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아픔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지구를, 땅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진실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생태계를 얼마나 생각했을까.

지폐보다, 황금보다 우리의 생존을 떠받쳐주는 것은 바로 터전인 것이다. 193쪽

생명이란 것이 무엇인가. 삶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도 같고 어떤 면에서는 '숨'과 같은 의미로도 느껴진다. 일자무식이었던 저자의 어미는 꽃한송이도 함부로 꺾어서는 안되지 않겠냐고 말하였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이외수 작가도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풀어냈던 적이 있었다. 강아지가 귀엽다고, 고양이가 귀엽다고 그들의 목을 꺾지 않듯 꽃송이도 함부로 꺾지 말라는 문장이 몇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꽃 한송이의 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결국 그 한송이의 꽃 덕분에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온전하게 품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그것이 의미가 있고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생명의 아픔]은 살아있는 유기적 존재라서 모순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난다고도 말한다. 자신은 반일작가가 맞다고 똑부러지게 말하는 저자는 문예지에서 나온 일본인들과의 대면앞에서도 결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일화를 통해 일본에 뿌리깊게 박힌 군국주의 역시 그만큼 가녀리기 때문에 강인하게 부딪히지 못한 상태로 '단체', '복종'앞에서 평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전쟁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참상이기에 '평화'를 위한 전쟁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에 책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나도 이럴진데 그들에게서 고통을 받은 할머니와 그 가족들은 여전히 일본의 미온적인 태도와 반성이 아닌 인정에 가까운 낯이 얼마나 모욕이고 괴로움일지 감히 짐작도 안된다. 저자가 '생명'으로 연관지어 가는데에 문학이 빠질 수 없다. 광복이후 잃었던 우리나라의 문화를 되돌리기도 전에 전쟁이 있었고 '경제발전'과 함께 물밀처럼 들어온 서구문명은 아예 제 스스로 문화를 잊고 살게 만들었다.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최근 한국적인 멋을 살린 건물이라며 지어지고 있는 곳에 가보면 과연 무엇이 '한국적'이며 '전통'을 살린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많았다. 심지어 우리말 되살리기를 통해 고쳐지는 단어중에서는 순우리말이 일본의 잔재로 치부되어 사어가 되어가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하여, 당연히 대답은 그렇게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대답이 그것이며 우리의 입을 막고 어리석은 몽상가, 이상주의자로 치부하며 조용하게 있는 것도 산다는 문제의 그 정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생존을 위한 오로지 그 이유 하나뿐이라면 지구는 결코 병들지는 않을 것이다. 11쪽


생명을 가졌다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삶 속에서 부딪혀가며 살아가야 하는데 일시적인 정책이나 일회성 행사로는 생명력이 발붙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저자는 죽어가는 환경문제역시 기술발전, 과학의 무모한 도전으로 인한 탓만 하지않는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면 된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명의 '긍정'적인 면모를 믿고 있기 까지 했다. 저자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8년이 지났다. 만약 이 세상속에 아직 살아계셨다면 지금 기분이 어땠을까? 생명이 제 할 도리를 잘 하고 있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생명을 외면한 체 생명을 핑계삼아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을지 궁금해진다. 아직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는 나는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겠다. 아마 나처럼 아픔조차 느끼지 못해서 인간의 아픔마저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다 아프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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