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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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 시리즈의 매력은 주인공인 블랙 쇼맨의 캐릭터성에 있다. 전직 프로마술사 출신에 현직 칵테일바 '트랩핸드'의 주인장...오시는 손님의 비밀스러운 사연과 고민을 은밀히 캐치해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불법 도청과 몰래 카메라는 기본이고 전직 프로마술사다운 화려한 손기술과 능수능란한 언변 거기에 화려한 쇼맨십까지...

그렇게 1편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서는 친형 살인사건을 명쾌히 해결했고, 2편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에서는 궁지에 몰린 여성들을 구해낸다. 3편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역시 다양한 고민과 위기에 빠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태어날 아이의 법정 상속권에 따른 이권의 암투를 그린 <천사의 선물>,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피하는 딸의 운명적인 종착점을 그린 <피지 않는 나팔꽃>, 사랑과 꿈의 갈림길에서 선택지를 받아든 한 여성의 <마지막 행운>.

누군가 연극을 하고 있다. 그 연극은 주변 관계자를 속이기 위해 선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연극이다. 블랙 쇼맨은 연출자이지만 때론 연극의 진위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관객이기도 하다. 친형 살인사건을 다룬 1편이 제법 본격의 무게가 있었다면, 2편에서는 일상을 다룬 코지물로 변환되고, 3편에서는 그 맛이 더욱 순화된다. 큰 틀에서 보면 코지물이요, 세밀히 들여다보면 선한 미스터리, 힐링 미스터리이다. 자극적인 맛은 없다. 하지만 그 순한 맛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재미와 여운 그리고 소소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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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 리노블 3
염유창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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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 여성이 범인을 쫒는게 신선하고, 모방범 - 연쇄살인범으로 단계적으로 빌드업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단점은 묵직한 맛이 없고 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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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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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추리소설. 아이슬란드 범죄소설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형사반장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2002년작.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대형 호텔의 지하방에서 도어맨이 산타 복장을 한 채 살해되어 발견된다. 에를렌두르 형사반장을 중심으로 한 세 명의 형사는 범인 추적에 나선다.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영미권의 정통 추리소설이나 요즘 유행하는 일본 추리물과는 많이 다르다. 기발한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탐정과 범인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도 없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반장과 피해자인 도어맨의 개인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아내와 오래전에 이혼하고 아들은 소식이 끊긴지 오래며 약물 중독의 딸은 걸핏하면 찾아와 '내 인생을 돌려내라.'라며 시비를 건다. 집에 가면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오십 줄에 들어선 고독한 형사 반장. 그런 내면의 고독과 쓸쓸함을 따라간다. 오죽하면 부하 직원들이 크리스마스에 같이 보내자며 수도 없이 요청할까...

마찬가지로 피해자 도어맨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어릴 적 천상의 목소리를 지녀 소년 성가대원으로 '신이 내린 목소리'란 찬사를 들으며 음반을 두 장이나 냈던 아이돌 스타. 그런 촉망받는 소년의 한순간의 몰락과 좌절, 이어지는 방황과 가출... 결국 호텔의 일개 도어맨으로 전락해 비극적인 삶을 마치는 기구한 운명까지...

작가는 형사 반장과 피해자 주변을 중심으로 담담히 수사 상황을 나열해 나간다.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마약, 절도, 강간, 살인 등 사회적 범죄가 동기를 형성한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색 국물의 얼큰한 순두부찌개가 아닌 투명한 색의 맑은 순두부찌개를 소금 쳐서 먹는 맛이랄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한 끌림과 여운이 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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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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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왓슨력>을 읽고 작가의 내공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이번 <붉은 박물관>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다. 일단 작가의 머리가 비상하다. 이 정도로 이야기를 구상, 직조해서 반전을 끌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단순히 범인의 정체나 트릭 한두 개가 아닌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뒤집는 방식으로 반전을 끌어내는 기교가 놀라울 따름이다.

