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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특별기획 통찰 - 예리한 관찰력으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다
EBS 통찰 제작팀 지음 / 베가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통찰]은 단편화된 우리의 지식을 바르게 꿰어주는 진주 목걸이의 역할을 한다. 숲도 보게 하지만 나무도 보게 한다. -13쪽-
총 6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EBS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프로를 한 권의 책으로 추려 출간한 것이다. 첫 번째 챕터는 인문학의 시작이자 중심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종교를 포함한 인문학서까지 떠오르게 만들어주었는 데 '동굴'이란 키워드가 그랬다.
동굴의 '동'과 통찰의 '통'은 같은 한자다! 18쪽
동굴은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기원전 인류가 벽화를 통해 당시 생활의 일부를 엿보게 해주는 통로일 뿐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다. 최근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주인공이 과거에 풀지못했던 숙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장소가 다름 아닌 우물이며, 그 고통의 과정을 축소시킨 장소가 다름아닌 동굴이었다. 비단 이 소설 뿐 아니라 하루키는 주인공이 현실 세계와 이상세계를 오가는 통로로 우물처럼 동굴과 유사한 장소를 선택하곤 했다. 그런가하면 원효대사 역시 동굴에서 마신 해골물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굴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등장했다. 책에서도 추천하는 책의 저자인 배철현 교수역시 자신의 저서<심연>에서 매일 아침 자신의 내면안으로 들어가 들여다보는 심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서문이자 제목이 '나라의 기초, 심연을 본 사람'이라고 적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동굴로 들어가든, 골방이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식의 자아성찰의 결과, 즉 깨달음의 결과가 인간의 삶은 유한하니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살기 보다는 늘 인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선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되는 데 이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인생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으니 의미있는 일을 하고 놀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정답'(본문61쪽)이라고 길가메쉬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흔히 바라는 '보통'과 '평범'한 삶을 뜻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자신의 마아트, 즉 신이 주신 소명을 깨닫고 노력해야 하는 삶이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이 따르며 개인이 겪는 고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함께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는 컴패션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벽한 통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2편 자연으로 넘어오면 다음의 문장들을 바탕으로 양자역학 이전 부분까지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자는 늘 미래만 말하고, 인문학자는 늘 과거만 이야기했다." 스노우 71쪽
책과 책 사이의 맥락을 묶는 것이 바로 인문학 공부다. 78쪽
근대에 이르러 철학이 세분화 되면서 현재는 이과, 문과로 나뉘어져 마치 전혀 무관한 내용인것처럼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통찰'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이르렀고 다른 분야에 취약한 이유가 서로의 전공이 달라서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고려대 김인환 교수의 말처럼 계열이 다르더라도 '문과생들도 공통과학과 수학을, 이과생들도 공통사회와 국어를 함께 공부하고 추구하는 학교가 보다 원만한 교육으로 가까워지는 것이고-중략- 82쪽 라는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양자역학의 경우는 파인만 교수의 다음의 말 덕분에 큰 두려움없이 책을 읽었고 더 공부해 볼 마음이 생겼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없다" 105쪽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가 저렇게 말하게 만든 양자역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전역학과 상반되는 이론으로 모든 것을 추측하고 예측해볼 수 있는 과학은 확률의 근거하여 추론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어느 결과의 중간 결과값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가진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의 질문의 답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견해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여전히 논쟁중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미래에 해당되는 인공지능, AI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지어 보자면 해당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일으키게 될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다음의 견해를 가진다.
인공지능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입력값에 따라 일고리즘을 가지고 어떠한 정보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 선택이 인공지능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비록 선택의 형식은 인간의 것을 닮았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선택은 엄밀히 말해 책임 있는 선택이 될 수 없다. 274쪽
미디 엔 그룹 비트닉 아티스트의 '무작위 다크넷 구매자'라는 작품이자 인공지능의 경우 다크넷을 통해 마약과 무기구매로 인해 물의를 빚었을 때 법원은 인간이 값을 넣어줬을 뿐 실제 구매를 한 것은 AI이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위의 견해와 반대된다기 보다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AI의 윤리적인 부분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부분에 있어 다섯 번째 챕터 상생에서 언급한 서민 교수의 의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생충의 현실을 보면, 편견이라는 게 곧 혐오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편견은 피부색이나 인종, 남녀, 종교의 차이로 인해 생겼으며, 그 틈을 타고 반대와 차별이 일어났다. 237쪽
비단 기생충뿐 아니라 AI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앞서 사례를 두고 편견을 가져선 안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기생충에 관련된 내용을 읽다보면 식사중에는 읽기를 피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상생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편견을 막는 것이고, 잘 안다고 해도 편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첫 번째 챕터에서 강조하는 컴패션이 아닌가 싶다. 나의 고통이 아니라 이웃의 고통까지 아우르는 자세가 필요한 세상이 미래일 것이다.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미래가 아니라 예측이 불가능하고 다른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편견없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미래가 되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책 <통찰>을 통한 통찰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