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마귀 한국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 1
홍정기 외 지음 / 서랍의날씨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추리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소모임 '한국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을 만들고 각자의 본격 추리 단편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교수대 위의 까마귀>에는 트릭을 기반으로 한 수수께끼 풀이 형식에 초점을 맞춘 여섯 개의 본격 추리 단편이 들어있다.

<눈 뜬 심봉사> 작가의 전작 <전래 미스터리>에서 보여준, 유명 전래 동화를 엽기적이고 잔혹하게 비틀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작가의 주특기이자 악취미(?)가 고스란히 재연됐다. 엽기 추리와 잔혹 스릴러의 조합이랄까. 트릭 구사를 위해 일부분을 숨기는 전개가 전체적인 완성도면에서 조금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다.

<자살하러 갔다가 살인사건> 김범석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작가의 데뷔작 <찰리 채플린 죽이기>를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특히 다양한 물리 트릭을 대범하고 거침없이 구사하는 그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번 단편 역시 내 예상과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자살자들끼리 모인 폐모텔에서의 뜻하지 않은 살인사건을 다양한 트릭과 반전으로 재밌게 풀어놓는다. 늘 생각하지만 재능이 뛰어나니만큼 어서 장편에서 만나보길 기대한다.

<초정밀 금고> <40피트 건물 괴사건>의 트릭도 제법 기발했는데 이 단편의 트릭 역시 물리학 전공 작가의 주특기를 살려 참신했다. 짧은 단편에 이야기도 짜임새가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136쪽 첫째 줄 '가짜 열쇠'는 진짜 열쇠의 잘못. 유일한 옥에 티이다.

<카의 방> <칼송곳>, <아귀도>, <보화도> 등 다수의 수작 장단편을 발표한 조동신 작가의 밀실 트릭 단편. '밀실 트릭의 대가' 존 딕슨 카에 경의를 담아 밀실 추리물에 도전한다. 밀실 트릭은 추리 작가에게 궁극의 로망인데 역시 새롭고 창의적인 밀실 트릭 구사는 쉽지 않다. 작가의 역량에 비해 밀실 트릭의 완성도가 조금은 평이한 점이 아쉽다.

<1,300℃의 밀실> 1,300℃ 도요(도자기를 굽는 가마) 안의 화염 속에 불탄 시체. 불완전 밀실 살인. 도예 세계를 소재로 한 참신한 설정. 범인을 특정해 가는 탐정의 논리가 질서정연하고 그 와중에 독자의 보편적 선입견을 역으로 이용한 트릭도 일품이다. 마치 오구리 무시타로의 전문적이고 심오한 단편을 접한 느낌이다.

<교수대 위의 까마귀> 이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분량이 제일 길다. 그리고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본격 미스터리의 꽃은 트릭인데 이 정교하고도 기발한 물리 트릭을 감상한 것만으로도 이 단편은 빛난다. 충분히 얼굴마담 할 자격이 있다.

워낙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지라 수록된 여섯 개의 단편 모두 재밌게 읽었다. 매 단편마다 작가가 선보이는 회심의 트릭과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즐겼다. 특히 마지막 두 개의 단편은 무척 공들인 느낌을 받는다.'한국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의 성공적인 첫걸음을 축하하고 계속해서 2편, 3편이 꾸준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를 살해한 살인죄로 12년형을 살고 만기 출소한 안치호를 복수심에 죽이려다 오히려 반격당해 정신을 잃고 위기에 처한 사준우. 그런 사준우를 구해주고, 대신 안치호를 죽이고는 시체 처리를 지시한 자는 누구인가? 이부(아빠가 다른) 누나인 경찰 사준서일까? 아니면 강력팀장 박한서일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일까?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나연만의 <돼지의 피>는 사준우를 중심으로 시종일관 쫓고 쫓기며 흑막의 정체를 파헤쳐 가는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함정에 빠진 사준우, 아라뱃길 시신 유기 사건을 추적하는 사준서와 박한서 형사, 여기에 연쇄 사이코 살인마 백상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더욱 복잡하게 흘러간다.

안치호를 죽이고 사준우를 뒤에서 조정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적 호기심과 경찰과 사이코 살인마와의 대결, 사준우의 회심의 반격 등 팽팽한 스릴러적 긴장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살인자의 정체를 꽁꽁 숨긴다.

작가의 문장에는 기교가 많다. 문장과 대사에 함축과 비유가 많아 진의 파악이 쉽지 않다. 텔레그램과 문자로 대화하는 자가 누구인지 곱씹으며 생각해야 한다. 이중 트릭, 뒤틀린 진상이라고 출판사 서평에도 있듯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건의 완벽한 진상이 명료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는다. 살인자의 정체는 물론 동기, 배경 등이 몇 줄의 암시 등으로 모호하게 마무리되는 점이 불만이다.

영상으로 제작하면 제법 반전과 스릴감이 공존하는 괜찮은 스릴러 영화가 탄생되지 않을까 싶다. 아~ 글코 강렬하고 자극적인 묘사, 폭발적인 전개에 남성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성 작가다. 심히 놀랐다. 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가의 괴이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조영주 외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 추리작가 여섯 명의 미스터리 앤솔러지 단편집.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이라는 미제 사건을 소재로 여섯 명의 추리작가가 각자 그만의 주제 의식과 장르적 기법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책을 읽어보니 장르의 구성이나 기법이 어떡하든 여섯 작가가 공통적으로 구상하고 전개하려는 핵심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동기와 방법. 과연 무슨 이유로 스스로 (자살이라 가정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게 됐는가? 바로 동기이고, 또 하나는 과연 혼자의 힘만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스스로 옆구리를 칼로 베고, 양손, 양발에 각각 대못을 때려 박아 과다 출혈로 죽을 수 있느냐? 방법의 문제이다.

