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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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버튼의 소설, <미니어처리스트>를 이제사 읽었다.

서두의 시작을 이렇게 아쉬움으로 적는 까닭은 예상한대로 <미니어처리스트>의 내용이 정말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품의 중심인 '넬라'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시누이인 '마린'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고 억지스러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적어도 내가 욕망과 신 앞에서 뜻하지 않게 오만해지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마치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 거울처럼 과거의 나를 비춰보게 만들었으니까.



1686년 10월 중순

암스테르담, 헤렝라흐트 운하


임금이 즐기는 맛난 음식은 바라지도 말아라.

그것을 먹으면 화를 입는다.

<잠언> 23장 3절

위의 발췌문은 작품 시작에 등장하는 성경 구절이다. 지난번에 성경과 관련된 캘리그라피 책 리뷰를 적으면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문학작품에서 인용되거나 등장하는 성경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탐욕과 죄에대한 경고일 때가 많다. 사실 그런 이유로 <미니어처리스트>를 읽지 않았었다. 이부분에서 좀 오해가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신의 이루지 못할 욕망, 심지어 살인까지 미니어처리스트가 되어 간접적으로 이뤄가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다만 인간의 욕망과 죄, 다시말해 타인에게 하나쯤 숨기고싶은 잘못과 관련된 비밀을 다뤘지만 이전에 우리가 이전에 만났던  뻔한 내용과는 좀 다르다. 주인공 넬라는 네덜란드 아센덜프트의 가난한 집에서 살던 이제 겨우 열여덟 된 어린 아가씨다.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 암스텔담의 성공한 무역상인의 아내가 되는 기회가 찾아온다. 평소에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그녀였고,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긴 했지만 그 방법이 나이가 이토록 많은 부유한 상인과의 결혼일 거라는 상상은 미처하지 못했다. 그녀의 결혼은 요즘 사회로 치자면 재벌에게 시집가는 것인데 너무 뜻밖이라 넬라는 독특한 상상이 아닌 누구나 하게되는 상상이라기보다는 예상에 가까운, 남편의 시중을 들고 통통한 아이들을 낳는 등의 생각만 한다. 그런 그녀의 소소한 기대와는 달리 남편 오트만의 집에 온 첫날부터 시누이 마린과 하녀 코넬리아의 태도는 넬라에게 텃새를 부리는 듯하다. 심지어 남편 오트만은 얼굴조차 잘 내비치지 않는다. 마치 '그들만의 리그'에 불청객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처지가 무료하고 지루한데다 남편과의 관계를 비롯 무엇하나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다. 그러던 차에 오트만이 넬라가 청하지도 않은 실제집과 거의 유사한데 크기가 줄어든 듯한 미니어처들이 담긴 캐비닛을 결혼선물로 준다. 그뒤 마치 그 집에서 일어날 일들을 마치 훔쳐본 듯한 혹은 예언한 듯한 미니어처들이 넬라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달되어 온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마치 미니어처리스트가 진짜 예언자 정도의 권위를 가진듯한 문구를 적어보내기도 한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100쪽


넬라.

튤립이 자라는 땅에 순무는 자랄 수 없어요.

273쪽



소설의 내용은 넬라가 언뜻 봐서는 평온하지만 무기력한 상황에서 미니어처리스트에게 마치 조정당하는 듯 수동적인 삶을 사는 부분과 고난과 역경이 닥칠수록, 그리고 미니어처리스트가 오히려 그녀의 삶을 조종하기보다는 스스로 개척하길 바랐음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부터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혹독한 시련일수록 그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강해질 수 있음을 넬라의 심경과 태도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그녀가 잃은 것은 엄청나지만 생각해보면 넬라뿐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잃어다고는 해도 결코 잃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신'에게 우리가 원하지 않은 방법으로 되돌려드렸을 뿐.



"희망은 위험한 거야, 페트로넬라."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아요."

353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신에 의해 이미 정해진 삶, 그안에 내재된 고통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절망적인 면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넬라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희망이었음을 말해준다.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1600년 후반, 영국이나 프랑스지역은 물론 네덜란드에서조차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데에 있어 제약이 많았다. 미니어처리스트가 자신의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당하게 시장에 나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수 없었던 것이나 남자와 결혼해서 기대하는 미래라는 게 아이를 낳고 내조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대한 불편함과 부당성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소설에 담겼다. 게다가 마치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미니어처리스트나 하녀 코넬리아의 버릇이 저급하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자신 역시 실제하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페트로넬라 오트만의 캐비닛 하우스]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다. 미니어처리스트의 이름도 페트로넬라, 글을 이끌어가는 사람도 페트로넬라,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우리도 때때로 미니어처리스트인 넬라가 되기도 하고, 그로인해 삶의 키를 놓치게 되는 넬라가 되기도 한다.


트칸 페케이런. 상황은 바뀔 수 있다. 479쪽


결국 우리는 언젠가 미니어처리스트 넬라와 만났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와의 만남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낄 순 있어도 결코 누군가의 '미니어처'로 살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해주는거라고 느꼈다. 왜냐면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담긴 희망이 우리의 상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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