장황하고 길게 설명하고 있는 평론가들의 글보다 오히려 읽기에도 쉬웠고 재미도 있었다.
덕분에 개인적인 내 의견으로는 그 내용들이 꽤 재미있고 좋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화 평론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진 모자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평론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며 그들만의 대화에 몰두한다. 대부분의 대화 내용이 아들에게 질문들 던지거나 자신의 영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그에 대한 답을 듣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내용들이 재미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들의 절반 이상이 보지 못한 영화들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손에 잡힐 보이는 그 영화에 대한 주제나 목적들에 반해 찾아서 보고 싶은 생각들을 갖게 되는 영화들이 몇편 있었을 정도다. 예를 들자면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경우는 카우보이들의 동성애에 관한 영화로 그들의 순수하고 숙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철썩같이 알고 있는 나였는데 그 영화에 대해 나나미는 나와 같이 이야기를 하지만 아들인 안토니오는 남자의 입장으로 본 그들의 사랑은 그저 동성애라고만 답을 한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다른 흥미거리가 없이 그들만 존재했기에 숙명처럼 되어간 것 뿐이지 그 무대가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였다면 한달도 못 갔을 것이라며 시크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와 색다른 관점이 또 재미가 있더라.
시오노 : 그래도 이건 동성애가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랑이 남녀 사이가 아니라 남자와 남자 사이에 싹텄을 뿐이라고 말이야.
안토니오 : 남자인 제 입장에서 보면 역시 동성애예요. 다만 저는 무대가 뉴욕이라면 평생 계속될 사랑으로 발전했을까 하고 생각했죠. 사랑이 움튼 곳은 아름다운 대자연은 있어도 인간은 둘밖에 없는 브로크백 마운틴. 그 사랑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생활에 아무 재미와 자극이 없고, 여자도 별 볼일 없고, 게다가 지방의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죠. 이 상황이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에서 벌어졌다면, 한 달도 못 가서 헤어질걸요.
시오노 : 그렇다면 두 남자의 사랑이 처음부터 숙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니?
안토니오 : 숙명적으로 되어간 거죠.
p.50~51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의 매력에 이끌려 본 책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노라 말하며 실망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거 낚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재미에 아무렴 어떠랴~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그녀 자신의 생각들도 들어볼 수 있었고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인 안토니오의 날카롭고 심도있는 이야기들도 함께 읽을 수 있었기에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저자를 시오노 나나미라고 하기보다 공동저자 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 점만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