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 루옌스는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수감된 죄수다. 루옌스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죄수번호 혹은 꼽사리로 불리거나 이따금 라오 루 라고 불렸다. 사막 한 가운데 감시자들도 치통에 시달리고 추위에 버티기 힘들었던 그곳에서 루옌스는 4년을 버텨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루옌스의 막내 딸이 나오는 홍보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루옌스의 수감시절 이었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은 모두 한번 본 단어는 뇌에 넣고 잃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진 루옌스가 기록한 내용이었다. 4개국어를 할 줄 알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직접 느낀 자유는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을 사회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루옌스가 미국유학을 가길 원했던 것이 한시적인 자유였다면 그가 수감되었던 시절은 끝을 알 수 없는 자유의 박탈기 였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는 영화 '5월의 마중'을 보았었다. 영화에서는 루옌스가 수감직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성장했고, 수감시절 얼마나 큰 고통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탈옥'이라고 붙여진 것이 조금 낯설었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었다. 중국에서 반혁명분자의 위치가 어느정도 인지 짐작은 되었지만 강간이나 살해를 한 범죄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루옌스와 펑위완의 관계도 좀 의외였던 게 영화에서는 둘의 만남과 사랑이 처음부터 애절하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루옌스와 펑위안의 관계는 피동적이다 못해 수감되기 전까지 펑위안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눈물이 주무기였던 새어머니가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조카였던 펑위안을 소개했던 순간부터 루옌스는 얼굴은 미소지었지만 온몸으로 그녀를 멀리했었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물론 귀국 후에도 루옌스는 펑위안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루옌스가 직접적인 의미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서야 비로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출감 이후 가족에게 돌아왔을 때 루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냉대와 소외감이었다. 루옌스가 인간이하의 취급을 창살안에서 당했다면 그의 가족들은 그를 정말 잊길 바라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젊은 날의 자신을 힘들게 만든 루옌스만을 기억하고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루옌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였다.

영화의 중심이 펑위안과 외동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책은 루옌스와 그가 쓴 원고를 유일하게 물려받은 손녀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원작소설이라고는 해도 전혀 다른 개별적인 작품으로 봐야할지도 모른다. 루옌스가 수감시절 겪었던 옥중기로 봐도 좋았고, 남녀의 사랑이 세월의 풍파속에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깊은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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