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그래피 매거진 3 심재명 - 심재명 편 - 우리 삶은 회화보다 영화에 가깝다,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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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티브이 '주말의 명화'에서 <몽파르나스의 등불>이란 영화를 봤어요. -중략-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삶을 소설이나 평전이 아니라 영화란 매체를 통해 확인하면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어요. 영화에 빠지게 된 특별한 순간이었죠."​ 91쪽


영화제작을 하고 마케팅을 하는 센 영화판의 많지않은 여장부 심재명의 모습은 언제나 당차고 강하게 보였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을 읽으면서 그림을 정말 좋아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도서관 책에서 몰래 그림을 오려내고, 부끄러워 또래 친구에게 소설책을 빌리지 못해 동생을 내보내는 수줍은 심재명이 있었다. 시리즈명이 바이오그래피인 만큼 심재명 대표의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필모그래피와 히스토리가 다 담겨 있다. 영화적 분위기를 잘 살려 앵글, 숏, 시놉시스 라는 걸맞는 심대표의 소개도 좋았지만 역시나 가장 맘에 드는 페이지는 그녀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쏟아내는 솔직한 답변이다. 학력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재수를 했다는 사실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출판사 철야와 상사와의 불화로 그만둔 얘기까지 탄탄대로에 올라서기까지 고단했던 20대 시절은 그녀가 영화인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 하나. 책을 좋아하는 내가 블로그에 서평을 꾸준히 올리는 것처럼 그녀 또한 학창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대부분을 일기장에다 감상문을 남겼다. 감상문이 담긴 일기를 사회 초년생까지 썼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녀지만 넉넉치 못한 가정환경 때문에 미대를 포기, 영화관련 전공 또한 남다르게 '튀는'사람들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국문과에 진학한다. 기획사에 지원도 해보고, 기자단 활동을 했던 잡지사에 지원을 하지만 그녀를 받아 준 곳이 바로 영화사였다. 그녀를 받아준 곳이 영화사가 아니라 기획사였어도, 혹은 잡지사였어도 그녀의 이름을 대중이 분명 알게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줄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열정페이가 영화판에도 분명 존재한다. 결코 덜하지 않은데 그녀가 국내 최초로 안정적인 급여제도를 시작했고 그로인해 예상보다 1억원 이상 추가비용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화면비율 또한 그녀가 공동구역JSA를 촬영할 때 더 효과적인 비율을 찾다가 적용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영화가 같은 비율로 제작되었다. 심대표의 기민한 '촉'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잘생긴 배우만 주인공을 맡아왔던 관례를 깨고 '송강호'란 배우를 발견해냈고 여러개의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를 찾아다니던 무명 감독들 또한 그녀와 함께 작업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 시련도 찾아온다.  -90이라는 적자를 안겨준 영화로 아에 영화를 그만둘까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합병했던 MK필름에서 다시 분리해나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마당을 나온 암탉>,<건축학 개론>등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명 필름에 있어 본질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본질을 놓치지 않고 영화가 손해 보지 않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 그것이 명필름의 영화 제작 방식이다. 122쪽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회사, 손해 보지 않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작품은 결코 하지 않는 곳. '흥행'여부가 먼저가 아니라면서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말하는 명필름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왕따처럼 느껴졌을 만큼 아웃사이더였던 그녀가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이 동한 영화를 홍보하고 알리는 직업을 갖게 되는 과정 그자체가 영화다. 사람의 삶은 누구나 영화가 된다지만 타인의 시선에도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흔치 않다. 어떤 부분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을지 흥행에 실패했던 작품들도 몰아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책, 바이오그래피 이슈3 심재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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