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더라…?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른다. 교과서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청소년기라고 하는 것은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걷는 듯 불안한 시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개구리가 올챙이적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그 시기를 지나버린 사람들은 그들에게 온전하게 유효한 답안을 제시해 줄 수가 없다. 나도 이젠 그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시기에는 정상적이고 화목한 가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데미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실제로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수 있을 단순한 자기과시욕 때문에 프란츠 크로머에게 했던 “마을 과수원의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말로 인해 어둠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물론 어른들이라면 생각할 것이다. 어째서 부모님에게 말하고 일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시기의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부모에게 말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른들의 말일 뿐이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은 새로 전학온 약간은 신비스럽기도 하고 어른스러웠던 데미안. 싱클레어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올가미를 끊어내어 준 데미안을 동경하게 되고 이후 그와 떨어져 지내게 되고도 그가 했던 행동들이나 독특했던 생각들을 따라하게 된다. 그 결과 다른 또래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퇴학까지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한 시기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재회하고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된다. 에바부인은 싱클레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그녀에게서 싱클레어는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이후 전쟁이 터져 함께 참전한 그 전쟁에서 데미안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지도자이기도 했던 데미안의 모습을 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이 말에서처럼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세계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데미안이었을 것이다. 그는 필연적으로 데미안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하게 되고, 그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은 이겨내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의 불안정함은 유년기라고 하는 세계를 깨고 나오기 위한 고통의 시기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정한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자신의 내면에 있으며 결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수도 없고 찾아줄 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발전을 이루어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는 것 -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서 헤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