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좋아하세요... - 미술관장 이명옥이 매주 배달하는 한 편의 시와 그림
이명옥 지음 / 이봄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을 보다보면 떠오르는 시가 있고, 반대로 시를 만났을 때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마치 작가 한 사람이 그림으로, 활자로 각각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은 그런 때 말이다. 이명옥의 <시를 좋아하세요...>는 그림과 시가 만났다. 그렇다고 장르가 시와 그림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두 작품의 연결이 될 만한 영화도 있고, 혹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르를 재치있게 등장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한국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시, 명작이라고 하는 대다수의 작품은 한국을 포함 아시아쪽이 아니라 대부분 서양세계의 작품이 많았다.  사랑도 삶도 멀리서 크게 바라보자면 인종이나 문화를 나누지 않는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슬픔과 상실이 있고 화합과 행복이 숨겨져 있다.  권대웅의 [아득한 한 뼘]과 레오니드 티쉬코프의 [북극의 달 얼음]을 주제로 한 챕터2의 이야기를 잠시 꺼내보면 시구절 중 다음의 내용이 있다.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권대웅, -아득한 한 뼘 중에서- 27쪽


이 시와 어우러진 레오니드 티쉬코프의 북극의 달얼음은 그림이 아니라 설치예술이다. 얼음위에 달을 형상화한 조명이 환하게 빛을 밝힌다. 보름달이 아닌 초승달인데 '초승달은 예측 불가능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서' (본문 32쪽) 초승달을 선택했다고 예술가는 말했다. 시로 다시 돌아가면 부풀어서 환해지고 가까워질 때의 느낌은 분명 만월이지만 생각해보니 그 어떤 그리움도 기억도 완벽하게 만월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을 바라볼 때의 상황과 심경에 따라 그 빛과 크기가 달라지듯 어떤 기억이나 추억을 대할 때 우리 또한 그렇게 위태롭지 않았던가 싶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은 주제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표현한 서로 다른 장르를 보여주기도 하고 이번에는 동명의 타이틀을 가진 한용운의 <해당화>와 이인성의 <해당화> 그림을 '사랑은 기다림입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8번째 챕터에서 이야기한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한용운 <해당화>중에서, 84쪽


눈물이 어른거릴 때의 묘사를 저렇듯 표현한 시인의 솜씨가 참 곱고 저릿햇다. 말도 없이 꽃이 어지러져 둘이되고 셋이될때의 경험을 아마 누구라도 갖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애절함 그 자체이다. 교과서를 통해 배울 때의 한용운에 갇히지 않도록 이 시를 골라내준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시란 누구의 해석이 아니라 읽는 이에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가장 적확하다고 나역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아닌 이인성의 <해당화>라는 그림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시가 있는데 이 두 작품이 그런 인연으로 소개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골라준 시와 어울리는 다른 그림 혹은 조각등이 떠오를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그림을 보면서 다른 영화나 문학작품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던져준 것은 바로 이런 시도를 해보라는 기회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낌과 함께 내가 떠올랐던 작품도 함께 메모하다보니 이 한 권의 책에 정말 많은 작품들이 다녀가게 되었다. 책에 더 많은 메모가 쌓일 수 있게, 이 책을 곁에 두고 오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시, 주리 그림 / 바우솔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설 전국에 함박눈이 내렸다. 그로인해 불편한 이들도 많았겠지만 눈을 좋아하는 내게는 신이 내려주신 새해 선물처럼 느껴졌다.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읽기에 '적당한'날이었다.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문구 앞에 두 문장이 빠져있다. 못잊을 사람과 함께 한계령을 넘을 때라는 전제가 존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뜩밖의 폭설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립이 아니라 두사람만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는 고마운 장치가 된다.  그렇기에 저 한 줄 문장에 마음을 한참 빼앗겨버렸다.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공유와 전도연이 열연한 영화 <남과여>속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폭설'때문이었다. 고립된 두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었던 상황에 많은 말 대신 서로의 체온으로 위로와 응원을 함께한다. 소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상황을 전부 묘사해주고 설명해주는 소설이나 서사구조의 장르보다 시, 혹은 활자가 많지 않은 동화책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 같다. 어떤 때에는 감명깊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고 또 어떤 때에는 실제로 폭설로 인해 뜻하지 않게 두어시간 휴게소에 머물며 눈밭을 걸었던 독일의 아우토반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잊고 살았다. 참 많이 울었던 영화의 한 장면을, 그 좋았던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 밤을.


시인의 시선은 폭설로 고립된 연인을 쫓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여자인듯 싶다. 폭설로 인해 헬기가 떠도, 겨울 한 밤 어두움이 사방을 잠식해도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고립되어 있는 그 시간이, 발과 함께 '운명'도 묶인 그 상태가 계속, 계속, 지속되기만을 바란다. 그림속에 빠져들수록 나또한 여자의 마음을 응원하게 된다. 부디, 부디, 눈이 다 녹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뤄질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응원.

