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 구약탐정신화 JDC 월드
세이료인 류스이 지음, 이미나 옮김 / 비고(vigo)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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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예고장을 보낸 밀실경과의 한판 대결을 그린 <코즈믹>에 이은 JDC 사가 두 번째 작품. 이번에는 '예술가'라 자칭하는 천재 범죄자와의 대결이다. 간사이 지역 본격 추리작가 모임 연례 행사가 환영성에서 합숙 형태로 열리고, 이 자리에서 한 작가가 '녹스의 10계', '밴 다인의 20칙'에 빗댄 '추리소설 구성요소 30항'(밀실, 암호, 수기, 작중작, 알리바이, 미스디렉션 등)을 발표한다.

그러자 마치 그 법칙을 모두 섭렵하려는 듯 예술가를 자칭하는 범죄자의 무차별적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JDC 명탐정들이 환영성으로 급파되고...1,200쪽이 넘는 압도적인 분량과 스케일, 예술가와 JDC 탐정 간의 불꽃튀는 추리 대결... 과연 예술가라 자칭하는 범인은 누구인가?

간단히 말해서 '기상천외'와 '황당무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소설이다. 어찌 보면 무협지 스타일의 약간 겉멋 든 느낌도 들고...거시적으로 넓게 보면 합격이요,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전체적인 구성, 전개, 플롯, 스토리는 좋다. '모든 미스터리 총결산'이라는 작가의 야심찬 의도, 그를 실행, 추구하는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관, 4대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예측불허의 전개, 불가사의해 보이는 다양한 살인사건들과 등장인물 간의 촘촘한 서사, 논리에 논리를 덧씌우는 JDC 탐정들 간의 열띤 추리 대결,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예술가'의 정체...

하지만 단순히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일단 수수께끼 풀이의 많은 부분이 (한국 독자가 이해 못 하는) 일본어 언어유희, 애너그램에 의존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밀실 (눈 밀실, 물 밀실 등)은 형성 과정에 비해 밝혀지는 트릭은 유아적 수준이다. 다른 사건과 풀이 역시 대동소이. 무게만 잡고 알맹이는 없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 밀실의 진상은 끝내 탐정이 밝혀내질 못한다. 세상에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미해결로 남겨두는 소설은 처음 봤다. 범인의 의외성을 노린 마지막의 연속된 반전은 솔직히 논리적, 이성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깔끔히 마무리했으면...

이 책은 4대 미스터리(= 4대 기서,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 상자 속의 실락)에 기반을 두고 집필한 소설이다. (나는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을 모두 완독했다.) 작가 역시 4대 미스터리를 흠모하고, 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고 싶지 않았을까. 4대 미스터리는 내용이 난해해도 (흑사관과 허무에의 경우) 추리소설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도구라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디테일에서 조금 불만족스러울 뿐,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기존 본격 추리의 정석을 거부한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대범한 스타일로 본격 추리의 핵심 구성요소 대부분을 책 한 권에 쏟아부은 열정과 실험 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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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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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유명 동화를 다양한 트릭을 이용해 본격 미스터리로 재탄생한 아오야기 아이토 작가의 옛날이야기 x 본격 미스터리 제4탄. 서양 동화를 베이스로 한 빨간 모자 시리즈로는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분리된 나무 인형 피노키오의 몸뚱어리 되찾기 대작전이다. 빨간 모자는 여행 중에 피노키오의 몸 일부분을 줍고 그 나머지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지만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뛰어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며 결국 피노키오의 몸 전체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첫 단편 <목격자는 목각 인형>은 서커스장내에서 목격자에 의해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빨간 모자가 교묘한 트릭을 파헤치고 진범을 찾아내 궁지에서 벗어난다는 줄거리이다. 정교한 물리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 단편으로 재밌게 읽었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등장하는 <여자들의 독사과>는 정교한 트릭보다는 스토리의 반전에 무게를 둔 단편이다. 독자의 허를 찌르듯, 한순간에 가해자와 피해자, 선인과 악인이 뒤바뀌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베이스로 한 세 번째 단편 <하멜른의 마지막 심판>은 이야기고 깊고 다채로워 읽는 재미가 있다. 오랜 수감자의 감옥 탈출과 살인사건을 발단으로 드러나는 수십 년에 걸친 비밀스러운 음모와 가공할 복수 계획 등 짧은 단편 속에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탐욕스러운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등장하는 마지막 단편 <사이좋은 아기 돼지의 세 가지 밀실>에서는 세 건의 밀실 살인사건 발생한다. 빨간 모자 탐정은 밀실 트릭을 파헤쳐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응징하고 마을에 평화를 선사함과 동시에 피노키오의 몸을 되찾는다.

