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지는 시간 - 오이겐 루게 장편소설
오이겐 루게 지음, 이재영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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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겐 루게. 

빛이 사라지는 시간.

 

"감자 잎이 타기 시작하면 그 시간이 온 것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빛이 사라지는 시간."

 

 

오이겐 루게. 처음 듣는 작가였지만 동독, 유토피아 그리고 '자전적 소설'. 이 세가지의 키워드에 반응하는 것은 내 취향에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기대도 컸고 그 기대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책, 빛이 사라지는 시간. 몸이 아팠던 까닭도 있고 안팎으로 일도 많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런것은 핑계였다. 책속 인물, 알렉산더를 비롯 4대라고 표현하기에는 각자의 '빛'또렷이 빛났기에 리뷰의 초점을 어디에 둘지를 몰라 머뭇거렸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게 맞다. 

 

재미있게 읽은 뒤 리뷰의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 다시금 책소개와 옮긴 역자의 글을 읽어본다. 혹은 저자 서문을 다시 읽게 되는데 이 책의 경우 너무 역자의 글의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으면 싶다. 그래서 이 말을 서두에 먼저 적어둔다. 빛은 동독의 사회주의의 실패와 함께 사라진 빌헬름만의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결코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번역은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이 작품, 혹은 자전적 소설의 장점이라고 하면 아주 사소한 헤프닝이나 위트가 가미된 장면들이 참 현실적으로 다가와 공감을 쉽게 얻어낸다는데 있다고 본다. 알렉산더가 사샤로 불리던 때의 상황묘사도 그렇고 쿠르트가 '언어를 잃어버린'시기에 묘사도 그렇다. 무엇보다 나데시다 이바노브나의 끌리는 신발소리 '빛이 사라진 무렵의 묘사 하나하나가 그랬다.

 

"발꿈치 부분을 만들려면 뜨개질 코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야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걸 일일이 세어가며 짠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여하튼 하다보면 계산하지 않아도 저절로 딱 맞게 코가 나뉘었다."

 

 이미 성장해서 가족을 떠나버린 알렉산더의 차가운 이미지는 어쩌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 현재는 천진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겪게 될 다양한 사건속에서 거의 대부분 웃음을 잃어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사회주의가 소멸해가는 과정에서 명예나,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샤로테의 모습은 거창하게 나열된 이유라기 보다는 이리나에게서 보여지는 '나이듦'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을 읽을 무렵의 내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면 이 책이 이만큼 재미가 있었을까? 그저 분단된 한 국가와 그 국가의 전쟁과 관련된 상처와 편린에 의해 가족원의 구성이 변경되고 그 사이사이 인간들의 모습이 변화하는지에만 관심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30대가 되어 나이듦에 대한, 그토록 맹목적으로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을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이사를 하면서 다량의 책을(책을 양으로 표현한 것은 좀 아쉽지만)앞서 말했던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버리듯 하며 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의 기준은 단 하나였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인가.', '다시 읽을 만한 흥미가 남아있는가.'였다. 그렇기에 베스트셀러인지, 저자의 유명세라던가 심지어 책의 가격조차 무의미한 그 때, 다시 아니 적어도 2~3번 더 읽을 것 같아 이 책을 남겨두었다. 말랑말랑한 가정사와 지금의 시대를 사는-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념을 가진자와 단체에 대한 히스토리는 몇년 뒤 다시 읽었을 때 어떤 감흥을 전해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결론, 빛이 사라지는 시간은 등장인물들의 '빛'을 쫓고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독자의 '빛'을 모이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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