폭설이 내리면,
눈으로 인해 발이 묶였을 때면,
이 동화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이 동화가 떠오를 수 있도록 다정한 사람과 눈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자인 굿즈 만들기 with 포토샵 & 일러스트레이터 - 인쇄물, 디자인 문구,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김신애 지음 / 한빛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포토샵을 만져본 것은 대학교 입학 후 레포트 표지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다. 레포트 표지가 자원 낭비라며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교수님들도 계셨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것 부터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이 과제의 시작이라고도 하셨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나 역시 책의 표지만큼이나 레포트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유된 표지로는 늘 아쉬웠다. 그렇게 만나게 된 포토샵은 컬러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나 폰트를 활용해서 맘에 드는 표지를 만들 수 있었다.  필요에 의한 접근이었고 그 이상의 것을 배우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포토샵을 가지고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사실 몰랐다. 사회에 나와서 실무를 통해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가면서 마치 사람이 태어나 뇌의 능력을 극히 일부만 사용한다고 하는 것처럼 포토샵의 극히 일부기능만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이들도 그때의 내 맘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포토샵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들 하던데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의 목록에 맞게 읽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혹은 포토샵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라면 맨 뒷장 <기본기다지기>부분부터 읽고서 차근차근 필요했던 과정을 배우는 것도 좋고 콕찝어 초대장이나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팁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해당 페이지부터 보면 된다.

로고를 포함, 대부분의 작업에서 폰트는 큰 역할을 차지한다. 이 때 아무거나 맘에든다고 가져다가 쓰면 그것이 설사 개인적인 물품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과 관련 문제가 될 수 있다. 책에서는 무료 서체를 배포하는 곳들 중 한글서체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영문 서체를 제공하는 Dafont 사이트를 예시로 해서 서체를 다운받고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방법 등 기초부터 상세하게 접근해들어간다. 이미 포토샵을 사용한 사람들이라면 단축키로 서체 크기 및 이미지 크기를 조절하지만 책에서는 메뉴바를 통한 접근방법도 함께 일뤄준다. 무료서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찾아도 동일한 서체를 찾을 수 없을 때는 해당 서체를 사용자가 이미지화해서 활용했을 확률이 높다. 그 활용방법 역시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나만의 폰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만의 디자인 로고를 만들 수는 있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로고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하나의 디자인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완성된 로고는 가장 기본적으로 명함, 쇼핑백, 텀블러, 문구용품 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사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시적으로 디자인 용품을 만들어야 할 때 저렴한 업체들을 이용하려할 때 이런 부분을 할 줄 알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특히 명함의 경우 직접 디자인을 한 후 인쇄만 업체에 맡길 경우 저렴하게 제작가능하다. 제작과정 또한 사이트에 접속 후 주문하는 과정까지 책에 실려있으니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서점이나 디자인문구점에 가면 예쁜 패턴지의 가격이 꽤 비싸서 구매를 망설였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때는 포토샵 기능 중 패턴등록을 통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처음에 배웠던 로고 디자인을 활용해 패턴 한가운데 배치후 출력하면 마치 그림처럼 인테리어 소품으로 벽을 꾸밀수도 있다. 만약 패턴을 수정 해 선물을 포장하는 포장지로 만들고 싶을 때는 역시나 실제 업체에 접속해 제작할 수 있는 과정이 책에 들어있다. 사실 디자인을 직접 했더라도 어떤 용지를 선택해야 할 지 처음부터 다 맡겨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디자인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제작까지 이끌어준다는 점이 이 책에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포토샵을 보정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모바일이나 웹에 올릴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에 적힌 것처럼 포토샵을 가지고 얼마만큼 활용을 할 수 있는지는 결국 사용자가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공부를 해보는 등 들이는 시간과 공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이 디자인 굿즈라면 다른 책말고 이 책 한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우디아라비아 -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캐런 엘리엇 하우스 지음, 빙진영 옮김, 서정민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는 세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전제군주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알 사우드 왕가가 80여년 전 집권 한 이래 이어져 오고 있다. 알 사우드 왕가는 현재 뿐 아니라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그리고 부유한 가족기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로부터 왕들은 대다수가 다산이 의무인 것처럼 많은 자녀를 두었고 알 사우드 왕가도 마찬가지다. 왕족의 피를 물려 받은 왕자들만 해도 수천명으로 얼핏보면 절대왕권을 누리는 사람도 그에 비례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권을 이어받거나 그 실세로 군림하는 왕자는 극소수며 중심에서 밀려난 왕자들은 여성이나 소수자들에 비해 형편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나은 편이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열정을 맘껏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저자가 만난 압두라왕의 조카 압둘라 빈 무사드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는 사우디의 유일한 스포츠인 축구를 좀 더 대중화시키고 현대화 시키기 위해 협회를 만들고 노력했지만 TV중계권을 비롯 기타 부차적인 부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다른 친인척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 결국 취미로 미식축구를 관람하는 체념상태에 빠져있다. 이에따른 왕가 내부의 분열도 만만치 않지만 더 큰 문제는 다양한 이유로 정부에 반감을 품은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에도 여성이나 소수자들을 탄압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오일머니를 적당히 분배하는 등의 호혜정책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실이 제시한 비전2030 프로젝트를 보면 사우디 수입의 90%에 해당하는 오일과 천연가스 중 오일사업에 의존도를 낮추고 비석유 부문 국가 수입을 6배나 확대하자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문서상으로만 보면 지극히 현명한 방안이며 꼭 필요한 사안이다. 게다가 국가 사업 중심에서 민감 부분으로 전화 시키자는 의도도 희망적이긴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체과는 달리 왕실에서 반정부 세력 및 시아파를 대하는 정책은 결코 자비롭지도 현명하지도 못했다. 반정부 세력의 소동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 중 그들이 선택한 것이 다름아닌 '처형'이기 때문이다. 기어이 2015년 9월에는 왕실 내 고위 세력의 한 왕자가 국왕 교체 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우디라는 나라의 모습이다. 저자가 발로 뛰며 취재해온 내용은 결코 이정도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적이고 창조적이며 사려 깊은 사우디인들이 털어놓기를, 성별이나 나이, 출생에 상관없이 열정을 억눌러야 하고 구속받는 삶에 숨이 막힌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라만 가득한 박물관을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201쪽

