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엔드 -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들
필 토레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현암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과연 이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인가.

몇몇의 예언자들에 의해 실제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졌던 시대가 있었다. 종교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이 해당되고 과학적으로 보자면 온난화 등의 자연재해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양쪽의 종말 모두 갑작스레 어느 날 뚝 하고 끊기는 종말은 아니다. 책 <디엔드>의 저자 필 토레스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실존적 위기에 관한 연구가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궁극적인 가치가 이보다 더 큰 주제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중략- 즉 수십억 인구가 자아실현과 번영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값진 삶을 살 것인가도 재앙을 막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33쪽


이 책의 부제가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인 만큼 두 측면에서 재앙을 어떻게 막아야 할 것인지, 막을수가 있긴 한 것인지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지구, 즉 우리가 지각하고 역사화된 현재는 빅뱅이라는 붕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그런 충돌 혹은 붕괴가 다시 일어날 확률에 대해 따져봐야 할 것이고 그런 지구과학적 부분이 예측 및 방어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2014년 닉 보스트롬이 2014년에 발표한 베스트셀러 <초지능>이라는 책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SF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실제 공상과학 소설이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해도 위험스럽지만)초지능은 두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첫 번재 '정량적 초지능'을 개발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량적 초지능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략- 기억(정보의 보유량)과 시간(정보 처리 속도)이라는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함으로써 총체적 지식과 한 개인의 지식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울 수 있다. 주어진 시간에 통째로 획득한 모든 지식이 '아는 것'이 될 때까지 지식을 계속 획득할 수 있다. 111쪽


위의 내용을 접했을 때 사실 약간의 소름이 돋았다. 단순 암기가 아닌 '아는 것'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니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지능 그 이상을 뜻한다.만약 이런 초지능을 가질 수 있다면 과학적인 측면에서 껴안는 재앙들은 아마도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될 것 같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런 좋다못해 위험하기 까지한 기술을 테러리스트와 같은 단체가 먼저 개발 혹은 습득한다면 차라리 개발하지 않는 측면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가지의 문제는 이렇게 개발중인 초지능이 '인간의 목표'와 방향성이 같게 개발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해당 능력을 가진 CPU가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할 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는 위험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더군다나 영화속에서 자주 보아왔던 캡슐화 된 형태 혹은 시뮬레이션 안에서만 생존하게 되는 미래는 어떠한가. 저자의 말처럼 이런 존재론적 재앙은 '이행성으로 인한 죽음'이라 칭할 수 있고 가상세계가 여러 겹 쌓일 수록 과연 그 세계를 만든 우리가 안전해질 확률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세속적인 측면에서의 재앙이 이런식으로 다가온다면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예수의 재림,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종말이 찾아오고 재림이 다가오면 모든 것은 소멸된다는 것이 세대주의다. 미국의 권력층이 이런 세대주의에 옹호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 문제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개종해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유대인들, 이슬람 및 IS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단체를 형성한 사람들의 현실은 미래에 있을 지옥을 간과하며 현재 자신들의 목표(핵개발)를 성취하는 것이 문제다. 대형 교회 목사이자 열성적인 종말론자인 해기 목사의 경우는 하느님께서 유대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돌프 히틀러를 내려보냈다는 주장까지 했다. 생전에 예수의 재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무슬림의 인구 중 극단주의자의 숫자는 미국에서 현재 복무중인 구인의 수보다 2,620만 배나 많다고 한다. 과연 우리의 죽음은 세속적인 재앙에 의한 것일까? 종말론이 아닌 종말론을 만들려는 사람들 때문일까?



우리 바로 전까지 살았던 인류는 인도네시아에서 약 1만 2,000년 전에 사라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다. 위태로운 상황이 인류를 따라다닌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처럼 위태로웠던 적도 없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살아볼 기회를 누리게 하려면, 혹은 그저 세상을 살아보게라도 하려면 믿음보다는 증거를, 계시보다는 관찰을, 종교보다는 과학에 더 주목해야 한다. 346쪽



저자는 마지막 14장 사전 대응과 예방편에서 앞서 언급한 부분들 중 위험요소와 가장 위급한 것,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가 만능도 아니고 신이 아니듯 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를 행했을 때'라는 가정이 따라붙는다. 즉 운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애초에 그럼 이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해주려고 쓴 책이라고 아쉬움과 불만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우리에게 종말이 세속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라는 것과 해결책이 반드시 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즉, 종말이 올 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종말이 와있다고 말하고 주의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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