첫 번째와 마지막 단편은 다양한 트릭과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가 좋아 만족스럽고, 세 번째 단편은 이야기가 깊고 풍부해서 재밌게 읽었다. 두 번째 백설 공주 단편이 상대적으로 조금은 밋밋한 느낌.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몸이 분리돼도 생각과 말, 행동을 하는 나무 인형, 마법을 부리는 마녀, 의인화되어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 등 특수 설정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 변신과 재주의 폭이 독자가 추리에 공정하게 동참할 수 있게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적당한 선을 잘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5탄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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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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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여백>,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아시자와 요의 두 번째 장편 마스터리.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여성의 삶과 행복을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과 관점으로 써 내려간 심리 서스펜스물이다. 자칫 뻔한 전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놀라운 반전으로 커버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두 여성 주인공이 있다. 사에와 나쓰코. 공의존 관계(특정 대상과 과잉된 의존 관계에 빠져 서로 얽매이는 관계 중독 상태, 236p.)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누구보다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이... 하지만 사에의 남편이 실종,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이 책을 스포 없이 리뷰하기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책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출판사의 간략 줄거리 소개 문구가 참으로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책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작가는 유려한 필력으로 그런 반전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독자는 놀라움과 동시에 책 앞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재독하게 된다. 그러면 주인공들의 상황 전개에 따른 대사와 행동, 심리 등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좋게 표현하면 작가의 고도의 서술 테크닉이요, 나쁘게 말하면 얄팍한 속임수랄까... 물론 나는 전자이지만... 이 테크닉은 작가의 단편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 수록된 <언니처럼>이라는 단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띠지에 보면 '속아넘어가는 쾌감'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어리둥절한 상태로 속아넘어간 것 같다. 두 여성의 끈끈한 삶의 관계를 독자를 현혹시키는 대담한 테크닉으로 서술해가는 작가의 노련한 필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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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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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각지에서 세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살자의 공통점은 모두 전과자 출신. 그것도 무고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받고 사회에 복귀한 자들이다. 경찰은 과거 피살자가 저지른 사건들의 유족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동향을 감시하는데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날한시에 동일한 호텔에 모여든다. '로테이션 살인'을 예감한 경찰은 제4의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호텔리어로 변신, 잠입 수사에 들어간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시작으로 이브, 나이트에 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제4탄이다. 전작에서 찰떡 케미를 보여주었던 엘리트 형사 닛타 경감과 유능한 호텔리어 나오미가 재회하고, 혈기왕성한 젊은 아즈마 여성 경감이 합세한다. 하지만 고객의 편의와 만족을 최우선시하는 호텔리어로서의 나오미의 입장과 하루빨리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로서의 닛타의 입장이 충돌하고, 거기에 편법,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아즈마 경감과의 수사 방식에 대한 갈등도 이 책의 또 다른 읽는 재미이다.

'로테이션 살인'으로 흐르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생각지 못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한마디로, 피해자 유족의 고통과 가해자의 속죄, 그 중간의 불안정한 경계선과 합의점 사이에서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주는 한편의 추리 드라마이다. 과연 유족은 가해자를 평생 용서할 수 없는지, 마찬가지로 가해자는 속죄의 방식으로 죽음 이외에는 영원히 유족의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지..."가해자의 형벌은 일시적이지만, 피해자 유족의 고통은 영구적이다."란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 주인공 닛타 경감의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 제5탄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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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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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가 탐정인가? 샘 호손 박사의 탐정 놀이(?)는 3권에서도 계속된다. 뉴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노스몬트에 개업의로 자리를 잡은 지도 어언 10년...이제는 제법 마을의 인싸이지만 이 작은 소도시에 불가사의한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렌즈 보안관은 늘 그렇듯이 샘 호손 박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가 시대적 배경인데, 금주법이 폐지되고 최초의 영화관이 생기는 등 조금씩 변화, 발전하는 당시의 도시와 주민의 생활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작품 역시 샘 호손 박사가 활약하는 불가능 범죄 열다섯 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사방이 막힌 영화관 유아보호실에서 총에 맞은 남자,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중에서 사라진 곡예사, 오가는 발자국 하나 없는 눈 밀실에서 살해된 남자, 치료해 주는 의사 앞에서 독살당하는 환자, 뻥 뚫린 길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증발해버린 소녀...

사건은 흥미롭고 해결은 명쾌하다. 인물 배치도 적절하고 이야기도 짜임새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1권, 2권에 비해 전체적인 재미와 만족도가 떨어진다. 1권과 2권에서는 제법 건질만한 재미나고 참신한 단편이 여럿 있었는데 이번 3권에서는 그런 특출난 단편이 보이질 않는다. 밀실과 불가능 범죄 같은 독자의 구미를 확~ 끌어당길만한, 불가사의해 보이는 매력적인 사건이 적어서 그런 듯 싶다.

한마디로 무난하게 읽었다. 샘 호손 박사 시리즈를 읽으면 불가사의해 보이는 사건을 해결해 가는 정통 퍼즐 미스터리의 재미도 있지만 서양 추리소설만의 특유의 향수와 낭만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아무쪼록 4권, 5권 계속해서 무탈하게 출간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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