현재 사우디의 가장 큰 위협은 이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은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지형적으로 봤을 때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하면서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고대 및 중세 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2030 비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가능한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국가사업에서 민간사업이 주축이 되기 위해 전환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보조금에 익숙해진 사우디 국민들에게는 반가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열악한 환경의 근무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사우디는 법규가 개선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며 투자를 받는 것 역시 현재 법령이 개편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하지만 2030비전이 회의적일 뿐 실제 사우디의 영향력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원유 수요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을 사우디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등 우리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비전이 아니라 종교를 포함한 소수자들과 여성들의 인권을 제대로 정립하고 왕실내의 분란을 잠재우는 측면에서의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축약할 수 있다. 돈을 쥐어주면서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현상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소설을 쓰는 새로운 방식 HHhH


역사의 사건을 접하다보면 '소설로 쓰면 재밌겠다'싶을 때가 있다. 희생자 수가 많을 경우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죄스러울 때가 있지만 어찌되었든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통용된 사실에 입각해보면 나쁜 생각은 아니다. [HHhH]의 로랑 비네는 하이드리히 암살 사건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고 실제 저자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집필 과정자체가 소설이 되었다. 만약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까지 말끔하게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레이아웃이나 진행방향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예비작가들이라면 이 책의 방식이 솔루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두가 길었으니 바로 사건안으로 들어가보자.

작가는 처음 사건을 접하게 된 이후 발로 뛰어다니며 정보를 찾으러 다닌다. 영화로 만들자면 별도의 각색도 필요없을 것 같다. 스릴러나 역사물에서 도서관에서 밤낮으로 스탠드 불빛아래 수 많은 책을 쌓아두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저자는 하이드리히와 셜록과의 유사점도 살짝 언급했다. 셜록과도 유사한 이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책 제목에서 부터 출발하면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 불린다' 로 히믈러는 SS(나치친위대)수장이었던 히틀러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유대인 대학살의 지휘했던 핵심인물이다. 히믈러의 선택과 정책의 뿌리를 실제적으로 전두지휘했던 것이 하이드리히였던 셈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셜록과 하이드리히의 유사점은 바이얼린 연주를 제법잘했다는 데에서 출발했으며 실제 하이드리히는 어릴 때 부터 왕따에 시달렸지만 교과성적 뿐 아니라 펜싱 그리고 바이얼린 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범생 스타일 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자신의 큰아들의 대부까지도 망설임없이 제거해버리는 냉혈한이 되어버린걸까? 재미난 사실은 이토록 잔인해보이는 그들도 동료들과 함께하는 파티나 저녁모임, 그리고 데이트를 할 때는 지극히 낭만적인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분명 똑같이 숨을 쉬고, 사고를 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다시 말해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하나로 왕따를 당하고,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아예 제명당할 위기에 처할 때 그에게 유대인이란 존재는 '생명'이 아니라 걸림돌과 다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부모세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다. 어쨌든 하이드리히가 본격적으로 유대인 말살정책을 펴기전에 유대인들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마치 미국이 인디언들의 재산을 빼앗고 이주 정책을 펼쳤던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완(?)전하게 해결되지도 시간도 비용도 너무 많이 소모된다. 총알도 아깝다고 말했던 만큼 잔인한 학살이 진행되면서 히믈러, 하이드리히 그리고 히틀러 세사람이 유대인을 상대로, 크게 봐서는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만행은 유쾌한 필체로 진행되는 이 소설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책을 보고난 후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전혀 관계없는 내용인데도 그 영화를 떠올린 것은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의 등장하는 대화나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이며, 이미 그 결과마저 아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친 각색없이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해당 영화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결과도, 결말도, 그리고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공포와 피의 바람을 던지는 인물들이 변함없이 나고 죽는다. 우리가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애초에 이런 사람들이,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그릇된 사고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나 당시에는 무기불량으로 실패했던 하이드리히 암살 사건처럼 누군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숨거나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사실이 희망의 다름 모습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