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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 2부 - 그림자와 춤추는 공백지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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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 읽고 나서는 하루키를 좀 욕했으니 이번에는 하루키를 읽는 이유를 말해보도록 하자. 하루키는 유니크하다.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하루키 밖에 없기때문에 하루키를 읽는다. 어느 곳이나 지배 집단은 대체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문단도 마찬가지다. 자신들과 다른 하루키를 일단은 배척하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기존 문학들과 비교하면 기괴하다. 단순히 다른것만이 아닌 이상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나마 하루키의 소설중 그럭저럭 틀에 맞출 구석이 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수상도 했고,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도 기존 주류 문학에 익숙한 독자이기 때문에 '세계의 끝...'을 가장 좋아함은 물론이다. 약간 비난조 비슷하게 가긴 했지만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유니크하다. 그것이 첫번째 장점.(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하루키와 류의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류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반면 하루키는 수상 못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하루키의 소설안에는 단순히 내러티브적인 측면에서 벗어나더라도 반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강력하다. 스토리에서 반전이 있음은 물론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장에서도 반전이 있다는 것이다. 대개 유희적으로 별 생각없이 문장이 나가다가도 갑자기 뒷통수를 쳐 버린다. 하루키 문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장점은 역시 일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동안 주욱 이렇게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온 작가는 드물다. 대개의 작가들이 다들 바라는 것은 다른 분야를 개척하는 것인다. 하지만 하루키는 고집쟁이다. '(무엇인가를) 상실했지만 그것을 딧고 살아가야한다.' 는 식은 그의 처녀작부터 굳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테마였다. 그건 우리나라 운동권과 비슷한 일본의 전공투라는 것과 적잖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도 공지영이라는 비슷한 작가가 있다.) 옆길로 잠시 샜지만 하루키의 일관성은 안정성으로 변화한다. 다른 작품이지만 우리는 익숙한 정서로 하루키의 책들을 읽는다. 새 책을 사는 것이지만 새 것의 어색함보다는 익숙함이 더 강하다. 하지만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인칭과 1인칭을 섞는 시점이라던가 주인공이 더 이상 30대 초반의 이혼남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뀌었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하루키의 신작이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하루키같은 '재탕'작가의 변화는 입지를 축소시킬 수도 있고, 더욱 확대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스릴에 가까운 기대까지 생겨버린다. 어쨋든 하루키는 교과서 속 잊혀진 작가가 아니라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성문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댄스댄스댄스이야기는 하나도 안했다. 참 최근 일본의 한 소설가가 '댄스댄스댄스-remix'라는 소설을 냈단다. 한국에도 이미 출간 되었는데 하루키를 헌정하는 의미로 원작에서 얻은 모티프를 바탕으로 '댄스댄스댄스'를 재구성한 작품이란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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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 1부 - 운명의 미로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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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면적인 소개를 잠깐 하자면 이 소설은 89년작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양을 좇는 모험-댄스댄스댄스로 이어지는 쥐시리즈의 완결편격으로, 앞의 세 시리즈의 결말이 다소 미흡했다는 것과 다르게 나름대로 끝난다는 느낌이 들어, 역시 완결편이라는 기분이 든다. 물론 앞의 시리즈를 읽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으나 역시, 앞의 시리즈를 읽는 쪽이 이해나 재미 양쪽 모두의 측면에서 낫다. 좀 더 개인적인 감상으로 들어가자면 그동안 하루키를 읽으면서 느낀 약간의 짜증이 구체화 되었다고 말하겠다. 하루키를 읽다보면 가끔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유를 잘은 몰랐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 짜증을 이유를 알아버렸다. 하루키의 소설은 일반적인 감상으로는 '무언가의 상실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라는 식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내가 읽은 하루키는 무지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꽤나 자주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하고 작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마음이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 이렇쿵 저러쿵 이야기하고 점심으로 커피 두잔과 던킨 도넛 한개를 먹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간혹 그 무의미성 때문에 짜증이 나버리는 것이다. 또, 작가는 변명쟁이다. 작품중에 두 형사 '어부'와 '문학'에게 잡혀서 취조당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그런 것이다'라느니 '어쩔 수 없다'라느니 하는 식으로 변명하고, 합리화 시킨다. 이건 유키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나 자신을 별나다던가 하는 식으로 숭배시키기에 이른다. '난 패배자야 하지만 잘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 같은 느낌으로 앞부분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루키를 읽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에다. 하루키 특유의 문장을 재밌다. 작가 본인이 강조하는 '대단한 부분을 아니지만 인상에 남는 문장'이 많다. 번쩍하며 뒷통수를 때려준다. 결국 나는 이렇게 떠들어 대지만 2권도 읽을 것이고 올해 출시 예정이라는 하루키 신작도 살것이다. 좋아는 하지만 존경은 안, 아니 못 한다. 이것이 하루키의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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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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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을 사려 했으나 없어서 별 수 없이 입 속의 검은 잎을 샀다. 마흔 정도 되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기형도 시인. 그의 시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는 물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소설이나 수필은 물론이고 희곡, 시 또한 그것은 다르지 않다. 기형도의 시 속에는 기형도가 있다. 어렸을 때의 어려운 환경을 단순히 어려웠다 쓰지 않고, 특정적인 사건을 통해 이야기 한다. 비단 여렸을 때 뿐 아니라, 대학시절은 물론 투병생활의 모습까지 슬쩍 엿볼 수 있다. 시라는 것은 굉장히 난해하고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그런 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기형도의 시는 재미있었다. 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서사적인 시에 많이 끌린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재밌었다. 내가 생각하는 시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집 한권을 사서, 하루에 꼭 시 한편씩을 읽는다. 시 한편을 하루에 열번, 스무번씩 읽는다. 그런 후 시집을 다 보면 그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시가 나온다. 후에는 그런 시들을 계속 읽어간다. 시란 노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트랙만을 계속 듣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뭐, 앞으로 이런 저런 시집을 많이 읽어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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