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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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그녀의 그림을 언제 처음 보았던가. 아마 그녀의 그림보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통해 그녀를 '알았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그녀의 작품보다 여성으로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의 안타까운 삶을 먼저 알았다. 그래서 박연준 작가의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라는 제목부터가 마음이 확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에 감탄했다. 어느 누가 쉽사리 그녀의 아픔을, 위로를 할 수 있었을까.



프리다 칼로가 이 책을 볼 수 만 있다면, 그녀는 분명 뛸 듯이 기뻐할 것이다. (중략)
프리다 칼로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소울 메이트를 만난 것이다. - 정여울 작가-


고독이 서로 다른 종을 사랑하는 것(26쪽)이라면 사랑은 또 무엇인가. 프리드 칼로의 사랑은 얼핏 봐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삶이다. 그녀가 사랑했던 디에고에게 도무지 순정이라더가 사랑하는 사람의 예의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었던 것이라고. 프리다 칼로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디에고에게 있어 바람은 그저 하나의 버리지 못하는 '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기만했던 것도 아니라고. 그 두사람의 사랑은 잠시 묻어두고 프리다 칼로의 작품으로 들어가본다. 저자가 말하는 <나의 탄생>은 그야말로 쎈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막 얼굴을 세상으로 내민 아기가 여자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그림. 여자의 얼굴은 이불로 덮여 있기에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볼 수 없다. 하지만 장면자체만 보더라도 거의 죽기 일보직전의 상태라는 것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 얼굴을 주변으로 피가 흥건하다.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장면석에 여성의 신체도 포함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전까지의 작품 속 탄생은 신성하고 '승리'에 가까운 남자들의 시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탄생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가 태어날 때는 이미 정해진 숙명, 죽음도 함께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1부의 소제목은 '만지고 싶어 죽겠다는 말'이다. 탄생은 실로 모든 것이 닿아있던, 한몸이었던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더 큰 소유욕, 사랑이 자라난다. 이성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연인이 헤어졌을 때 저자말처럼 '몸에 대한 그리움'이 저속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실제적인 표현은 없는 것이다. 사랑의 표본과 같은 포옹, 입맞춤, 손잡기 등이 모두 사라져 간 상태, 그것이 바로 이별이기 때문이다.



"정말 나를 힘들게 하던 게 결국엔 내 몸에 배어, 내게 영향을 끼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아.
나를 지불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
결국 그게 귀한 거야." 76쪽



2부 우리들의 실패편에서는 작가가 채빈씨와 주고받은 편지가 등장한다. 결별로 인한 상처. 결별의 이유를 떠나서 사랑의 끝은 쓰라림을 동반한다. 모든 것을 주어서 홀가분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주고 받았던 사랑이어야만 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했구나 하는 마음은 그렇기에 나눌 수 있었던, 꿈꿀 수 있었던 미래를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으로 쓰리도록 아프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는 실패는 또 다른 실패에 의해, 혹은 상대를 자기애로 전환했을 경우에만 극복이 가능하다. 2부 등장하는 작품은 <디에고와 나>로 프리다 칼로 이마에 디에고가 심겨져 있다. 그녀의 눈은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그녀의 생각이 곧 디에고를 통해 표출된다. 사랑이다. 내가 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으로 보려하는 것, 상대방이 그것을 원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늙음은 고통과 단짝이에요. 슬픔이 제 할 일을 조금 열렬히 하면 고통이 되죠. 고통이 스스로 개선하려는 의지 없이 방탕해 지면 늙음이 되고요. 116쪽


3부 그땐 억울했고 지금은 화가 난다는 앞서 1,2부보다 저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미술선생님과의 일화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비단 미술시간 뿐이었겠는가. 작문시간에도 체육시간에도 우리는 왜 만능이어만 하는가. 왜 못함이 죄가 되어야만 하는건지 안타깝다. 나이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는데 '나는 좀 변했을 거예요. 흰 머리가 괴로워요. 마른 것도 그렇고. 이런 문제 때문에 좀 우울합니다.'라고. 프리다 칼로가 나이듦에 대해 사고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사랑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도, 나이때문에 우울한 것만 보더라도 프리다 칼로도, 또 그녀의 작품을 시로 쓴 박연준 작가도, 이를 읽는나도 그야말로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랄까.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디에고를 사랑하는지. 나는 그 무엇에도 디에고가 상처입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그를 귀찮게 하지 말기를.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활력을 빼앗지 말기를. 그가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살기를.

195쪽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중에서>


결국 사랑이다. 4부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참 열심히도 사랑했던 프리다 칼로다.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몰라.' 지금 생각해보면 알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바꿔말하면 상대가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는게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니까. 디에고가 슬퍼하길 원치 않았던 그녀는 그 사랑때문에 흔들렸지만 그 사랑덕분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릴수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녀역시 그에게 바라는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욕망대로, 사랑을 따라 살았던 것이니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이 느끼든 그렇지 못하든 누구나 다 결국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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