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카미유 피사로 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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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나 가을이 되면 이상하게도 시가 그리워진다. 왠지 모르게 감상적이 되는 건지... 어김없이 올 가을에도 문득 시가 그리워진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함께 풍요롭다기보다 쓸쓸해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이 책을 무릎위에 얹고 유유히 앉아있는 시간이 좋다. 갑자기 들어온 일들 때문에 바빠서 별로 짬이 나질 않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나는 요새 아름다운 시, 그리고 그 시와 어울리는 그림과 함께 보내고 있다.


열 두달 중 가을 9, 10, 11월의 모든 날들에 시 하나씩을 얹어 놓은 이 시화집은 어린 시절 한눈에 반해 기르 쓰고 모으던 껌을 싸고 있던 종이들을 닮았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어떤 껌의 종이에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시들이 써있던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이 너무 예뻐서, 그 시들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  시화집을 보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시골 작은 마을에 살았기에 서점도 작았고 용돈 또한 변변치 않아 작은 시집 한권 사기 마땅치 않았던 어린 시절을 작게나마 위로해 줬던 그 시들...


이 시화집은 뭐 하나 내 마음에 안드는 것이 없다. 화려하지 않고 잔잔히 예쁜 표지며 시화 함께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 그리고 조금은 뜬금없지만 각 달을 첫 장에 소소히 나오는 고려가요 '동동' - 나는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각 달을 표현한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구월의 첫장에 있는 짧은문장을 읽고 나중에 10월의 첫장에도 '동동'의 문장이 있어서 11월 것 까지 한꺼번에 확인하고 넘어갔더랬다. 기회가 된다면 이 '동동'도 전편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

 

구월 구일에
아! 약이라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 九月의 첫장

 

시 하나를 읽는 것이 오래 걸리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냐만... 그래도 한 소절, 한 소절을 꼼꼼히 음미하면서 읽는 버릇이 있어서 하루에 시 서너개를 읽는 것도 나한테는 많은 것 같다. 한 번 읽고, 읽은 것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가을이라 그런 것인지, 일과 육아/가사에 치여 그런 것인지 모를 헛헛함에 조금은 따뜻한 온기가 도는 듯 하다. 엄마 뭐하냐며 다가온 딸래미를 옆에 앉혀놓고 시를 낭독하니 한참을 듣던 딸아이가 갑자기 바쁘다며 자리를 떠버리더라. 그래서 한참을 웃었다. 조금씩 추워지는 이 계절을 즐기도록 해줄 수 있는 예쁜 책이었다. 깊어가는 이 가을을 시와 그림과 함께해 보고싶은 분들께 추천해 보고 싶다.


사랑은 겁 없는 가슴으로서
부드러운 님의 가슴에 건너 매여진
일렁일렁 흔들리는 실이니


사람이 목숨 가리지 않거든
그 흔들리는 실 끊어지기 전
저 편 언덕 건너가자.


- 변영로 '사랑은', 十一月 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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