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지지 마라 -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장 뤽 낭시 지음, 이만형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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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지지 마라는 성경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가 부활이후 막달라 마리아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마리아에게 예수가 하신 말씀이다. 그동안의 예수는 손 닿으면 닿는 곳에, 그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제자들을 이끌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언제든지 원하면 만질 수 있었는데 부활 이후 예수를 붙잡으려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라고 역설적인 화법을 사용하신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장-뤽 낭시는 에필로그에서 장황하게 비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스신화, 우화, 동화에서 사용하는 비유와 성경 속 예수가 말하는 비유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비유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한 사람에게만 말한다. 이미 본 사람에게만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반대로 보아야 할 것을 감추고,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마저도 감춘다.

- 에필로그 중에서-

 

예수가 성경에서 보여주는 비유가 저렇다면 '나를 만지지 마라'라고 표현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우석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찾아가 텅빈 무덤, 비움 상태의 무덤을 보고 예수가 사라졌다고 판단, 바로 옆에 있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지기로 오인하여 그에게 예수 있는 곳을 묻는다. 하필이면 왜 정원지기로 오해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한 챕터를 할애하여 설명해주는데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마리아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을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지기로 대하는 것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려하는 것, 직접 만져지는 것을 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가 만지지 마라, 혹은 붙들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께 가는 자신의 길, 떠남으로써 완성되는 부활을 저지하지 마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Noli Me Tangere' 어원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처음 그리스어로 쓰일 당시 만지지마라는 '붙들지마라'라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만지다'란 의미로 축소되었고 이후 프랑스어 등으로 재번역되는 과정에서 '만지다'란 의미로만 해석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한국성경번역본에는 간혹 '붙들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포기는 사랑으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며 낙담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두 기원은 서로를 보완하지 않는다. 그 둘의 동시성은 이 순간 자체의 '들림levee'을 낳는다-일어서면서 사라지는 들림을. - 본문 중에서-

 

만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은 결국 부활한 몸으로 이전몸과는 다른, 더이상 죽음에 붙들린 몸이 아니며 진정한 의미의 현존 예수가 되었음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질 수 없는 것, 이것은 다름아닌 신성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이에 합당한 해석은 램브란트의 작품이라고 손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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