미제 사건이던 기결 사건이던 이미 과거에 종결된 사건을 당시의 증거 자료와 수사 일지만 보고 의혹을 찾아내서 재수사를 통해 (부하 사토시 경사의 탐문 수사 등 보강 작업이 병행) 사건의 숨겨진 진상을 밝혀내는 '붉은 박물관' 여성 관장의 날카로운 혜안과 신들린 추리가 감탄을 자아낸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 중에서 몸값을 지불하는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트릭이 빛을 발하는 <빵의 몸값>이 깔끔하니 제일 재미있었다. 일가족 독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불길>도 재밌었고, 두 가지 정황 증거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복수 일기>와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논리의 장황한 설명에 치중하다 보면 재미라는 추리소설 본연의 맛이 퇴색되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마지막 단편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다. 어찌 됐건 수십 년 전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 재수사를 통한 관장의 신들린 추리로 새롭게 드러나는 다섯 가지 반전의 묘미를 흥미롭게 감상했다. 조만간 붉은 박물관 두 번째 이야기인 <기억 속의 유괴>도 출시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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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 구약탐정신화 JDC 월드
세이료인 류스이 지음, 이미나 옮김 / 비고(vigo)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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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예고장을 보낸 밀실경과의 한판 대결을 그린 <코즈믹>에 이은 JDC 사가 두 번째 작품. 이번에는 '예술가'라 자칭하는 천재 범죄자와의 대결이다. 간사이 지역 본격 추리작가 모임 연례 행사가 환영성에서 합숙 형태로 열리고, 이 자리에서 한 작가가 '녹스의 10계', '밴 다인의 20칙'에 빗댄 '추리소설 구성요소 30항'(밀실, 암호, 수기, 작중작, 알리바이, 미스디렉션 등)을 발표한다.

그러자 마치 그 법칙을 모두 섭렵하려는 듯 예술가를 자칭하는 범죄자의 무차별적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JDC 명탐정들이 환영성으로 급파되고...1,200쪽이 넘는 압도적인 분량과 스케일, 예술가와 JDC 탐정 간의 불꽃튀는 추리 대결... 과연 예술가라 자칭하는 범인은 누구인가?

간단히 말해서 '기상천외'와 '황당무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소설이다. 어찌 보면 무협지 스타일의 약간 겉멋 든 느낌도 들고...거시적으로 넓게 보면 합격이요,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전체적인 구성, 전개, 플롯, 스토리는 좋다. '모든 미스터리 총결산'이라는 작가의 야심찬 의도, 그를 실행, 추구하는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관, 4대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예측불허의 전개, 불가사의해 보이는 다양한 살인사건들과 등장인물 간의 촘촘한 서사, 논리에 논리를 덧씌우는 JDC 탐정들 간의 열띤 추리 대결,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예술가'의 정체...

하지만 단순히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들여다보면 불합격이다. 일단 수수께끼 풀이의 많은 부분이 (한국 독자가 이해 못 하는) 일본어 언어유희, 애너그램에 의존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밀실 (눈 밀실, 물 밀실 등)은 형성 과정에 비해 밝혀지는 트릭은 유아적 수준이다. 다른 사건과 풀이 역시 대동소이. 무게만 잡고 알맹이는 없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 밀실의 진상은 끝내 탐정이 밝혀내질 못한다. 세상에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미해결로 남겨두는 소설은 처음 봤다. 범인의 의외성을 노린 마지막의 연속된 반전은 솔직히 논리적, 이성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깔끔히 마무리했으면...

이 책은 4대 미스터리(= 4대 기서,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 상자 속의 실락)에 기반을 두고 집필한 소설이다. (나는 흑사관 살인사건, 도구라마구라, 허무에의 제물을 모두 완독했다.) 작가 역시 4대 미스터리를 흠모하고, 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고 싶지 않았을까. 4대 미스터리는 내용이 난해해도 (흑사관과 허무에의 경우) 추리소설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도구라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디테일에서 조금 불만족스러울 뿐,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기존 본격 추리의 정석을 거부한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대범한 스타일로 본격 추리의 핵심 구성요소 대부분을 책 한 권에 쏟아부은 열정과 실험 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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