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을 구분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기 전 누워 봤을 때 조느냐 아니냐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꾸벅꾸벅 조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책을 덮을 수 없어 잘 시간이 지났을 때까지 읽는 책도 있다.(그렇다고 꼭 후자가 전자보다 좋은 책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 후자의 책이다. 

 

온다 리쿠는 어떠한 ‘상황’에 대해 쓰는 것을 즐기고, 또 잘하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읽은 그간의 책들이 모두 그랬다. 책들의 두께는 제각각이지만, 그녀는 늘 어떠한 상황과 장면을 상상하며 소설을 쓰는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분량이 어떻든 늘 같은 정도의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다. 지난번에 읽은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17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고, 이 책은 500페이지 정도로 3배 분량이 차이나지만, 어찌 생각하면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한 느낌도 받았다. 이유는 아마 이 소설은 상대적으로 묘사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철저히 장르문학 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극히 가벼운 느낌도 든다. 소재인 ‘연극’에 대한 세밀한 묘사나 리얼한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저에 깔린 가벼운 느낌만큼은 지우기 힘들다. 많은 책을 쓰는 작가라 그런지 작품별로 편차가 심한 듯하다. 하지만 그 믿기 힘들 정도의 다작을 보면 이 작가가 쓰는 것 자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어서 한 명의 소설가로서는 존경심이 든다. 어찌되었건 글을 쓴다는 건 육체적 노동인 것이다. 

 

뭐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그리 깊고 길지는 않지만, 왠지 또 슬쩍 이 작가의 책을 빌리게 될 것 같다. 장르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작가라는 점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스토리언 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7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조영학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 어느 나라의 문학이든 유행과 추세라는 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간 미국문학을 휩쓸었던 건 단연 ‘팩션’이라는 장르였다. fact(사실)와 fiction(허구)의 조합인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작가적 상상을 추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물론 ‘다 빈치 코드’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다 빈치 코드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나는 댄 브라운이 싫어요!!)중 한 명이었지만, 그렇다고 팩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미워하진 않았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팩션이라는 장르에서 이렇다 할 좋은 소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많은 작가들이 너무도 치밀한 역사적 고증에 메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빼놓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이야기 속의 감동은 없었다. 어쨌건 난 결국 소설은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다. 

 

‘히스토리언’ 또한 그런 ‘팩션’들이 활개 칠 때 출간되었던 소설이라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을 때부터 자꾸 이 책이 눈에 밟혀 엊그제 빌리고 말았다. 

 

이 책이 품고 가는 fact는 ‘드라큘라’다. 사실 소설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fiction 장르에서 드라큘라는 너무도 많이 차용되어 이미 식상해진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공의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기댄 이야기들이기 보다는 철저히 작가적 상상에 의해서만 개진될 뿐이다. 굳이 실제의 역사를 끼워 넣어봐야 루마니아가 나오거나 ‘블라드’ 백작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상당한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얼마 전 읽은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고 나서 한동안 패닉에 빠진 이유는 책 말미에 갑자기 등장한 작가 때문이었다. 김영하의 목소리로 소설과 작가의 말 중간쯤에 있는 이야기를 한참 읽다보니 이게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무척 헷갈렸다. 소설에서 리얼리티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지 않나 싶다. 마냥 허구인 것 보다는 적당한 사실이 들어갔을 때 소설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서적과, 주인공들이 거니는 다양한 장소들은 이 책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다보면 독자는 현실과 픽션 사이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뒤에서 작가가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듯 한 환영을 본다. 긍정적 의미의 진정한 ‘팩션’인 거다. 

 

1권만 읽고 전체적인 평을 하긴 힘들겠지만 어쨌건 나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1권을 절반정도만 읽고 잤는데도, 자는 내내 흡혈귀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남은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마저 감상을 말하기로 하자. 뒤가 궁금해지는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일야화 2 열린책들 세계문학 137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왜 열지 말라고 하는 상자는 꼭 열고, 전에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지만 다시 또 그 길을 가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일어나고야 말았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벽난로 위에 올려 진 총은 쏘여지지만, 그런 상투적인 네러티브도 그렇게까지 지겹지는 않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속에 나오는 많은 얘기들의 결말에 일정한 패턴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책이라고 해서 권선징악으로 범벅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각각의 이야기들은 아무런 패턴이 없다. 선한 사람이 이유 없이 죽기도, 악한 사람이 잘 살기도 한다. 반대도 물론이다. 결국 이 책은 모든 인간 군상의 이야기인 것이다. 삶에는 어떠한 복선 없이도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고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의 피크닉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온다 리쿠에 푹 빠져서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다. 엄청난 저술량을 자랑하지만 그 대부분이 추리/sf/팬터지 등 장르문학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온다 리쿠-청춘을 그린 소설들-의 소설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몇 안 되는 ‘청춘’을 그린 책. 

 

이 소설은 170여 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에 세 개의 에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장편(혹은 중편)을 이룬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은 세 명의 대학생인데, 그들은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당한다. 특히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 ‘그애와 나’와 ‘파란 꽃’이 무척 좋다. 내 대학 시절을 떠올려 봐도(혹은 지금 현재도 그렇고) 절절하게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문장으로 바꾸어 서술하는데,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다. 읽기 전엔 책이 너무 얇아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는 도중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애와 나’ 하나만을 따로 놓고 봐도 너무도 훌륭하고 완벽한 단편이다. 이건 대학생-혹은 청춘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나서 바로 작가의 다른 책을 또 빌렸다. 이 작가는 조금 더 이런 청춘의 순간들을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요즘은 좋을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나는 현재 활동하는 한국 최고의 작가들 중 하나는 김영하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 완벽히 매료되어 버렸다. 김영하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을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내 마음속엔 늘 김영하는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 작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들은 싸그리 사라진다. 그는 진정한 의미로 소설가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몇몇 에세이와 여행기를 읽으며 그가 한예종의 교수직을 버리고 글을 쓰는 것에 전념하기 위해 캐나다로 간 것을 알고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는 그의 작품들이 10여 개국에 번역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건 모두에 조금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첫째의 것은 그는 한국에서도 글을 충분히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다음의 것은 그의 작품이 훌륭한 것은 맞지만 10개국에 번역될 정도인가? 싶은 의문이 있었다.(이건 물론 내 오만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두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었다. 

 

그의 전작 퀴즈쇼를 읽고 나서도 분명히 재미있기는 한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불만족스러웠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뭐라고 정확히 집어 말하기는 애매했지만, 하여튼 그런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네러티브였으며, 완벽한 이야기였다. 내가 김영하의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면이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교훈이나 권의의식이 없다는 점. 그래서 나는 그의 첫 소설을 싫어한다.) 이 책은 그런 ‘훈계’없이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전달한다. 너무도 유려하며 매력적이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나는 아주 깊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은연중에 김영하가 조금은 거품이 있는 것 같다는(수많은 문학상을 타고, 10여개국에 번역되는 일들)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앞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내 자신에게 회개하는 의미로 김영하 전도사가 될 것이다. 그는 분명 세계에 이름 날릴만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가장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면 늘 눈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나간다. 눈은 앞 문장을 좇고 있지만 마음은 빨리 다음 문장을 읽어 일어날 이야기를 알고 싶어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아직 읽지 못했던 김영하의 작품을 싸그리 찾아 읽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