동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여섯 작가의 강한 개성이 드러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이라면 자연스레 예수가 연상되고 그것은 저절로 종교적 이미지로 귀결된다. 그래서 대부분 단편이 동기의 출발점을 종교적인 이유나 배경에서 찾는다. 고난의 증표, 숭고한 희생 등등 .. (솔직히 나는 무교이며 종교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래서 종교 얘기만 나오면 지루해진다.)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몇몇 단편들에서 혼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를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과연 그게 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 사이코 미스터리인 조영주 작가의 <영감>은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만큼이나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박상민 작가의 <그날 밤 나는>은 억울하게 딸을 잃은 아빠가 소기의 목적을 가진 비밀 결사 단체를 알게 되고 종교의 힘을 빌려 십자가 사건을 일으키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전건우 작가의 <도적들의 십자가>를 제일 재밌게 읽었다. 디스마스와 게스타스를 찾는 작가의 기행과 편집자의 섬뜩한 모험을 스릴감 있게 그려낸다. 결말도 임팩트가 좋다. 주원규 작가의 <십자가의 길>은 조력자의 등장이 포인트이고, 김세화 작가의 <엘리 엘리 ~>는 두 건의 십자가 사건으로 파생되는 제3의 사건을 다룬다. 차무진 작가의 <파츠>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파츠'라는 새로운 인물과 역할이 등장하는 SF물이다.

<십자가의 괴이>는 무척 특이한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범상치 않은 사건... 밝혀지지 않는 동기와 배경... 하나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여섯 개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해서 풀어놓는 스토리가 흥미로웠다. 색다른 경험을 한 느낌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보는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최신작. 작가님 최초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본격 추리물이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주요 미스터리 랭킹에서 3관왕을 차지한 작품이다. <가연물>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고 주인공 경찰 (가쓰라 경부)이 스스로 탐정이 되어 다섯 가지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그동안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어왔다. 그중 대표적인 걸작들을 꼽아보자면... 클로즈드 서클 배경에 엔터테인먼트적 재미를 극대화한 <인사이트 밀>, 판타지와 추리를 절묘하게 결합한 미스터리 대작 <부러진 용골>, 평범한 여섯 명의 사람들의 그 이면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야경>, 역사 미스터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흑뢰성> 등이 있다. 이 책 <가연물>은 또 어떤 미스터리의 재미와 매력을 보여줄까?

탐정 역할의 주인공 가쓰라 경부가 활약하는 다섯 개의 연작 단편이 들어있는데 패턴은 비슷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감식반이 출동하고 수사 회의를 거쳐 형사들이 증거를 수집한다. 가쓰라 경부는 수집된 증거를 그러모아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추리로 수수께끼를 풀어내 사건을 해결한다. (마지막 단편은 예외)

<낭떠러지 밑>은 사라진 흉기의 행방에 포커스를 맞춘 단편이다. 설산에서의 예기치 않은 사고와 치솟는 살의와 살인의 긴박감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졸음>은 어찌 보면 제목이 스포일러이다. 새벽 3시의 한적한 도로 교차로에서의 차량 충돌사고. 근데 동일한 진술의 목격자가 무려 네 명. 뭔가 수상하다. <진실의 10미터 앞>과 비슷한 결의 단편이다.

<목숨 빚>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이다. 공원 산책로의 눈에 띄는 장소에 유기된 훼손된 신체의 일부분을 통해 범인과 피해자 간의 속 깊은 사연이 드러난다.

표제작 <가연물>은 상대적으로 심심하다. 소소한 연쇄 방화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인데 그 동기와 스케일 면에서 경범죄 수준에 그친다.

마지막 단편 <진짜인가>에서는 가쓰라 경부의 추리가 빛을 발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발생한 인질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외부에서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만 듣고 신들린 추리로 그 진위 여부를 가려낸다.

수록된 단편들 모두 고른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경찰 수사물과 본격 추리의 콜라보답게 수사관들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는 진상을 밝혀내는 가쓰라 경부의 날카로운 추리 과정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재와 전개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고 반전을 이끌어내는 결말을 보면 역시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만의 유니크한 방식이 있다. 믿고 보는 작가답게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평점 :
품절


호화 별장지에 모인 다섯 가족이 파티를 여는 가운데 여러 사람이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한다. 범인은 그 즉시 자수하고... 동기는 단지 사형당하고 싶어서 저질렀다고 말할 뿐 일체의 진술을 거부한다. 이에 살아남은 유족들은 '검증회'를 열고, 마침 휴가 중인 가가 형사가 참고인으로 이 모임에 동참한다. 과연 사건의 숨겨진 진상은 무엇일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백한 번째 작품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황금기 정통 추리소설을 재현한 본격 추리물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 중 가장 본격물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내가 그를 죽였다>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계보를 잇는...

한마디로 담백하고 깔끔한 추리물이다. 요즘 일본의 본격 추리물을 보면 신세대 작가들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를 필두로 비현실적인 배경에 자극적인 스토리가 대세인데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정통 추리소설의 클리셰에 충실한 느낌이다.

다섯 가족이 처한 그들만의 입장과 처지 속에 얽히고설킨 비밀스러운 역학과 남녀 관계. 여기에 원한, 증오, 질투, 복수심 같은 원초적인 본능에 미치광이의 자포자기까지 더해져 희대의 연쇄 살인극이 탄생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검증회를 통한 자기 고백과 연이은 폭로 공방을 통해 가가 형사는 유족들 간의 숨겨진 비밀과 인과관계를 찾아내어 사건을 말끔히 해결한다. 그 와중에 이어지는 반전의 묘미는 일품이다. 한 편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추리 드라마 겸 연극을 감상한 느낌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좋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