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스토리언 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7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지음, 조영학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 어느 나라의 문학이든 유행과 추세라는 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간 미국문학을 휩쓸었던 건 단연 ‘팩션’이라는 장르였다. fact(사실)와 fiction(허구)의 조합인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작가적 상상을 추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물론 ‘다 빈치 코드’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다 빈치 코드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나는 댄 브라운이 싫어요!!)중 한 명이었지만, 그렇다고 팩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미워하진 않았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팩션이라는 장르에서 이렇다 할 좋은 소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많은 작가들이 너무도 치밀한 역사적 고증에 메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빼놓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이야기 속의 감동은 없었다. 어쨌건 난 결국 소설은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다.
‘히스토리언’ 또한 그런 ‘팩션’들이 활개 칠 때 출간되었던 소설이라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을 때부터 자꾸 이 책이 눈에 밟혀 엊그제 빌리고 말았다.
이 책이 품고 가는 fact는 ‘드라큘라’다. 사실 소설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fiction 장르에서 드라큘라는 너무도 많이 차용되어 이미 식상해진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공의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기댄 이야기들이기 보다는 철저히 작가적 상상에 의해서만 개진될 뿐이다. 굳이 실제의 역사를 끼워 넣어봐야 루마니아가 나오거나 ‘블라드’ 백작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상당한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얼마 전 읽은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고 나서 한동안 패닉에 빠진 이유는 책 말미에 갑자기 등장한 작가 때문이었다. 김영하의 목소리로 소설과 작가의 말 중간쯤에 있는 이야기를 한참 읽다보니 이게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무척 헷갈렸다. 소설에서 리얼리티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지 않나 싶다. 마냥 허구인 것 보다는 적당한 사실이 들어갔을 때 소설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서적과, 주인공들이 거니는 다양한 장소들은 이 책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다보면 독자는 현실과 픽션 사이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뒤에서 작가가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듯 한 환영을 본다. 긍정적 의미의 진정한 ‘팩션’인 거다.
1권만 읽고 전체적인 평을 하긴 힘들겠지만 어쨌건 나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1권을 절반정도만 읽고 잤는데도, 자는 내내 흡혈귀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남은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마저 감상을 말하기로 하자. 뒤가 궁금해지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