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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개정판 ㅣ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 유시민의 존재를 정치인으로만 알아왔는데, 이 책을 통해 그가 이렇게 좋은 책도 많이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19세기 말~20세기 후반부까지의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훑는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보는 시각은 이 책이 출간된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은 극히 올곧은 시각이다. 시대적으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빨갱이 책이라고 공격받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서문에도 그렇게 써 있고) 실은 그렇지 않다. 극히 상식적인 시각의 책일 뿐이다. 단지 돌아가던 세상이 비상식적이었을 뿐.
저자는 특별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어떠한 주의라는 사상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시대사적 흐름을 읽고 사건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낸다.(가려낼 수 없는 문제들도 많겠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알게 된다.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곧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고,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다. 다만 그러기까지는 너무도 쉽지 않은 제반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나치에 의해 형언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들은, 어느새 나치와 같은 가해자가 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한다. 우리는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별 것 아닌 일로 미화하는 일본인들을 욕하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비슷한 일을 되풀이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곧은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이었다면 인류는 이러한 걸음을 하지 않았을 거다.
놀라운 사실은 유시민이 이 책을 통해 쓴 이야기들 대부분은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진행중인 것들이다.) 흑인은 여전히 차별받으며, 일본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미국은 여전히 전쟁을 벌이며, 핵폭탄은 없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독재자의 딸은 정당한 선거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한다. 믿기 힘든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 오히려 우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유시민의, 인류의 희망을 보았다. 3차 대전의 코앞까지 간 긴장의 상황 속에서 수많은 대중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또 이루어 냈다. 거대 미국의 침략에 끈질기게 저항한 베트남은 승리했다. 틱광둑 스님은 초인적인 인내로 분신공양을 해 전쟁을 멈추게 했다. 인류는 아주 하찮고 잔악하지만, 도무지 같은 인류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너무도 숭고하며 아름답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 시위를 하던 부녀자들이 철조망에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들-예쁜 옷과 가족의 사진, 꽃 등-을 걸었던 구절을 읽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부디 세계사와 국사를 필수적으로 가르쳤으면 좋겠다. 한 국가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한 인류의 수준에서 말이다. 어쨌건 나도 아직까지는 세계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