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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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책 / 알렌산다르 헤몬 지음/ 은행나무


오래 전 스티븐 킹 작가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글쓰기의 전략이나 비법보다는 그의 소설과도 같은 유년시절이 더 기억에 남아 글쓰기 책이 아닌 성장소설을 읽은듯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해외 유명작가들의 글쓰기 관련 책등을 읽게되면 이와 유사한 기분에 그냥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한 권 더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 <나의 삶이라는 책>을 읽고서는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안타까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의 삶이라는 책>의 저자 알렉산다르 헤몬은 단순히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글쓰기라던가, 삶을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직 철없을 시절에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는 것, 이것은 특별하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의 성장기와 유사하다. 즉 그들이 좀 더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를 맛깔나게 글을 옮길 수 있는 실력이 있으니 작가가 되었다기 보다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그들의 유년시절과 성장과정을 언급하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머리에 손전등을 매단 떠돌이 개를 포기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저 그런 (사회주의판) 물질만능주의로 떨어지는 미끄럼틀을 탄 셈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 전에 광견병에 걸린 떠돌이 개들을 폐관식 밤 행사에 풀어놓자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볼렌스놀렌스 클럽은 최후의 발악도 해보지 못한 책 조용히 깨깽하며 문을 닫았다. 60-61쪽


문학도로 그리고 편집자로 살던 그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이었을 것이다. 내전때문에 돌아가지 못해 발이 묶였을 때 픽션으로 보자면 저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망치듯 과거에서 벗어나려는게 아니더라도 영화 <브루클린>에서의 에일리스처럼 오롯이 일과 자신의 사랑만을 고민해볼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랜시간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때, 글로써 자신의 재능과 만족을 얻었던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진 저자의 처지는 두손 두 발을 묶어놓는 듯한 좌절감 뿐이었을 것이다.


나의 합법적인 첫 직업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린피스의 지지를 호소하는 호별 방문원 일이었는데, 태생적으로 그린피스는 부적응자에게도 열려 있는 단체였다. 구직 문의를 위하 처음 그린피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만 해도 나는 어떤 일인지는 고사하고 호별 방문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몰랐다. 141쪽


물론 저자의 경험, 그의 타자에 의한 이주와 정착과정을 두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자의 스스로가 인정한 것처럼 그보다 더 한 고통의 순간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도 찾고자 하면 넘치기도 하다. 다만 자기앞에 놓인 시련을 어떻게 견디며 또 그것을 어떻게 내면에서 풀어내느냐가 작가로 혹은 탕아로 혹은 이보다 못한 범죄자나 낙오자로 나뉘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저자의 고국인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사라예보 내전으로 인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미국에서 정착하는 저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책의 첫 페이지부터 가슴이 한켠에 바람이 일었던, '영원히 내 품에서 숨 쉬는 이사벨에게'라는 한 줄 문구에 담긴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도 담겨져 있다. 전쟁, 가족을 잃은 슬픔, 타지에서의 생활 등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그래도 조금 지난 시대의 이야기 같겠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들 속의 인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읽고자 했던 이유,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살아냈다'는 추천사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한 문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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