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주 현실을 잊곤 한다. 고통스럽고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되도록이면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하지. 그렇게 무디어져 가고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다. <마음짐승>은 책을 읽는 것이 괴롭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기에 그저 글만을 읽을 생각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잔잔히 흐르는 듯한 물밑 아래에 정체모를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어 글을 읽는 것이 괴롭더라. 물론 공포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다. 뭔가 스펙타클하고 역동적인 내용이 아닌데도 책을 읽다보면 그대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도 잔잔한 문장들 아래로 흐르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물스물 온몸에 기어올라 나를 잠식할 것만 같은 두려움… 시와도 같은 운율을 가졌지만 길게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그 불안감과 공포를 함께 느껴야 했다. 저자인 헤르타 뮐러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 아래에 잔혹한 진실들을 숨겨 놓았다. 그 숨겨진 진실들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지만 서서히 읽는 이의 마음 안에 검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듯 처음에는 작은 얼룩에 불과했을 불안감과 거북함 같은 감정들을 조금씩 고조시킨다. 그렇게 독특한 문장들에 떠밀려 읽게 된 이 책은 생각보다 더 어두운 전체주의의 실상을 고하고 있었다. 가난한 마을 출신으로 그 가난을 벗어나보고자 자신의 반려가 되어줄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 - 아마도 인텔리를 말하고 싶었던 듯… - 를 찾던 롤라는 어느 날 갑자기 기숙사에서 목을 맨다. 자살… 이라는 결과로만 끝났을 그 사건은 ‘나’가 트렁크 안에 있던 롤라의 공책을 찾아내면서 뒤틀린다. 체육 강사의 강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던 롤라의 공책. 체육 강사가 저녁에 나를 체육관으로 불러 안에서 문을 잠갔다, 라고 롤라는 썼다. 두꺼운 가죽공들만이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는 한 번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래 그를 뒤쫓아가 그의 집을 알아냈다. 그의 셔츠를 하얗게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교수회의에서 나를 신고했다. 나는 메마름을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신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결코 발이 붉은 양 떼를 몰지 않으리라. - p.36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있는 ‘나’와 세명의 남학생은 서로가 만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면서 친해지지만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비밀경찰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 이하의 대우와 탄압. 게오르크의 의문의 죽음. 망명 후에도 계속되는 감시. 눈부시고 찬란했어야 할 시기를 절망적인 기억들로 채워야만 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이 <마음짐승>이다. 올바름과 참됨이 죽은 시기… 추함이 아름다움을 짓밟던 시기… 기득권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졌던 일들을 담담한 필체로 풀어낸 이 책은 전체주의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전체주의 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에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해서 경계하라고… 이 같은 실상을 가진 전제주의 라고 하는 것은 결코 만들어내서도 만들어져서도 안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민정치라 멸시 받는다 해도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후세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요새 들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 라는 말. 개인과 국민이 있어야만 국가는 존재하는데 그러한 국가가 개인들에게 희생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자꾸만 강화되는 공권력들이 점점 불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에 읽게 된 이 책은 그러한 상황들을 무심코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제는 그것을 고민해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