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 - 한사오궁 장편소설
한사오궁 지음, 문현선 옮김 / 책과이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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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나 표정, 겉모습, 옷 의식 등의 사물은 어떻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가. 나는 독자들과 더불어 이 구체적인 이미지 기호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함께 관찰하고 싶었다. -중략-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 언어와 구체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서로를 생성하고 성장시키는지, 또 어떻게 서로를 제어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한사오궁의 소설 <암시>는 소설이자 기호 혹은 이미지가 우리의 삶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문서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역자의 말처럼 그 인물들이 모두 저자 한 사람일수도 있고 혹은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의 저자의 말처럼 기호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소설이란 형식을 차용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총4부로 구성된 소설은 은밀한 정보를 시작으로, 일상, 사회의 구체적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언어와 이미지의 공존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우선 언어가 문자를, 비언어가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문자로 서술된 것 이상의 정보를 이미지, 시각화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내게 '사랑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실'이라고 말하는 텍스트안에서도 '진실'은 별개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 혹은 눈빛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내 눈을 보고 말해봐'라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보여지는 이미지는 항상 언어보다 정확할까 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보여지는 이미지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볼 수도 없는데 가령 저자가 언급한 '관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쁜사람과 착한사람을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 확실히 알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사람의 과거와 실제 성격을 알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그사람이 평소에 쌓아온 덕이나 업적 또한 얼굴로만 판단할 수도 없다. 즉 보여지는 이미지 역시 언어가 가지는 한계처럼 다른 의미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한 여성후보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고자 여성이 택하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화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체력적인 면에서 결코 약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목적을 위한 여성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을 꾸미자고 했던 것과는 달리 마치 여성성을 버리고, 그런 스타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보니 앞에서는 여성들의 지지를 받지만 그 반대로는 오히려 그녀는 또 다른 이성을 혼자서만 독차지 하려는 여우가 되고 만다. 일상속에서의 이미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도가 거의 폐지화되고 있지만 작가는 과연 그런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서 수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우리가 제도화된 사형제는 폐지시키고 있을지 몰라도 암묵적인(즉 비언어적인)형태로 또 다른 의미의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가하면 공간이라는 주제를 두고 풀어낸 부분도 공감이 되었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 남편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다른 마음을 품는다는 것, 어차피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공간적으로 멀리 있다고 해서 마음이 느슨해질 수 있는가.


3부에서는 중국의 현대사와 맞물려 앞서 1,2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어떤 '이미지'로 사회에 적응하게 되거나 혹은 밀려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당국에서 시행된 제도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서화 혹은 언어화된 개념이 정, 혹은 호감 등의 결실로 빚어진 것들이 상당함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기대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형식은 작가 스스로가 실험적이자 모험적으로 시도했다고 할 만큼 기존의 소설방식은 아니다. 역자는 중간 중간 기존의 집필 방식이 등장한다고는 했어도 분명 놀랍고도 반가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만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를 두고, 또 사건을 두고, 또 사회문제를 통해 이런 방식의 소설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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