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청년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소설가 15인의 짧은 소설
강윤화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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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 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노동투쟁을 위한 제몸을 불사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소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희생한 사람일 수도 있다. 심지어 운동가적인 측면을 떠나 노동자 시절 동료들에게 따뜻했고 가족에게 세심했던 인간 전태일의 순수한 면모를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5편의 작품은 그런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국내 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리는듯 싶었지만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이틀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은 15인의 소설 김남일씨의 작품이다. 천재토끼 김상문을 읽었던 게 불과 한달이 채 안되다보니 토끼를 넙죽 서명에 갖다놓고는 난해한 사상과 말투로 독자를 혼란시키는 그의 작품에 연거푸 당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왜, 김남일씨의 작품이 이 작품집에 타이틀이 되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김남일씨의 작품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럭 머리부터 아파올 것 같다. 난 당연히 머리가 아팠다.

 

강윤화의 '지금은 여행중'의 경우는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인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키워드를 덤덤하게 그렸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어찌보면 현실을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두 여인의 일상적인 삶과 그 안에서 적당히 감동도 주는 내용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런가 하면 김도언의 '그건 아니야 오빠'의 경우는 노동자였던 동생이 스스로 겪은 험난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과 같은 이들을 부려먹는 위치에 놓인 오빠에게 지금의 행동을 반성하라는 편지형식의 내용은 넓은 강에 던져지는 힘없는 돌멩이의 작은 파문처럼 덧없이 느껴져 글 자체는 와닿았지만 그만큼 안타까운 맘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기실 그 두남매 뿐 아니라 뒤에 나오는 이시백의 '전태일이 밥 먹여주냐' 역시 자신도 힘들게 살아왔으면서 정작 그것이 못된 시어머니가 더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처럼 자신의 처지와 같은 직원들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지배자의 모습을 그렸다. 정도상의 '어떤 순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입이 썼다. 망루사건은 아직 오래된 과거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의 언급된 작품들 외에도 한 편 한편이 전태일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15편의 이야기가 서로 제각각인듯 싶지만 결국은 소외받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현실이 고단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윤이형의 '은지들'에서 아마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혹은 자신이 노동자 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인격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덮고 부끄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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